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선생님의 반바지

by 날아라빌리

나의 호흡이, 나의 의지와 통제의 범위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후 두어 달 정도가 그냥 흘러갔다. 이걸로 실비 보험 갱신에 문제가 있는지, 인사과에 진료 기록이 넘어가진 않는지(그럴 리가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그리고 그렇다 한들 그게 뭐 대수라지만) 재차 확인하고도 계속 진료를 미루고 있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세상이 꽤나 유연하고 다정해졌다지만, 옛날사람인 내게 그곳은 여전히 예사롭지 않은 무게감을 지닌 곳이었다. 단순히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거였다면, 그저 그 문제만 있었다면, 어쩌면 끝내 병원을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호흡의 곤란은 점차 범위를 넓혀가고 있어, 나는 사람들과 일상의 시간을 걷기 위해 별 뜻 없이 주고받는 말조차 힘들어하고 있었다. 이유 없는 분노가 끊임없이 솟아나고 있었다. 내게 말을 거는 사람들이 모조리 미웠다. 내게 건네는 말들이 하나같이 필요 없는 말 같았다. 그들은 그저 나의 에너지를, 나의 시간을, 나의 감정을 무의미하게 소모시키며 닳아 없애고 있을 뿐이었다.


안녕

어제 잘 잤어?

점심은 맛있었니?

날씨가 좋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

고작 이 정도의 말을 주고받는 일도 힘이 들었다.


네가 말 걸어서 더 이상 안녕하지 못해.

어제도 네가 말을 걸었는데... 내가 잘 잤겠냐고.

내 점심이 대체 너랑 무슨 상관이야?

날씨 따위 좋든 말든.

좋은 하루는 내가 알아서 보낼 테니, 그만 좀 쳐다볼래?

내 속에 이런 말들이 가득 차 있어 숨이 안 쉬어지나. 이런 적대감의 밀도가 너무 높아 들숨과 날숨이 교차하지 못하고 있나. 아무래도 이건 공황장애라기보단, 대인기피증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게 무어든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러한 적의와 불신을 간신히 내 안에 숨겨두고 있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올 때면 가족들에게 퍼부었는데, 참지 못 하고 터져 나오는 날들이 잦아지면서 가족들이 힘들어했다. 남편에겐 바로 조금 전에 분노했다가 다시 그 분노를 사과했으며 그러다 뜬금없이 울기를 반복했다. 나는, 도무지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는 그래프를 그려가며 정체불명의 진원 같은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종잡을 수 없는 나를 보는 아들의 눈빛이 '비정상'적인 어떤 존재를 보듯 하고 있어, 이제는 진짜 병원을 가야겠구나, 했다.


의사 선생님 앞에 앉으면, 아마도 무슨 일 때문에 왔느냐는 질문을 할 테지. 그럼 나는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까. 며칠 동안 고민했다. 시작은 숨이 안 쉬어지는 거였으니 그걸로 해야 하나. 식당에서 개가 짖었어요. 너무 크게 짖었는데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개가 그렇게나 짖는데도요. 전면이 폴딩도어였고 활짝 열려 있었는데...... 그래서 진짜 너무 크게 들렸는데 말이죠. 계속 그 소리를 듣다 보니 숨이 안 쉬어졌어요. 그전부터 조금씩 그랬던 거 같은데 그날이 제일 심했던 거 같아요.

아, 그런데...... 숨이 안 쉬어져요,라고만 이야기하면 선생님은 내 자율신경에만 관심을 두려나? 그렇다면, 나는, 정체 모를 이 분노와 억울함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걸까. 음... 아무래도 숨이 안 쉬어져요, 보다는 말 같은 게 하기 싫어요,라고 시작하는 것이 좋으려나.

접수를 하고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는 내내 고민했지만, 막상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았을 땐 세상 온화한 그 표정이 꽤나 맘에 들지 않아 살짝 건조하게 "숨이 안 쉬어져요."라고만 말했다.


숨이 왜 안 쉬어지나요?

...... (알면 왔겠냐)

언제부터 그랬나요?

