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호흡의 안부

by 날아라빌리

언제부터 정신건강의학과라고 바뀐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정신건강의학과였는데 내가 정신과로 잘못 알고 있었을까. 음... 아무렴 어때. 어차피 그 단어가 지닌 무게는 별반 다를 바 없다.

예전에, 내가 지금보다 어렸고 아직은 결혼하기 전이라 엄마 옆에서 살고 있을 때, 엄마가 수면제를 처방받아 먹기 시작했다. 지침과 짜증이 뒤섞인 표정으로 입 안에 약을 털어 넣는 모습을 보면서 갱년기를 겪고 있는 중년의 엄살이라 생각했다. 내가 지금 불편하니까 알아서들 자세를 낮추고 나를 배려하거라,라는 엄포를 위한 수단이라 여겼기에 진심을 기울이진 않았다. 약을 좀 줄이자며 엄마를 달래고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론 우리 엄마가 또 유난을 떨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조금 피곤하게 여겼던 마음이 틀림없이 있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을 때, 처음엔 정말로 폐에 문제가 생긴 줄 알았다. 감기를 꽤 오래 앓고 난 직후였다. 프리다이빙 특강 중에 물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힘들었고 수영을 할 때 조금씩 버거웠던 것이 최초로 인식했던 곤란이었기에 호흡기에 문제가 생겼구나, 싶었다. 그러던 중 자꾸만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났고 그 사소함을 시작으로 온갖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와 더 큰 화를 일으켰으며 결국 그 화들이 끄기 힘든 불로 이어지고 있어, 문득 그 옛날의 엄마가 떠올랐다. 거울 속 내 표정이 그때의 엄마를 닮은 듯했다.

왜... 어째서? 나는 다른데. 나는 아닌데.

나는 엄살 같은 거 찌질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이런 나약함을 누구한테도 들키고 싶지 않은데?

점점 물 밖에서도 숨 쉬기가 힘들어졌다. 출근길에 터널을 지날 때면 숨이 막혔다. 약속 장소를 찾아 길을 헤매던 중에도, 사람이 많은 카페에서도, 개가 짖던 식당에서도, 회의 중에도 수시로 숨이 막혔다. 눈앞이 흐려지면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길에 주저앉아야 했을 때 무섭고 혼란스러웠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이런 종류의 답답함은 난생처음이라 미세한 자극에서 바르르 떨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만, 나는 그 순간 뭔가에 마비된 듯 온몸의 감각이 상실된 것 같은 무감과 막막함을 느꼈는데 동시에 미세한 자극에도 바르르 떨었다는 것이 조금 이상하다. 어쩌면 내가 기억하는 그 생생함. 바르르 떨었다는 기억은 그저 상상 속의 감각일 뿐인가 싶기도 하다. 실체의 감각이 마비되면서 상상의 감각이 온몸의 세밀한 부분까지 다 살아난 걸까. 아니, 모르겠다. 어차피 감각인데 그 감각의 실체까지 어찌 구별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도 내가 숨이 막힌다고 느끼는 순간이 실제로 나의 신체에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그저 상상의 감각인지 잘 모르겠다. 의사 선생님께 물어봤더니 상상 임신처럼요? 하며 그저 웃으실 뿐이었다. 암튼 그날은 꽤 두렵고 혼란스러웠다. 길에 주저앉아 숨을 헐떡이며 온갖 생각을 다 했다.

내가 확실히 폐를 다쳤나 보다. 큰 병은 아니겠지. 근데 요즘 왜 이렇게 짜증이 날까? 아니, 짜증만 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말 시키는 것도 너무 싫고 꾸역꾸역 대답해야만 하는 상황이 억울할 정도라 너무 화가 나는데 이런 기분은 뭘까. 아... 모르겠고, 진짜로 이 답답함은 뭐지?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혼자 헛구역질하듯 숨 막혀했던 연기가 이런 순간이었나.

