동그랗고 예쁜 너의 볼
아들이 2학년이 되면서 아들 방에 침대를 들여놨지만 거긴 여전히 놀이방일 뿐 아직도 안방의 패밀리 침대에서 세 가족이 함께 잠들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아들의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 머리카락을 정리해준 후 통통한 볼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막 잠에서 깨어난 남편도 다가와서 아들의 볼에 얼굴을 비비고 있다. 어쩌면 이런 시간들이 생각보다 많이 남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는 걸까.
또래 아이들에 비해 아직 아들은 볼이 동그랗고 통통하다.
- 아직도 아기처럼 배랑 엉덩이만 볼록해. 볼도 아직도 통통하고......
- 이 녀석 언제 크지?
새삼스레 주고받는 대화. 아직 자고 있으니 깨우지 마라며, 둘 다 잠든 아이의 볼을 만지작거리면서 서로를 타박한다.
언제 크지?라고 말하곤 있지만 그 말속엔 벌써 이만큼이나 커버렸음에 대한 서운함과 시간의 흐름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은 바람이 담겨 있다. 이 시간들이 남편과 나의 기억 속엔 있는데 아이의 기억 속엔 없을 거라, 그게 조금 서운하기도 하다.
너는 알까.
엄마랑 아빠가 서로의 얼굴에서 움푹 꺼져버린 눈가와 주름진 이마를 발견했을 때보다 더 많이 안타까웠던 순간은, 너의 동그랗고 통통했던 볼이 조금씩 홀쭉해지며 소년의 얼굴로 변해가고 있음을 느꼈을 때라는 걸. 우리의 늙음과 너의 성장이 동시에 일어났지만 언제나 아쉬웠던 것은 더 많이 아껴주고 보듬어주기도 전에 네가 훌쩍 자라 버리는 것. 홀로 저만치 가버릴까봐 조금은 조급하게 종종걸음 쳤다는 것을.
내년에 초등학교 3학년이 될 아들은 아직도 잠들기 전과 잠에서 깨어난 직후엔 "엄마" 하며 나를 찾는다.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곤 코를 부비기도 한다. 언젠가는 홀로 평온하게 잠들었다가 깨어나선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와 "안녕히 주무셨어요?" 하며 아침 인사를 건네겠지. 일어나자마자 '어디 갔었냐' 원망하듯 나를 부르며 찾는 일은 거의 없겠지.
고요하고 단정한 아침을 떠올려 본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어느 날 문득 아들의 잘 자람과 무난한 성장을 깨닫고 기뻐하다가, 그제야 떠오른 나의 늙음에 어쩌면 조금 서운해질지도 모를 테다. 아마도 속상할 테지만 그건 그저 나의 늙음 때문이겠지? 그래야 하는 거겠지.
엄마도 나를 이렇게 키웠던 걸까. 우리 엄마의 많이 늙어버린 얼굴이 이제야 조금은 서글퍼온다. 그러니, 아직은 조금 천천히, 부디 시간이 나의 편이길, 간절함을 담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