시청 앞에서, 사람 많은 식당에서, 저어기 진입로 초입에 있는 커다란 스타벅스에서, 터널에서요. 사람이 많은 곳이나 시끄러운 곳에서 그랬던 거 같아요. 그리고 심장박동이 자주 빨라져서 약간 불편할 정도고, 당연히 말할 때도 숨이 차요.

증상을 이야기했더니, 선생님은 자율신경이.....로 시작하여, 내가 이미 인터넷이나 유튜브로 익힌 것들을 설명하셨다. 그러는 동안 나는 속으로, 여기에 오기까지 그걸 안 찾아봤겠냐고요. 전부 다 아는 거라고요,라는 생각을 하며 대치 상태의 적군을 바라보듯 내 앞에 앉은 선생님을 관찰했다.


의사 선생님은 가운을 입고 있지 않았다. 그날만 안 입었나, 싶었는데 갈 때마다 안 입고 계신 걸 보면 아마도 원래 안 입는 거 같다. 그러고 보니 아들 때문에 소아정신의학과를 방문했을 때도 그랬다. 모두들 편안한 옷차림을 하고선 하얗고 말간 얼굴로 뭐든지 털어놔봐,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실은, 어쩌면, 아무 관심도 없을...... 나처럼 피곤과 지침에 절여져선, 그저 너는 교감신경이 과하게 활성화되어 있으니 좀 눌러줄게, 자, 다음 환자, 정도만 말하고 싶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었나요? 지금이든 예전이든.

...... 아, 아니요. 없어요. 스트레스는 크게 없어요.

나도 모르게 조금 머뭇거리다가 대답했고, 선생님도, 나도, 그 머뭇거림만큼 잠시 말이 없었다. 선생님의 눈은 그 머뭇거림의 의미를 묻고 있었지만 대답하기 곤란했다. 아니, 그러니까, 그런 건 그렇게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요, 선생님. 정말은요, 나도 잘 모른다고요,라는 대답을 눈으로 했다. 게다가 뭔가를 털어놓기엔 선생님의 표정이 너무 평온했다. 거 참 좋겠네요,라고 나도 모르게 비아냥 거리고 싶을 정도로 평화롭고 다정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싫었다. 그런 얼굴, 내가 자주 해봐서 아는데 전부 가식일 테고, 알면서도 방심해 버려 사실은요... 하며 털어놓는다 한들 형식적인 공감일 텐데 누군지도 모를 사람한테 내 패를 보여줄 순 없는 노릇이지. 그 순간에 나는 정말로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는데, 또 맘 속 한편에선 이럴 거면 여기까지 왜 왔냐, 약이라도 받아 가야 숨을 쉴 거 아니야,라고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어 결국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예전에는 살짝 힘들었어요. 지난번 근무지가 꽤 고단한 곳이었어요. 지금은 괜찮은데 그땐 그랬어요. 그치만 그때 잘 넘어갔고 지금은 아무 일도 없는데 왜 이제 와서 이러는지는 진짜로 잘 모르겠어요. 아, 그리고, 말하는 것이 조금 힘들어요.

말하는 것이 힘들어요? 이 증상이 시작되고 나서부터요? 숨이 차서?

아니요. 물리적으로 힘들다기보단 그냥 심적으로요. 말이 너무 하기 싫어요. 안녕, 잘 잤니?라는 정도의, 뜻 없이 주고받는 통상적인 말조차 하기가 싫어요.

나는 조금씩 머뭇거렸지만 조금씩 털어놓았고, 일주일 넘게 고민하며 쌓아뒀던 말의 반의 반 정도는 풀어내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공황 초기라고 진단하셨다. 우선은 가장 약한 약부터 먹어보고 일주일 후에 다시 조절해 봅시다,라고 하셨다. 넵,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나오는데 생각보다 별 거 아니네 싶었다. 병원도, 상담도, 의사 선생님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무 일도 아니었다. 조금 시시하다 싶을 정도로 아주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날. 선생님은 종이에 컵을 그리셨다.