그날 이후부터 어렴풋이 어떤 병명을 떠올리며 네이버 창을 열어 검색해보곤 했지만, 인정하기 힘들었다. 그런 건 먹고살만하니까 부리는 엄살, 연예인들이 나 좀 봐주쇼~ 할 때나 들이미는 무기 같은 거로 여기고 있었기에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그즈음부터 잠을 자는 일도 힘들었다. 어느 일요일 새벽에 간신히 얕은 잠에 들었다가 숨이 안 쉬어져 다시 깼다. 이러다 죽으면 어쩌지? 싶을 정도로 숨이 안 쉬어져 화가 났고 눈물이 났다. 내가 왜. 꾀부린 적 없이 열심히 살아왔는데 내가 왜. 뭔가 억울하고 분했다. 정확하게 그 감정이었다. 억울함과 분노. 다시 잠들기가 힘들어 뜬 눈으로 아침을 기다렸다. 진작에 병원을 갔어야 했는데,라는 후회와 함께 내일은 꼭 병원을 가야지,라는 다짐을 몇 번이고 했다. 그리고, 내가 가야 할 병원은 당연히 호흡기 내과였다. 나의 예민함과 짜증이 보통때와는 많이 다른 형태라고 느꼈는지 남편은 조심스레 정신건강의학과를 이야기했지만, 그런 남편을 향해 지금 누가 누굴 정신병자 만들고 있어,라고 쏘아붙이곤 호흡기 내과를 찾았다.

종종 숨이 안 쉬어지고 말할 때 자주 숨이 차오른다며 증상을 설명하니 의사 선생님께서 고개를 갸웃거리셨다. 음... 하시더니, 일단 검사를 해보자 하셨다. 1층부터 3층까지 여기저기 검사실을 오르내리며 엑스레이, 심전도, 심장 초음파, 폐기능 검사, 피검사 등 관련된 검사를 다 했다. 폐기능 검사를 할 때 검사해 주는 선생님께서 깜짝 놀라셔서 나도 놀랐다.

"폐기능이 너무 좋은데요?"라고 하셨다.

"...... 그 정도는 아닐 텐데요."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론 아, 그렇구나, 왠지 그럴 것 같더라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심전도 검사를 받을 때도 그래프 모양이 안정적이길래 혼자 속으로 아, 그렇구나 했었다. 검사를 받는 내내 무언가를 조금씩 내려놓고 있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초조했지만, 한편으론 드디어 답이 정해지는구나 싶어 조금씩 담담해지기도 했다.

의사 선생님께선 특이사항은 없다고 하셨다. 그리곤, 조심스레 덧붙이셨다. 신체 기능엔 이상이 없는데 혹시 계속 이러면 다른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또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다들... 보통, 처음엔 여기부터 와서 검사를 받는다는 말을 하시며 위로하듯 괜찮다고 하셨다. 뭐가 괜찮다는 말이죠? 그 괜찮음은 대체 누구의 괜찮음이죠? 따져 묻고 싶은 날카로움이 불쑥 솟아오르려 했기에 꾹꾹 눌렀다. 확실히 나의 감정들이 평소와 많이 달랐다. 거칠어진 호흡만큼 무언가가 많이 거칠어져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 날의 검사는 필요 없는 검사들이었지만, 무언가를 체념하며 받아들이는 과정이었으니 꼭 필요한 검사이기도 했다.

내 호흡이 안녕하지 않다. 더 늦어지기 전에 내 호흡의 안부를 물어야만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화를 확인해 보니 남편의 카톡이 잔뜩 와 있었다. 몇 시간 전에 검사실에 들어간다는 카톡을 보낸 후로 연락을 하지 않고 있었다. 전화도 받지 않고 있자 걱정스러운 물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 괜찮아? 의사가 뭐래? 지금 어디야?

다시 그 옛날의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의 표정이 어땠더라. 그런 엄마를 보는 나의 표정은 어떠했더라. 나는 지금, 남편한테 유난스럽고 피곤한 존재일까. 나의 엄포를, 나의 엄살을, 남편도 눈치챘을까. 그때... 엄마한테 조금 따뜻하게 대해줄걸. 뒤늦은 후회와 미안함에 눈물이 났다. 엄마한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한 번쯤은 진심을 기울이며 괜찮냐고 물어봤어야 했다. 엄마는 그때 많이 외롭고 당황스러웠을 텐데.... 지금의 나처럼.

이전 02화AB형계의 성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