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먹고 있는 약의 부작용으로 조증이 생긴 것인지(핑계이오만...) 혼자 주접을 좀 떤다.
주접을 떨다 보니 좀 더 구체적으로 떨고 싶어져 닫아뒀던 블로그에 뭔가 끄적였더니 광고하는 사람들만 하트를 눌러서 다시 닫아야 했다. 아, 나는 대체 어디서 주접을 떨어야 하며 별 볼일 없는 일상은 어디다 털어놔야 할까. 이거 진짜 고민된다.(갑자기?)
브런치에는 워낙에 고퀄의 글이 많아 주접만큼은 여기서 떨고 싶지 않았는데, 오늘은 진짜 어쩔 수가 없이 일단 여기서 주접을 좀 떨어야겠다. 아예 매거진을 ‘오늘의 주접’으로 하나 새로 만들까 했으나 싫증을 금방 내는 성격과 하찮기 짝이 없는 지구력을 고려해 봤을 때, 주접을 떨어본다 한들 한 달도 안 되어 끝날 듯하여 그것도 관두기로 했다. 게다가 이미 만들어놓은 매거진조차 관리를 못 하고 있단 말이지. 거의 비슷한 내용들인데 왜 따로 만들었나 몰라? (과거의 나야, 어디 대답 좀 해보거라.)
요즘, 주접떤다는 말에 좀 꽂혔다. 그 뭐랄까. 온갖 악행과 실망이 난무하는 요즘 시대에(아, 밑밥을 좀 거창하게 깔고 있구먼. 그렇지만 요즘은 정말로 뉴스 보기가 매우 기 빨린다 말이지) 주접을 떤다는 건 매우 선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주접은 살짝 덕질의 맥락에서 오두방정을 떨고 있음을 뜻하는 말이며 그 말은 즉, 내가 요즘 주접을 떨 정도로 좋아하는 대상이 생겼다는 말인 것이다.
티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이 얼굴을 발견하곤 너무 놀래서 자리에 붙어 있던 엉덩이가 들썩였다. "쟤 누구야?" 했더니, 남편이 "우영우에 나온 애네."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우투더어쩌고저쩌고 하던 드라마가 있었던 것도 같은데 그걸 제대로 본 적이 없었서 저 얼굴을 몰랐다.
세상에나 마상에나.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계속 ‘우와아아아아~~~~~~~~ 진짜 얼굴, 미쳐따아아아아아'이 상태이다.
아들을 야단칠 때도 나도 모르게 “세자!”(매몰찬 말투)라고 해버릴 정도로 저 얼굴과 저 말투에 빠져 있다.
당연히!! 과거 영상을 파고 있는 중인데 예능도 거의 안 하는 데다가 중간에 군대에 갔던 것인지(사실, 그리 어려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는데 군대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놀랐다) 뭐가 별로 없어서 아주 금방 6년 전까지 도달했다. 그래서 이번 주엔 6년 전에 했다는 이 드라마까지 보고 있는 중이다.
당시 이 짤이 반전짤로 그렇게나 유행했다는데, 나 혼자 이제야 접하곤 '입틀막 + 발 동동 + 옆에 아무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남편 어깨 사정없이 두드리기'를 하고 있다.
도른 눈깔로 유명했다는데, 나한텐 그냥 너무 멋진데? 피 칠갑하고 있으니 더 도른자 같아서 완전 좋은데? 알고 보니 내 취향이 도른자였나.
그래, 내가 도른자를 좋아했구나. 수긍하다가도, 또 저런 눈알로 저렇게 슬퍼할 때는................ 그냥 심장 아프다. 아니 아니, 그냥 다 모르겠고요, 전부 나가주세요. 혼자 있고 싶어요.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저 얼굴 자체에 서사가 가득해서 저 얼굴을 몇 주째 들여다보고 있자니 갑자기 소설이 쓰고 싶어 졌다는 것이다.
요즘 다시 외장하드를 뒤적이며 쓰다 말았던 소설을 보고 있는데, 그걸 보다 보면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답답하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어 살짝 화가 난다. 화가 나니 진정하기 위해 다시 저 얼굴을 보게 되고 저 얼굴을 보다 보니 역시나 소설이 쓰고 싶어 지는데 그러다 보면 또 화가 나고... 요즘 혼자 방에 틀어박혀 미친자처럼 흐뭇해하다가 갑자기 빡쳐하길 반복하는 중이다. 암튼 어쩌다 보니 다시 소설이 쓰고 싶어졌다.
도른 눈깔 후에 했던 작품이 아마도 이건가 본데, 이건 언젠가 내가 쓰던 소설(난 왜 완결이 없을까 ㅠㅠ) 속에서 나타내고 싶어했던 딱 그 분위기다.
저 장면을 보다가 깜짝 놀라서 몇 번이고 반복하여 들여다봤는데 보다 보니 좀 무력해지기도 했다. 아니, 도대체가 말이야, 글 같은 거 필요가 있나. 얼굴에 서사가 있고 개연성도 있고 다 있는데? 내가 꾸~역꾸~역, 어떻게든 써 보고 싶어 했던 것들이, 그렇지만 끝내 제대로 써내지 못한 것들이, 저런 얼굴로 그냥 휙 지나가고 휙 뒤돌아보고 휙 웃으니 한 5초 만에 다 설명이 돼버리고 마는데 저 얼굴을 이기려면 글을 뭘 어떻게 써야 하나. 글은 정말 영상보다 무용한가. 아, 모르겠고 그냥 저 얼굴은 정말 최고시구나. 머엉...... 정말이지 주접을 떨다 떨다 별 그지 같은 핑계까지 다 대면서, 내가 끝내 이걸 못 쓰는 이유는 결국 저런 얼굴들이 존재하고 있어서다,라는 소리나 하고 있다. 말 그대로 주접떨고 앉아 있는 중이다.
언제까지 주접만 떨고 있을 게냐.
...라고 세자저하가 한 번만 호통 쳐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나 하고 있다가, 곧 있으면 나도 한 살 더 먹을 테고 이러다가 금방 50이 되고 말 텐데 정말이지 언제까지 주접이나 떨고 있을 건가, 싶어서 내년에는 꼭 소설을 완결 내어 보겠다는 다짐을 했다. 사실 이 다짐은 매년 이 맘 때에 하는 건데 이번에도 안 하면 좀 서운하니까 올해도 또 해본다.
그래도, 기왕에 저 얼굴에 빠져 본 김에, 얼굴에 서사가 있든 눈빛에 서사가 있든 그놈의 서사라는 게 있어야 마음이 움직인다는 걸 다시 한번 느껴본 김에, 내가 쓰다만 소설의 어딘가에는 그 서사라는 것이 한 방울이라도 있어야겠구나를 깨달아서 그걸 좀 더 생각해 볼 작정이다.
아, 근데 곧 방송이네?
몸을 정갈하게 하고 마음은 올곧게 한 후 일단은 저하를 맞이하러 가야겠다. 후후. 오늘은 또 어떤 서사를 보여줄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