기본적으로 남들보다 에너지가 적은 사람이에요. 컵이 작아요. 그 안에 계속 담기만 했더니 이제 가득 차서 퍼내줘야 하는데, 약이 그걸 퍼내주는 역할을 할 거예요. 그렇지만 컵 크기는 여전할 거고 컵 안에는 계속 무언가 들어올 거예요. 그걸 스스로 퍼내며 조절하지 못하면 이번에 괜찮아진다고 해도 또 재발할 거예요.

아직 괜찮아지지도 않았는데 선생님은 재발을 말씀하셨다. 물론, 컵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온 이야기일 테지만 계속 맴돈다. 재발할지도 몰라요. 재발할지도 몰라요. 재발할지도 몰라요.

인터넷에서 봤던 것처럼 약을 먹으니 거짓말같이 괜찮아졌다. 화도 나지 않았고, 대화를 주고받는 일도 어렵지 않았으며, 숨도 잘 쉬어졌다. 다만, 심장박동이 빨라지던 증상은 여전해서 일주일 후에 가서 말했더니 약을 바꿔주셨다. 너무 쉽게 괜찮아져서 도리어 조금 어처구니없을 정도였다. 감기에 걸린 정도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처럼 굴었던 느낌이랄까. 괜찮아지자마자 쓸데없이 요란법석을 떨고 난 후의 머쓱함이 밀려들어 부끄러웠다.


아침 약은 괜찮은데 저녁 약을 먹으면 나른해진다. 아, 뭔가 졸리는데,라는 생각이 들고 전등불이 꺼지듯 곧 잠들어버린다. 잠들기 전엔 항상 의사 선생님께서 그리셨던 컵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날의 나의 머뭇거림 들을 떠올린다. 그 머뭇거림 속에 담겨 있던 것들이 가뜩이나 작은 나의 컵을 내내 채우고 있겠지. 대체 그 안에 뭐가 있나, 생각하다가 순식간에 잠든다.


언젠가 아들의 소아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이 글은 내가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글일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했었다. 어쩌면, 이번에도 그럴 것 같다. 나의 컵과 나의 머뭇거림 속에 무엇이 들었나. 나는 결국 그걸 퍼내야 할 텐데 그 과정은 내가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걸 테다. 다만, 그것이 과연 무해한가에 대한 고민은 있다. 무해한 솔직함이 있을 수 있을까. 나의 솔직함은 일방의 시선일 테고 그 방향은 누군가에겐 무해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되나. 나는 얼마만큼 솔직해질 수 있고, 얼마만큼 솔직해져도 되나.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문득 선생님의 반바지가 떠올랐다. 그날 선생님은 가운을 입지 않고 편안해 보이는 재질의 반팔 니트를 입고 계셨다. 선생님께서, 내가 이미 다 검색해 본 교감 신경과 부교감 신경을 설명하시는 동안 나는 그저 '음, 역시 이쪽(?) 계통은 가운을 입지 않네.'라는 생각을 하며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의 재질을 살폈다. 그러다 시선이 조금 더 아래를 향했는데 선생님께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보이는 실루엣을 살펴보니 아무래도 반바지를 입고 계신 듯했다. 응? 하다가 오오~ 반바지? 했다. 단정하고 편안해 보이는 표정과 옷차림 아래로 발랄하고 시원한 반바지를 숨기고 계셨던 것이다. 의사 선생님도 그 정도는 숨기며, 그 정도의 가식은 지닌 채로 환자를 진료하는데 나 또한 극단적으로 솔직할 필요 있을까. 그 누구도 나에게 완전무결한 솔직함, 완벽하게 무해한 솔직함을 원하진 않았잖아. 나는 항상 왜 이렇게 극단적일까. 어째서 가식이 없어야 진실이라 생각하는 걸까. 선생님의 반바지만큼은 솔직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딱 그 정도만큼의 가식은 있어도 되지 않나. 글이든 말이든 삶이든 뭐든 간에 말이다. 응?!


가뜩이나 컵도 작다는데 이런저런 생각들을 또 쌓아가고 있는 날들이다. 그치만, 지금은 내가 나른해지고 느슨해진 틈을 타 컵이 넘치지 않게 비워지고 있으니 우선은 그걸 믿어보는 수밖에.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으며 컵 밑바닥을 향해 쑤욱 고개를 집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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