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금쪽이는 나였나

by 날아라빌리

아들의 3학년 학부모 상담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검사를 권유받았다. 아이가 ADHD인지 그 외 다른 이유인지까진 잘 모르겠지만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어 보이니 빨리 조치를 취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아주 놀랐지만 놀라고 앉아 있을 겨를이 없었다. 집에 돌아와 조금 울고는 얼른 병원 예약을 했다. 아들은 풀배터리 검사를 받았고 양육 태도 파악을 위해 남편과 나는 다면적 인성검사를 받았다. 그때 받아 든 13장의 보고서. 아들은 소아우울증이었다. 당시에도 어렴풋이 짐작했었고, 지금은 거의 확신하는데, 아마도 나의 불안이 아들에게 전이되었던 것 같다.

어제는 갑자기 그 보고서 생각이 나서 꽤 오랜만에 펼쳐보았다. 온 신경을 아들에게 기울이던 때라 그때는 잘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환모의 검사 결과, 임상적으로 유의한 수준의 우울감이나 불안감 등의 부적 정서는 경험하지 않은 상태였으나, 평소 감정을 다소 통제하는 것으로 나타나 부적 감정이 누적되어 역치를 넘어서는 경우 갑작스럽고 신경질적인 방식으로 표출하거나 신체적 증상이 동반될 수 있겠음.

환모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나 상황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편이어서 자신이 계획한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거나 주변 사람들이 따라오지 않을 때면 상당한 스트레스를 경험할 수 있겠는데, 이로 인해 환아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통제적이고 때로는 강압적인 태도를 드러내며 환모의 가치관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모습으로 훈육할 수 있겠음.

사회적 환경에서 집단의 가치나 전반적인 분위기에 동조되고 적절히 융화되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겠으나 감정을 지나치게 배제하고 도덕적 판단이나 이성적 근거로 주변의 요구에 대응하다 보니 대인관계에서의 친밀감을 형성하거나 적극적으로 사교하는 것에서 정서적 소진감이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겠으며, 대부분 소수의 관계를 선호하거나 혹은 사회적인 장면에서의 적극성을 다소 떨어질 수 있겠으며, 이로 인해 가정 및 환아에게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주의의 초점이 좁고 한정적이다 보니 환아의 사소한 행동에도 과잉 반응하거나 과잉 지각하면서 그냥 지나쳐도 될 사안까지 피드백하는 경우가 많음에 따라 오히려 환아와의 관계가 악화되는 측면도 나타날 수 있겠음.



보고서를 처음 받아 들었을 때는 이미 진료를 받으면서 조금씩 전해 들었던 내용들이라 그저 차분하게 읽어나갔었다. 그러다가...

'환아는 자신이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수준보다 훨씬 더 많은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고 지각하면서 철저하게 탐색하는 경향이 다분한데, 높은 불안으로 인해 단순하게 보고 넘길 수 있는 사안을 지나치게 관련지어 생각하면서 지레 짐작하거나 잠재적인 위험에 대해 과대하게 인식하는 등 다시금 높은 불안을 경험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이 부분 즈음에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아들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나의 이야기였고, 아들의 불안이었지만 나의 불안이었다. 나 때문에 아들이 이렇게 된 걸까. 한동안은 계속 그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다. 아들을 친구들 속으로, 교실 안으로,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려놓고 말 테다. 어떻게든 그리 하고 말겠다는 다짐과 함께 대체 어찌하면 좋을지 그 궁리만 했었다. 달래었다가, 다그쳤다가, 왜 이러냐 물었다가, 이러지 마라며 울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맙소사! 나는 도대체 왜 그 모양이었나 싶다. 그 모든 엉망진창에 너무도 큰 열심을 기울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나 보다. 나라는 사람은, 역치를 넘어서는 경우 갑작스럽고 신경질적인 방식으로 표출하거나 신체적 증상이 동반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때는 역치를 넘어선다는 게 뭔지, 신체적 증상이란 것이 뭘 말하는지 몰랐다. 아니, 아예 그 부분에 대해선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이제야 생각해 보니 역치를 넘어선다는 것은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나의 컵, 그 컵이 가득 차서 넘쳐버린 것이었고, 신체적 증상이란 아마도 지금 내가 겪고 있는 호흡 곤란을 의미하는 것 같다.


내 호흡이 왜 이렇게 된 건지 이유를 알고 싶었지만, 특별한 이유나 어떠한 사건 때문이라기보다는, 나는 그저 컵을 비워낼 줄을 몰라 가득 찰 때까지 내버려 두었고 그러다 넘쳐버린 것이었다.


약 때문에 요즘은 늘 내가 먼저 잠이 들어서 잠들기 전 아들과 나누는 대화가 조금 뜸하던 중이었다. 그날은 무슨 이유인지, 휴대폰 게임을 하던 아들이 자리에 누운 내 옆으로 와서 슬며시 누웠다.

