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의 마음
화요일은 연가를 사용했었다.
무슨 특별한 일이 있다기 보단 주말에 제대로 쉬지 못했는지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다. 마침 요즘 일도 한가하니 연가를 쓰기에도 눈치가 덜 보이는 때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적당히 집에서 빈둥거리고 싶었다. 연가는 주로 월요일이나 금요일에 주말과 붙여서 사용하거나 한 주의 중간인 수요일에 사용했는데 이번만큼은 화요일에게 휴식을 주기로 했다.
남편과 같이 연가여서 아침에 아이를 돌봄 교실에 보내고(엄마 아빠가 집에 있는데 왜 내가 돌봄을 가야 해?라는 거센 저항이 있었지만, 엄마 아빠는 원래라면 출근이니까 넌 학교 가야지,라는 이상한 우김으로 학교에 보냈다)병원을 갔다. 최근 남편이 몸이 너무 건조하다 하여 피부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았다.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나오길래 "응? 벌써?" 했더니 가려운 부위를 보여줬더니 진료가 끝이 났다고 했다. 건조한 날씨 탓으로 간단한 약을 처방받았다.
병원에서 나와 약국을 갔었고, 약국에서 직진을 하면 텐퍼센트라는 것이 떠올라 "아인슈페너나 마실까?" 하며 그쪽으로 천천히 걸어가 아인슈페너를 마셨다.
마실 때마다 '역시 시청점이 월등하게 맛있고 나머지 지점은 별로다'로 결론 내면서도 꼬박꼬박 여길 와서 아인슈페너를 주문하고 있다. 아인슈페너는 역시 별로였고 여전히 결론은 '역시 시청점이 최고네'였다. 체인점인데 한 곳의 맛이 월등하게 탁월한 건 무슨 이유일까?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가 아인슈페너인데 지점별로 맛이 차이가 나도 괜찮은가? 조금 궁금했지만 아마 다음번에도 이곳에 오면 아인슈페너를 주문할 것이 뻔하다. 언젠가는 시청점처럼 되지 않을까? 그래도 시그니처인데?! 하는 기대감이 아직은 있다.
아인슈페너를 마시며 '원명사'를 갔다. 작년 말에 우연히 갔던 절인데 햇살이 반듯하게 쏟아지는 작고 조용한 절이 너무 맘에 들었더랬다. 거기 또 가볼까? 하며 남편이 운전을 했다. 가는 길에 날씨가 너무 좋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올해는 오렌지 나무를 키워볼까? 하기에 그거 좋네, 동의하며 나는 봄이 되면 튤립을 키워볼 건데 꽃이 피면 정말 이쁠 거야, 하는 얘기들을 나누었다.
오렌지 나무, 레몬 나무, 감귤 나무, 튤립 얘기를 지나쳐 올해는 꼭 캠핑을 시작해 보자,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남편이 캠핑을 얘기할 때면 나는 늘 머릿속으로 캠핑 장비를 사야 할 텐데 그 많은 장비는 도대체 어디다 둬야 하지를 고민하게 된다. 결국 창고를 비워야겠구나, 까지 생각이 닿게 되고 아! 그러려면 진짜 미니멀라이프를 시도해야겠구나,를 다짐하게 된다.
봄이 오면 우리 집엔 오렌지 나무와 레몬 나무, 튤립이 창가 쪽에서 햇살을 쬐고 있을 테고 진짜로 열매가 맺히려나, 꽃이 정말 피려나? 하며, 수시로 들여다보는 우리가 있을 테다. 조금 더 깊숙이 살펴보면 베란다 구석의 좁은 창고 문을 활짝 열어놓곤 이건 쓰는 건가? 하며 갸웃거리다가, 이런 게 언제부터 우리 집에 있었지? 하며 깜짝 놀라는 내가 있을지도 모른다. 봄을 떠올리니 벌써부터 마음이 따뜻해져 와 내일이라도 당장 창을 열면 봄바람이 일렁일 것 같다.
