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특기는 아니, 취미는 아무 말

by 날아라빌리

이런 것도 특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글쓰기 분야에서 주특기는 아무 말이다. 아무 내용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그냥 주절주절 지껄이듯 글을 쓰라고 하면 몇 시간이고 쓸 수 있다. 실제로 말을 하라고 하면 10분도 못할 것 같은데 글은 가능하다.

공기반 소리반. 가요계에선 힘 빼고 말하듯이 부르는 창법이 유행이던데, 글쓰기에선 유행하지 않으려나. 하긴 주제 없이 불러버리면 제 아무리 공기반소리반이라도 그저 소음일 테니, 아무 말을 쓴다는 건 공기반 소리반이든 힘을 빼든 힘을 넣든 어떤 방식으로 쓰더라도 글도 뭐도 아니긴 하네.

그렇다면...... 특기 말고...(소심) 취미로 하자.


소설을 쓰고 싶다. 실제로 쓰고 있는(한 장 정도의 분량만 쓴 것도 있어 쓰고 있다, 로 말하기에 많이 머쓱하지만) 소설이 3편, 생각만 하고 있는 건 1편으로 4가지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있다. 문제는, 평소 아무 말만 쓰다 보니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춘 제대로 된 이야기를 쓸 재주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글을 이렇게까지 못 쓰구나, 진짜로 엉망이구나,라는 사실을 소설을 쓰면서 정확하게 깨달았다. 그전에는 그저 두루뭉술하게 좀 구리다,라고 생각했는데 '좀'도 아니고 '구리다'의 정도도 아니었다. 이 사건을 어디에 배치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극적으로 전개될 수 있을까. 시간의 구성은 어떻게 해야 할까. 너무 고민하며 쓰다 보니 도리어 더 엉망진창인 글이 되어 간다.


이제 막 수영을 시작하여 간신히 자유형을 할 줄 알게 된 수린이가 상급반의 팔 꺾기에 감탄하며 무작정 따라 하다가 어깨 돌리는 타이밍조차 못 맞추며 물에서 버둥대는 꼴이랄까.


팔 꺾지 마세요. 그러다 어깨 다쳐요.

아니, 아니, 아직은 아니라고. 팔 꺾지 말고 그냥 쭉 뻗으며 헤엄치세요.

수영 강사님의 호통이 떠올랐다.

그치만 꺾고 싶은데요? 꺾는 것이 더 멋지다고요.

쭈굴거리면서도 팔 꺾기를 가르쳐달라 조르던 내 모습도 떠오른다.


수영이 하고 싶다면 우선은 물에 떠서 가라앉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했듯, 정말로 소설이 쓰고 싶다면 우선은 한 글자 한 글자 끝까지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치만 그게 잘 안 된다. 꾸준하게 써본 적이 없다. 하나의 호흡을 유지하며 끝까지 집중해서 뭔가를 써본 적이 없다. 자꾸만 그냥, 중간 과정 없이 그냥, 잘하고 싶다. 킥판을 끼고 어깨의 힘과 발차기의 힘을 기르기 위해 꾸준히 연습해야만 평영도 접영도 잘할 수 있는 것인데, 그런 거 없이 다짜고짜 그냥 잘하고 싶었던 그때와 똑같은 것이다.


연재는 꾸준함과 성실함을 위해 선택한 방법이다. 어떻게든 쓰겠지. 일단은 쓰겠지. 수요일의 내가 쓰면 토요일의 내가 이어서 또 쓸 테고, 그다음 수요일의 내가, 다시 또 토요일의 내가 뭐라도 쓰겠지.

소설을 쓰려했는데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다리 사이에 킥판을 낀 채 코어의 힘을 기르고 양쪽 어깨의 균형을 익히는 것이 우선이니, 일기장에 짧은 메모처럼 남기던 글을 이곳에서 쓰기로 했다. 3~4개월 전의 일을 지금 쓰려니 미세한 감정들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아, 모르겠고 까먹기 전에 당장 오늘의 일이라도 아무 말이나 떠들어보자 싶은 조급함이 앞서지만 꾹꾹 눌러본다. 일주일에 연재를 3번으로 해서 빠르게 오늘의 시간을 따라잡을까,라는 생각도 했는데 현실적으로 무리라 관뒀다.


사실 이걸 끝까지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말이 없는 일이기에(난 언제 나을 수 있을까? 아니, 낫는 것이 결말인가?) 이 연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내가 과연 꾸준히 쓸 수나 있을지, 다시 또 아무 말이나 쓰고 있지는 않을지 걱정이지만 일단 시작했으니 스스로를 응원해 본다. 이걸 제대로 끝내면 사치코에게 돌아갈 계획이다.


+ 근데... 그래도 제목이 아무 말이니 아무 말을 좀 해도 되지 않나?


+ 요즘 제일 재밌는 건 사마귀다. 신경안정제를 처음 먹기 시작했을 때 하필 '구의 증명'을 읽어버려 과호흡에 왔었다. 그 기억 때문에 사마귀 첫회를 볼 때 약간 긴장했는데 다행히 괜찮았다. 고현정은 정말이지 진짜 도른자 같다.


+ 복숭아의 계절이 끝나가고 있어 슬프다ㅠㅠ


+ 발리 공항에 도착하면 거의 자정이다. 잠깐 눈만 붙일 숙소로 이곳을 선택했다. 예산에 맞추다 보니 내가 지낼 숙소가 대체로 이렇긴 한데 여기가 제일 저렴하다.

가격이 너무 좋아 예약을 했는데 후기를 보니 조금 걱정된다. 침구가 눅눅하고, 화장실은 더럽고, 무섭고, 음산하다고 한다. 딱 2만 원짜리 방 같다고 하는데 대체 그건 어떤 의미일까 ㅠㅠ 하필 사마귀를 보고 있는 요즘이라 자꾸만 엉뚱한 생각이 든다.

문은 잠기겠지?

바선생님이 있으려나.

음... 어쩌면 이번 기회에 내가 드디어 '그러려니'를 학습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 브런치를 처음 시작했을 때, 지금도 구독자가 소소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작고 귀여웠을 때, 함께 했던 글벗들은 어딜 갔을까. 가끔 그립다.


+ 사실 소설을 끝내 쓰지 못 한다 해도 그건 또 그거대로 괜찮다 싶을 때도 있다. 완결나지 않은 소설을 계속 쓰며 언제까지나 세계평화와 북극곰을 걱정하는 귀여운(헤헤) 아줌마 같이 느껴져서 스스로한테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음... 확실히 허세가 있는 편이긴 하다. 내향인이라 퍽 다행이지 뭐야. 이 허세로 바깥을 돌아다녔다면... 어휴... 마이 재섭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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