"벌써 자려고?" 물었더니 그냥 말없이 뒤척이기만 한다. 누운 채로 양 발을 뻗어 손으로 잡더니 해피 베이비 자세를 한 채 왔다 갔다 한다. 옆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혼자 그러고 있더니 문득 생각난 듯 엄마, 하고 나를 불렀다.

"엄마, 요즘 먹는 약... 그 정... 정..." 하며 머뭇거리길래 "정신약? 정신약이라고 말해도 괜찮아."라고 했다.

"응, 그거. 그 약 먹으니까 기분이 어때?"

"음... 잘 모르겠어. 약 먹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는데, 약 먹는 거 자체가 막 그렇게 기분 좋진 않아. 너는 어땠어?"

"너무 싫었지. 엄마가 정신약이라고 하는 것도 싫었고."

"아, 그렇게 말해서 싫었어? 미안해."

"당연히 싫지. 정신약이라는 말이 좋은 사람이 어딨어? 엄마는 괜찮아?"

"몰라. 잘 모르겠네."

아들은 여전히 손으로 발을 잡은 채 몸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다가 말을 이어나갔다.

"엄마가 그때 나한테 정신병자라고 했잖아. 그렇지만 나는 엄마한테 그런 말 안 할 거야. 속상하잖아."

"......"

아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다. 나도 아들을 따라 해피 베이비 자세를 하고선 아들과 같은 방향으로 흔들흔들 움직였다. 그래, 그즈음의 어느 날에, 내가 끝내 무언가를 참지 못하여 그런 말을 쏟아내었지. 그래서 아들이 엉엉 울었지. 그때 아들 표정이 어땠더라. 슬퍼했던가, 분노했던가. 아니, 내가 아들 얼굴 위로 스친 표정을 읽긴 했던가. 그저 내 감정에 매몰되어 있진 않았던가. 아들과 나는 가만히 흔들흔들 움직였다. 창밖에선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을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고, 너무 미안해서 차마 미안하단 말도 꺼내지 못 한 채 풀벌레 소리만 듣고 있었는데, 아들이 한마디 더 보탰다.

"근데, 엄마. 엄마가 그럴 때, 사실 그때 엄마가 진짜 좀 정신병자 같았어."

음... 맞아. 그랬겠다. 충분히 그러했겠다.

정신약, 정신병자. 그 모든 말을 아들은 나한테서 배웠다. 그 순간의 슬픔도, 분노도, 모두 나한테서 배웠을 테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미안하다고 했더니, 괜찮다고 한다.

엄마가 그때 너를 너무 속상하게 해서 이제는 엄마가 아픈 건가,라는 말을 하며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하니 뭘 또 자꾸 미안하다 그래?라고 한다. 여전히 해피베이비 자세를 한 채 흔들흔들하다가 괜찮아, 엄마,라고 말하더니 내 손을 꼭 잡았다. 아들은 곧 잠들었고, 나는 그 밤에 잠들지 못했다.


그때. 이제 막 10살인 된 아들을 보며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했었다. 나는 아들을 모르고, 아들은 나를 모른다. 우리가 여전히 서로를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사랑이 존재하고 있으니, 어쩌면 거기서부터 뒤틀림이 시작되고 있나. 아니면 거기서부터 이해가 시작되고 있나. 언제나 궁금해했다. 아니, 궁금이라는 표현은 너무 가볍다. 꽤나 절박한 마음으로 답을 원했다.

모순이 가득한 마음으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내가 미친놈이어도 괜찮으니 불안에선 한 걸음 물러서고 적어도 그 한 걸음만큼은 이해에 가까워지고 싶다고. 언제나 그런 바람을 품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정말 그랬을까.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미친놈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대부분의 것들을 부정하는 것에 온 마음을 기울였던 것 아닐까. 그러는 동안 컵은 계속 채워지기만 했고 나는 끝내 비워내는 법을 익히지 못한 것이다.


다음날 아침. 남편에게 아들과의 대화를 이야기해 줬더니, 그땐 어쩔 수 없었지. 네가 너무 힘들었으니까. 나도 사고 쳤는데, 직장도 힘들고, 애까지 힘들게 하니 아마도 그때 네가 버텨내느라 힘들어서 지금 아픈 건지도 몰라,라고 했다. 어쩔 수 없지,라는 말이 위로가 되면서도 어쩔 수 없으면 그래도 되었나, 싶었다. 어쩌면 나의 컵 바닥엔 내가 차마 건네지 못한 미안함들이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도리 없는 상처와 상실이라 생각하며 외면하고 꾸며냈던 마음들을 이제라도 똑바로 들여다봐야 하나, 아니면 그저 묻어둬야 하나. 이유 없는 일들이라지만 과연 이유가 없을까.

들숨과 날숨 하나하나가 이어져 나를 살아가게 하는데, 그 이어짐의 소중함을 몰랐다 하며 그 끊어짐의 의미를 모른 척해도 되는 걸까.


여전히 나는, 나의 작은 컵을 어떻게 비워내야 하는지 모른 채 일렁이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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