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에 프리다이빙 자격증을 땄었다. 다이빙 경험이 아주 가소로워 스스로를 프리다이버라 칭할 순 없어도 프리다이빙을 조금쯤은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뿌듯했다. 다이빙을 하게 되면서 이전엔 미처 몰랐던 새로운 감각과 새로운 자유를 얻은 듯했다.
물 안으로 깊이 들어가기 위해선 귀가 아프지 않게 이퀄라이징을 해줘야 하는데 그럴 때면 고막이 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 몸 안에 작고 가느다란 생명체가 살고 있는데 딱 그 순간에만 지이이잉-하며 나른하고 귀여운 울음소리를 내는 것이다. 신비로운 소리와 함께 고막이 펴지고 허리를 숙여 수면을 뚫고 들어갈 때면...... 우와아,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가 가진 호흡만큼 열리는 새로운 세상. 한없이 거대하고 푸르게 일렁이는 그곳은 온몸으로 감각할 수 있는 우주 같았다. 들어가면 너무 좋아서 웃음이 절로 나왔고 밖에 나가기가 싫었다. 문득, 언젠가 나의 생이 끝날 때가 온다면 이 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그렇게나 좋았다. 물 안으로 들어갈 땐 난생처음 들어보는 작은 생물의 울음소리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누릴 수 있었고, 다시 물 위로 올라갈 때면 수면 위에서 일렁이는 빛의 움직임을 뚫으며 내가 원래 머물던 세상,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으로 돌아왔다. 그 여정이 참으로 신비하고 행복했다.
내 호흡이 깊어질수록 조금씩 커져갈 새로운 세상. 내게 호흡은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문이었고 또 하나의 자유를 위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나의 호흡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시시때때로 엉망이 되어갈 때, 어쩌면 그건 내가 체감하는 만큼 엉망이지 않았을 수도 있고, 실은 별거 아닌 정도였을 수도 있지만, 유난히 절망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호흡이 갑자기 내게 이럴 수 있나, 했던 배신감 때문이었던 거 같다. 너마저, 나를? 너까지, 나를?
요즘은 요가를 자주 한다. 증상 개선을 위해선 명상과 요가가 좋다고 하여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은 거의 요가 동영상을 틀어놓은 채 저녁 시간을 보낸다. 주로 에일린 님의 동영상으로 요가를 하는데, 어느 영상이었더라? 수련이 끝날 때쯤 이런 말씀을 하셨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완벽함보다는 유연함을 기르세요.
그날. 그 말을 듣는데 뭔가 울컥 치밀어 오르면서 눈물이 차올랐다. 순식간에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일렁임이 갑작스러워 어... 어... 하다가 결국 울음을 터트리며 소리 내어 엉엉 울어버렸다. 이전부터 나는 사바아사나때 종종 울곤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사바아사나를 할 때면 눈물이 나곤 했는데, 그날은 유난히 그랬다. 모든 것은 변하니 유연함을 기르라는 말이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린 듯했다.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나의 컵 안으로 들어갈 시간이구나. 더 늦어지면 끝내 들어갈 수 없겠지. 이퀄라이징을 하여 고막 소리를 들으면서 허리를 숙여 깊이, 더 깊이, 바닥 끝까지 들어가야 했다. 다시 올라올 때는 틀림없이 수면 위로 빛이 일렁이고 있을 테니 용기를 내야 했다.
브런치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쓰고 싶은 글은 한결같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사랑하는지'이다. 많고 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사랑하는지. 쓰고 또 썼다. 그렇지만 나의 글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아니, 틀리다는 말은 적당하지 않다. 반은 감춰져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겠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어떻게 사랑하는지'에 대해선 쓰지 않았다. 그저 '얼마나'에 대해서만 쓰고 또 썼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대해선 드러내고 싶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한 나의 사랑법이 '어떠한지'에 대해선 부끄러웠던 거 같다.
남편이 처음 주식을 했을 땐 아주 소액이었다. 대체 그 몽끌레어가 뭐가 그리 대단한진 몰라도, 그 몽끌레어 옷 하나 없는 내가 안타까워 그 브랜드의 외투라도 하나 사주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그 마음을 의심하진 않는다. 진실일 테지. 남편은 틀림없이 그랬으리라. 제대로 된 브랜드 가방이나 옷이 없는 내게 미안하여 겨울 외투라도 좋은 걸로 사주고 싶은, 그런 소담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겨울은 가진 것이 없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계절이었으니, 아파트 놀이터에서 보면 누구나 하나씩은 입고 있는 듯한 그 몽끌레어를 내가 걸치게 된다면 우리의 겨울이 조금쯤은 포근하게 느껴지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정작 나는 그 몽끌레어가 뭔지도 잘 몰랐는데 말이다.
조금씩 수익을 얻게 되자 욕심이 생겼나 보다. 이미 그 몽끌레어를 사고도 남았지만 그 몽끌레어를 살 수 있게 되자 문제였던 것 같다. 한 벌만 더, 아니 기왕이면 온 가족이 다 입을 수 있게, 아니 몽끌레어 말고 샤넬 가방도 하나 더. 더, 더, 더. 기왕이면 하나만 더. 그 '더'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남편이 나 모르게 대출을 받았고, 수익을 알려주던 그래프가 거꾸로 움직이기 시작하여 대출금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내가 상황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 이전부터 뭔가 좀 이상한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모른 척하고 싶었다. 믿음이라기 보단 '설마'였다. 대책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설마 우리 형편에 그런 짓을. 바보천치도 아니고 말이야, 설마 그럴까. 그때도 호흡이 빨라지긴 했다. 불안에 가까운 그 설마가 점점 뚜렷해지며 몸짓을 불려 가고 있다가 마침내 터져버렸을 때, 호흡이 멈춰버린 듯했고 나는 남편의 뺨을 내리쳤다.
몇 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그 순간의 얼얼함이 손끝에 남아 있는 듯하다. 황망해하던 남편의 눈빛 또한 잊히지 않는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해서 나를 불행하고 만들고 있는 그 사람에게, 너는 그냥 죽어버리라는 악다구니를 퍼부으며 사정없이 빰을 때렸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속였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약속했지만 또 나를 속였고, 나는 그런 남편을 믿으려 했지만 끝내 완전히 믿지는 못하여 늘 불안해했으며, 불안은 또다시 현실이 되어 내 뒤통수를 치길 반복했다. 남편이 나를 위해 시작했다는 일이, 더 이상 나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또다시 할 수밖에 없었다는 일이, 나를 너무도 큰 가난과 불안에 빠트리고 있었다.
있잖아. 나는 네가 정말로 너무 미운데, 네 눈물에 마음이 찢어질 것 같고, 내게 뺨을 맞으면서도 나를 붙잡는 네가 가여워서 도리어 내가 죄인 같아. 이것도 사랑이라면, 그 망할 놈의 사랑이라는 거. 참 거지 같구나. 천하의 거지깽깽이구나. 생각했다.
그즈음의 내 호흡이 어떠했는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꽤 오래전부터 제대로 숨 쉬는 법을 잊고 있었던 거 아닐까. 제대로 된 숨이 무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조금쯤은 알게 되는 날도 오겠지.
지금은 그저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돌리며 아주 느리게 들숨과 날숨을 교차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