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으니 두어달이 지났을 때였나 보다. 8월 말부터 다시 증상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과호흡이 오고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약을 먹은 후로 그런 일은 거의 없었는데 어느 아침 출근길에 느닷없이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터널 안이었다. 4킬로미터나 되는 길고 까만 터널 안에서 숨이 가빠왔다. 덜컥 겁이 났지만, 눈을 감고 생각했다. 여기는 수영장 안이고 나는 초급반의 고인물답게 오늘도 선생님의 빡센 뺑뺑이를 버텨내는 중이라고. 선생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체력을 좀 더 키워야 한다며 배평접자를 사정없이 시키셨다. 도대체 레인 위를 몇 번째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걸까. 이제 한 바퀴만 더 돌면 저기서 좀 쉴 수 있겠지? 한 바퀴만 더 돌자. 진짜 딱 한 바퀴만 더 돌고, 그러고 나서 쉬자. 그땐, 이미, 일 년을 넘게 하던 새벽 수영조차 힘이 들어 관둔 직후였지만 그 상상은 꽤나 도움이 되었다. 간신히 터널을 빠져나왔다.
약을 먹기 전, 출근길에서부터 심박수가 올라갔다. 그렇지만 괜찮다고, 전부 스쳐가는 행인 1, 행인 2일뿐이며 우리는 서로 간에 어떤 관계성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 집중하면서 천천히 호흡을 누르려 했다. 다시 그런 아침이 시작되는 것일까. 불안했다. 그리고, 이상했다. 현재 나의 근무지는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 곳이다. 물론, 밥벌이를 위한 어느 정도의 비굴함을 삼키고는 있지만, 그 맛은 이전에 비하면 계피 사탕 정도의 시시한 맛이다. 고작 이 정도는 스트레스라고도 할 수 없는 수준이라, 내가 처음 이 증상을 인지했을 때는 물론 다시 나빠지기 시작했을 때도 여전히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출근길에 심장박동이 거칠어지기 시작하여 사무실에 앉은 직후에 가장 거세진다. 그 사실이 주변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그들은 나의 증상을 모르겠지만(어쩌면 눈치챘으려나) 당신들 때문에 이런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냥, 내가 나약한가.
확실히, 좀 무능한가.
직장에서, 이게 뭐람.
남편한테 "나 또 호흡이 안 돼. 그래서 지금 너무 화가 나."라고 했더니, 가만히 듣던 남편이 이해가 안 되네,라고 했다.
"그치? 나도 이해가 안 돼. 약 먹고 엄청 괜찮아지고 있었거든. 선생님이 다음 진료 때는 약을 좀 줄여보자고 할 정도였거든."
"아니, 그게 아니고...... 증상이 좋아지다가 나빠지면 보통은 속상하다고 하지 않아? 그게 왜 화날 일이야? 어째서 화가 나?"
"호흡 하나도 내 마음대로 통제가 안되니까 화가 나지. 내 호흡인데, 내 맘대로 안 되잖아."
"왜 통제하려고 해? 통제라는 단어가 이 상황에 맞아?"
"......"
약간 한 대 맞은 기분으로 "어?" 했다. 그러네. 나는 왜 화가 나지? 왜 통제하려고 하지?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거기서부터 시작된 걸까.
아마도, 지금 나를 스치는 대화들과 그 속에 담긴 들숨과 날숨의 흐름과 막힘을 글로 담아두어야겠다는 결심을 그즈음 했던 것 같다. 나는 왜 느닷없이 숨 쉬기가 곤란해진 것인지, 알고 싶었다.
터널을 빠져나오고 이틀 후엔 회의가 있었다. 10~20분 정도의 아주 짧고 간단한 회의였는데, 회의 내내 숨이 잘 안 쉬어졌다. 마치 모든 것이 정지된 진공 상태의 세상 속에서 나만 홀로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 문득 시간을 달리는 소녀 마코토가 떠올랐다. 마코토는 타임리프를 통해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건너가곤 했다. 마코토가 엉터리 같은 이유들로 시간을 되돌리며 타임리프 기회를 모두 날려버렸을 때, 시간은 멈춰버렸고 치아키와 마코토만이 그 속에서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리곤 치아키가 마코토에게 미래에서 만나자고 했던가, 미래에서 기다린다고 했던가. 마코토는 울었고 치아키는 그렇게 미래로 떠나버린다. 마코토와 치아키는 다시 만났을까. 가끔씩 궁금해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걸 궁금해하기에 적당한 때가 아니었다. 나도 타임리프가 가능하다면, 마코토처럼 시간을 되돌릴 수 있어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신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나를 선택해야 지금의 이런 이상한 시공간 속에 갇히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느라 그날 회의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음날 병원을 찾았다. 나는 심각했는데 의사 선생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하셨다.
"추세예요."
"......"(다시 시작된 불신의 과호흡)
비키니는 기세라는 말을 들어봤어도...... 공황에 추세는 좀...... 너무하지 않나?
선생님께선 힘들 땐 아침 약을 두 번 먹어도 된다고 하셨다가 내 반응을 보시더니 "비상약을 처방해 줄까요?"라고 물으셨다.
"네! 네! 네!"
'필요시'라고 적혀 있는 비상약을 받아 들고 나오면서 이게 무슨 약인지는 묻지 않았다. 추세예요, 에서 이미 기세가 꺾여버렸다. 추세라는데 뭔들. 아무렴 어때.
저기, 나 공황장애래,라고 힘들게 이야기했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도 그랬다고 대답하여 나를 놀라게 했던 후배에게, 회의 중에 숨 막혀서 죽을 뻔했는데 안 죽더라? 했더니, 맞아요, 안 죽어요, 그래도 안 죽는다는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거예요,라고 했다. 결국은 경험으로 낫는 거라고도 덧붙였다.
왜 갑자기 나빠졌을까? 했더니 이유를 찾지 마라고 한다.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들도 있으니 그냥 받아들이라고 했다.
이건 시스터 탓이 아니에요. 그냥 일어난 일이에요.
그런 게 어딨어? 이유가 있어야지,라고 했지만... 사실 그 모든 이유들을 내 안에서 찾고 있던 중이라 비상약을 손에 꼭 쥐고 그날도 또 조금 울었더랬다.
어쨌든, 나는 이유를 알고 싶다.
내 호흡이 왜 이렇게 된 건지. 이전의 나라면, 얼마나 이전의 나인지. 어떤 나로 돌아가야 하는지.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