절은 여전히 다소곳했고 햇살이 소복했다. 세상의 '모든'까지는 아니라도 '한아름 가득한' 다정함과 평화로운 온기가 그 절의 작은 앞마당에 잔잔하게 고여 있었다. 걸을 때마다 찰방찰방 따스함이 느껴졌다. 종교는 없지만 절이 가진 단정한 고요함이 좋아서 삼배를 할 때면 이 기운을 조금이라도 닮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절에서 나와 남편과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근처의 맛집을 검색하다가 '여기가 맛집이래' 하며 남편이 기대에 찬 손짓으로 시동을 걸었다. 나는 음식에 크게 흥미가 없는 편이라 맛집이든 뭐든 적당하기만 하면 되는데 남편은 아무거나 먹기를 싫어한다. 요리를 못 하는 나는, 주로 '아무거나'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한동안은 남편의 그런 점이 아주 큰 스트레스였다. 그러다 점점 '아무거나'를 참지 못한 남편이 직접 요리를 하기 시작했고 식탁 위에 남편이 요리한 음식이 많아지면서 '아무거나'를 먹기 싫어하는 남편의 식성이 맘에 들기 시작했다.
남편이 찾아낸 칼국수 집은 확실히 맛집이었다. 점심 때가 살짝 지났는데도 칼국수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편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식당 안으로 들어섰는데 그 미소가 귀여워서 이곳이 맛집인 게 맘에 들었다. 근처에 맛집이 좀 가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입안으로 칼국수 면발을 호로록 말아 넣었다. 역시 맛있었다.
아들이 돌아올 시간이라 집으로 가고 있는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학교에서 축구를 했는데 친구들이 축구공으로 얼굴을 쳤다는 거다. "아파서 울었어."라고 했다.
축구공으로 얼굴을 맞았을 테니 아팠을 테고 아프니까 울었겠지, 싶었지만 요즘 들어 자주 축구공에 맞고 있다. 아들이 축구를 다시 시작해서 다행이었지만 여전히 아주 엉망진창으로 못 하고 있는 중이라 같은 팀인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한다거나 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공에 맞는 일이 생기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네가 축구를 그만하거나, 아주 잘 해버리거나, 둘 중 하나여야 끝나는 문제야."라는 얘기뿐이었지만 애가 울면서 전화가 왔으니 어쩔 수 없었다. 마침 돌봄 교실에 아들이 두고 온 도시락이 있어 그것도 찾을 겸 돌봄 교실로 달려갔다.
선생님께 도시락을 전달받으며 축구를 하다가 또 이런 일이 있었나 봐요, 애들 사이에서 있었던 일이라 어른이 끼어들 순 없지만 조금만 살펴봐주세요, 허리 숙여 부탁했다. 그러는 동안 아들에게 공을 차서 얼굴을 맞췄던 아이가 옆을 지나갔고 "제가 그랬는데요?" 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길래 "어머, 왜 그랬니?"라고 물었고 "너무 못해서요. 근데 또 나를 놀리기도 했고요."라는 대답을 하길래 "저런......"이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어린이집 때부터 보아 왔던 아이들에겐 안녕, 엄마는 잘 지내지? 안부를 물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뭔가 아주 조그마한 시골마을의 구멍가게 주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옛날에는 구멍가게 아줌마가 동네 인싸였겠구나, 하는 생각에 슬쩍 웃음이 났다. 안부를 주고받는다는 건 봄날의 어떤 기운과 닮아 있어 마음이 좀 포근해졌다. 아, 날씨도 참 따뜻했고 공기는 조금 달큼하게 다정했다.
집으로 돌아와선 식탁 등의 전구를 바꿨다. 전날 밤에 아들과 책을 보고 있는데 식탁 등이 꺼졌다. "어?" 하며 놀랐다. 옆에서 아들이 "엄마, 어제도 이랬는데 껐다가 켜니까 다시 불이 들어왔어" 하며 스위치를 내렸다가 올렸는데 이번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전구가 완전히 나간 것 같아 갈아야 했다.
다시 식탁의 등이 환해지니까 조금 더 봄날 같아져서 마음이 그윽해졌다. 주백색 특유의 포근함이 참 좋다.
