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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뭐가 있길래 5, 우붓 마지막

by 날아라빌리

8. 우붓 넷째 날- 여행 7일째로 이 여행의 마지막 날

마지막도 일정도 요가원이다. 일어나자마자 요가하우스를 갔다.

그랩으로 오토바이를 불렀는데 이번 기사는 너무 거칠었다. 급하게 멈췄다가 출발하길 반복하여 한번은 몸이 크게 휘청거려 도로 위로 떨어질 뻔했다.

기사가 괜찮냐고 하길래,..... 겠냐?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냥 괜찮다 했다. 오토바이를 타면서 '내가 이 구역의 일진이다.' 하며 짱이 된 기분을 느끼던 중이었으니, 짱이라면 원래 이런 스릴을 즐길 줄 알아야 하는 건가, 했다.(그렇지만, 돌아올 때는 무서워서 그냥 걸어왔다. 우붓은 교통체증이 너무 심해서 자동차를 탈 수 없다. 좀 멀어도 걷거나 오토바이 뒤에서 일진짱이 되어야 한다)

요가하우스를 갔던 이유는 요가원 가는 길이 너무 이뻐서였다. 가는 길에 이런 들판이 펼쳐지며 그 중간에 오두막 같은 카페가 있다.

어머, 이렇게 귀여운 카페가 있네?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듯 두리번거리며 몸을 밀어 넣었지만, 사실 구글에서 이미 검색하여 여기 가야지, 하고 찍어둔 곳이었다. 메뉴까지 다 정해놨었다. 이 카페와 이 논뷰때문에 요가하우스를 갔던 건지도 모른다.


자리에 앉았을 때 내 앞의 저 여자분 뒷모습이 너무 이뻐서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었다.(좌) 직원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나도 저렇게 찍어달라고 부탁하며 구도까지 다 설명했는데 그냥 냅따 뒷모습만 찍으며 "어때, 맘에 들어?" 라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보이길래 아하하하하,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우)

저 사진이 어떻게 같냐고... ㅠㅠ

사진은 무조건 한국 사람이 최고다. 나도 우리나라 사람치고는 진짜 못 찍는 편인데, 세계인들 사이에선 베스트 포토그래퍼인 듯하다.

어쨌든, 저 풍경이 맘에 들어 토스트도 먹고 스무디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가져간 책도 읽으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요가원 가는 길이 정말 이뻤다.

요가원도 이뻐서, 이곳에 있으니 나도 이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날의 수강생은 20년간 요가를 했다는 일본인과 나, 둘 뿐이었다.

수업 시작 전 선생님께서 각자의 요가 경력을 물으셨다. 나는 비기너라고 대답했는데 일본인은 20년간 요가를 했다기에 속으로 망했네, 싶었다. 20년 간 요가한 고수가 여길 왜 왔지,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께서도 나랑 같은 생각이었는지 당신은 배우기보단 가르쳐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농담을 하셨다. 서로 마주 보며 웃었지만, 나는 혼자만의 한일전을 시작하고 있었다. 내 비록 비기너지만 질 수 없다, 일본인.

허리를 완전히 꺾고, 어깨를 최대한으로 열고, 한 다리로 서서 비틀거리다 넘어질 뻔도 하고...

'요가는 잘할 필요 없어요, 요가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라는 말을 듣고 길리에서 펑펑 울었던 주제에 그날은 아주 기를 쓰고 했더랬다. 전투를 치르듯 요가를 한 후 장렬히 전사... 했다. 20년간 요가를 했다는 일본인의 요가는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아름다워서 나중에는 뷰티풀~~ 하며 엄쥐를 들어 보여야 했다.

요가가 끝나고 다시 숙소로 가는 길

가는 길에 아로마 샵을 발견하여 마사지 오일을 구매했다. 전투 같은 요가를 하느라 온몸이 아팠다. ㅠㅠ

숙소에 돌아와 벌러덩 누워 있는데 벌레도 보이고 도마뱀도 보이고... 이전의 나라면 분명히 로비에 전화를 했을 텐데 그날은 가만히 누워서 바라봤다.

”인간적으로... 아, 인간 아닌가. 암튼 너네도 숙박비 같이 내야 하는 거 아냐? 2:8 정도로 하자.“ 정중하게 요청해 봤지만 답은 없었다. 흥.


수영장이 예뻐서 잠시 들러 맥주를 마셨다. 몇 달 만에 처음으로 평영과 자유형을 해봤는데 호흡이 이전처럼 되지 않아 조금 실망하다가 이건 그냥 맥주를 마신 탓이려니,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잠시 앉아 쉬다가 다시 요가원에 갈 준비를 했다.

우붓에 오기 전에 여긴 꼭 가야겠다고 다짐했던 곳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투키스였다. 요가원을 돌아다니느라 요가원 동선을 벗어난 곳은 못 가고 있었는데 투키스는 요가반 근처에 있길래 급하게 달려갔다. 작은 컵으로 주문하여 들고나가면서 길스크림을 했다.

"아니, 이게 이렇게나 바쁠 일이야?" 거의 뛰다시피 하며 투덜대면서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으니 요가반 뒷문 입구에서 사롱을 팔던 할머니가 엄쥐를 들어 보였다.

코코넛 아이스크림은 분명히 맛있었는데, 무슨 맛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시 먹어봐야 맛을 알 것 같다. 맛있긴 했는데... 무슨 맛이었더라. 이런... 암튼 꽤나 바쁜 마지막날이었다

이때부턴 순간순간이 아쉬워 타임스탬프 어플을 꺼내 들고 시간까지 찍었다.

마지막 수업은 요가반의 인양요가.

양요가는 너무 힘들었다. 요가라기보단 근력 운동이었는데, 선생님께서 자꾸만 자기를 믿으라며 하나, 둘, 셋, 구령까지 붙여가며 밀어붙여 땀을 뻘뻘 흘려야 했는데 그 후의 인요가는 너무 고요하고 평화로워 잠이 오려했다. 여행을 마무리하기에 딱 좋은 요가였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우붓의 모습. 숙소로 돌아가는 길의 몽키포레스트 근처.

바쁜 걸음으로 돌아가 샤워를 마치고 재빨리 공항으로 이동했다.

밤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아쉬움도 컸지만 집으로 돌아간다는 안도감도 컸다. 남편과 아들이 정말 많이 보고 싶었다.

드디어 집 도착. 집에 도착하자마자 청소기와 세탁기를 돌리고 샤워를 한 후 출근을 했다. 중요한 회의가 있어 출근하자마자 자료를 검토한 후 바로 회의 진행을 했다.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가니 적응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그저 무언가가 꿈이었나 싶을 뿐이었다.


일주일을 혼자 보낸 시간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다시 갈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또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아들은 햇빛 알레르기와 물갈이가 심하여 열대 기후에 맞지 않다. 두 번의 보라카이 여행에서 모두 아팠다. 길리의 수질과 기후를 생각하니 아들에겐 확실히 무리다. 길리는 꼭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우리가 같이 갈 수 있을까. 길리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여름 그 자체라 그저 아득하기만 하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또 그렇게 길리를 달릴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니 마치 지나간 어느 여름을 떠올리듯 자꾸만 아득해진다. 겹겹으로 쌓인 여름의 순간들이 벅차 올라 나도 모르게 눈을 감게 된다. 언젠가는 꼭 다시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붓에선 좁고 복잡한 도로와 더위 때문에 싸우는 가족들을 많이 보았다. 가족여행으로 적당한 곳일까.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망설여진다.

우리 가족이 그 거리에서 함께하는 모습을 상상해 봐도 썩 좋은 그림은 아니다. 아들을 툴툴거릴 테고, 나는 그런 아들 때문에 짜증이 나 있을 테고, 남편은 아들과 내가 자꾸만 싸워서 지쳐 있을 테지. 그럼에도 내 옆에 가족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길리든 우붓이든 나는 꼭 다시 그곳에 가고 싶은데 다음번엔, 특히 그곳이 길리라면 더욱더 내 옆에 가족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다.


여행을 마친 후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바투르산 일출 투어, 스윗 오렌지워크 트레일이나 짬뿌한 릿지워크 트레킹, 은공예 체험, 우붓 시장 쇼핑 등을 하지 못 한 것이 많이 아쉬웠다. 계단식 논뷰 수영장이나 정글뷰 수영장도 안 가봤고, 발리 스윙 또한 당연히 안 해봤다. 그러고 보니 몽키포레스트도 근처를 지나치기만 했네. 엥? 내가 도대체 우붓에선 뭘 했지? 싶은데..... 아아... 그러니까... 진짜로 요가원만 다녔고, 요가원 근처 식당만 갔고, 쇼핑은 요가원 가는 길에 아무 데나 들어가서 했구나. 모든 동선은 오로지 요가원 위주였던 것 같다.

길리에서의 3일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붓에서의 시간도 너무 짧긴 했다. 다음엔 바투르산과 짬뿌한 릿지워크는 꼭 가봐야지. 그리고 시장과 마트 구경을 좀 더 많이 하고 싶고 미고랭을 반드시 먹어보고 싶다. 아니, 발리까지 가서 그것도 안 먹어보고 오다니 말이야.


그곳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서, 진짜로 그게 궁금해서 떠난 여행이었다.

다들 왜 도망치듯 그곳으로 가는지. 나도 지금 좀 도망치고 싶은 거 같은데 거기로 가면 뭔가가 있을까. 그렇게 떠난 여행이었다.

다녀와봐도 거기에 뭐가 있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렇게까지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던 거 같진 않다. 낙원이라고 할 정도의 풍경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위생에 예민한 나에겐 조금 힘든 순간도 있었으며, 혼자 떠난 여행이라 인생샷이라고 할 수 있는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없었냐 하면, 어... 그건 아니고, 나는 그 어떤 여행보다 이 여행에서 단연코 '행복'이라 할 수 있는 어떤 예쁘장한 감정과 스스로에 대한 애정을 느끼고 왔기에 대체 이 충만함의 이유가 무얼까를 생각해 보는 중이다. 대체 그곳에 뭐가 있었기에 나는 이토록 여유롭고 행복해져서 돌아온 걸까.


일주일의 시간으론 그곳에 무어가 있는지 알기 힘들었다. 그저,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고요와 그 순간 속에서 나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 어쩌면 그곳에서 나는 '모든 순간의 나'를 만났던 것일까, 생각해 본다. 내가 좋아하는 바다와 내가 좋아하는 여름 하늘과 내가 좋아하는 고요 속에서 나와 마주했던 걸까. 그곳에 내가 있었던 걸까. 생각하니 다시금 아득하고 그리워지는 길리와 우붓이다.


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금 더 나이 든 내가, 조금 더 켜켜이 쌓인 시간들 속의 나를, 다시 그렇게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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