아주 맘에 드는군, 하며 스스로 전구를 교체했다는 뿌듯함에 젖어 있는데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남동생이 한라봉 3박스를 엄마한테 보낸다는 것이 우리 집으로 다 보내버려, 한 박스는 여동생네에 가져다주라는 것이 용건이었다. 문밖을 내다보니 과연 한라봉 3박스가 자기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우리 집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엄마는 한라봉 얘기를 시작으로 지금이 기회다 싶었는지 전혀 연관성이 없는 온갖 잔소리들을 줄줄 늘어놓았고 나는 대충 예~예~ 듣다가 지금 바로 여동생네 집으로 한라봉을 가져다주겠다는 대답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소파에 늘어져 있던 남편을 재촉하여 한라봉을 싣고 여동생네 집으로 향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오던 여동생과 마주쳤다. 얘는 내 동생이지만 아무 때나 봐도 언제나 너무 귀엽다. 또 야단을 맞았는지 풀 죽어 있는('척'을 맹렬히 연기 중인) 중2병 초기의 조카를 꼭 안아주며 여동생 몰래 속닥속닥 위로해줬다. 제부에게는 설에 만나서 맥주를 마시자는 인사를 건네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저쪽 하늘에선 해가 말간 붉은 색을 빛내며 지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아무거나'를 만들고 있으려니 넌지시 바라보던 남편이 답답했는지 국을 먼저 끓이고 반찬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며 일순서를 지적했고 그 말이 맞긴 맞는 말이라 미간을 좁혔더니 눈치 빠른 남편이 잽싸게 국을 끓이기 시작해서 아무거나와 아무거나가 아닌 조합으로 그럭저럭 따뜻한 저녁식사를 했다.
요즘 런데이를 시작해서(......라고 하기엔 이제 겨우 하루 했지만) 설거지를 마치곤 달리기를 위해 집밖으로 나왔고 런데이 앱 속의 트레이너가 시키는 대로 조금 걷다가 1분 달리고 다시 조금 걷다가 1분 달리기를 몇 차례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8주 후면 정말 3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지만 달린 후의 느낌이 몹시 상쾌했다.
피곤했는지(나 말고 남편이) 밤 9시가 되기도 전에 남편은 잠이 들었고(새나라의 어린이세요?) 아들에게 독서할 시간이라며 책을 펼쳐줬는데 책 읽기가 싫었던 아들이, 아빠는 자고 있는데 왜 나는 책을 봐야 하냐? 하며 따지고 들길래, 아빠가 돈 벌 때 너도 같이 돈 벌어와 그러면 아빠 잘 때 너도 책 안 보고 잘 수 있어,라고 했다. 아들은 '긴긴밤'을 읽고 있었는데 노든이 보내야 할 긴긴밤이 슬펐던 건지 나의 윽박이 슬펐는지 자꾸만 입을 삐쭉거렸다.
좀 더 우아하게 말할 순 없을까, 살짝 후회하며 오늘 갔었던 절의 이름을 다이어리에 메모하고 있었는데 문득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세탁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나 보다.
유난히 큰 소리로 "우에엥" 돌아가고 있었는데 우당탕탕 하다가도 또 우에엥 하며 울어서, 쟤가 지금 몇 년 째지? 10년쯤 되면 이제 고장이 날 때가 되었나? 싶어 걱정이 되었다.
내일 당장 세탁기가 돌아가지 않으면 어쩌지?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려니 문득 오늘 하루의 소란스러움이 세탁기 소리와 닮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분명히 오늘은 좀 쉬어야겠다며 빈둥거림을 다짐하고 연가를 내었는데 그 어느 때보다 왁자지껄한 하루를 보내었던 것이다.
뭐 하나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커피를 마시며 오렌지 나무를 키우고 창고 정리를 하는 봄날을 계획했고 절에도 다녀왔고 맛집도 다녀왔고 학교 가서 선생님과 아들 친구도 만났다. 맥가이버(..;;)처럼 식탁 등도 갈았고 여동생 집도 다녀왔고 뚝딱뚝딱 아무거나 만들어내어 저녁 식탁도 채웠고 런데이 이틀차 도전에도 성공하여 조그마한 고요함과 다정함과 소란스러움이 웃음소리와 함께 자글자글 버무려져 뭔가 특별한 하루같이 반짝였다. '우당탕탕' 하다가 '우에엥'도 하다가 '히익'까지 해가며 요란스럽게 돌아갔던 세탁기처럼 오늘 하루의 소리들이 우당탕당 우에엥 히익 했었다.
내일 당장 세탁기가 멈춰버리면 큰일인 것처럼 이런 하루하루들이 무탈하게 잘 이어져 차곡차곡 쌓여갔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화요일의 따뜻한 어둠 속으로 잠겨 들었다.
잠결에 몸부림을 치던 아들의 발에 배를 걷어차여 "욱~" 하고 깼다가 다시 음냐 음냐 잠들었던 것조차 세탁기와 같아서 잠결에도 살짝 웃었다.
우당탕탕, 우에엥, 히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