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 수집
#. 1월 마지막주 일요일 아침
아침에 눈을 뜨니 나지막한 티브이 소리가 들렸다.
주말이면 유난히 일찍 잠에서 깬다는 남편은 이번주도 일찍 일어났는지 거실에선 티브이 소리가 났고,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아들은 옆에서 부스럭거리고 있었다.
통통하고 동그란 볼과 짤막한 콧망울이 보였는데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아들이 말했다.
"엄마, 주말에 아빠가 먼저 일어나서 티브이를 켜놓으면 소리가 이렇게 들려."
아들을 따라 가만히 거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무슨 채널인지는 구별할 수는 없었지만 티브이 소리가 자그마하게 웅성웅성거렸고 가끔씩 남편의 웃음소리도 들렸다.
"아빠는 항상 저렇게 웃더라."
아들을 따라 귀를 쫑긋거리며 듣고 있으려니 아들이 계속 말했다.
"엄마, 지금 뭔가 평범하고... 꼭.... 어릴 때의 작은 거 우리집 같아."
아들이 말하는 '작은 거 우리집'은 20평짜리 임대주택으로 우리의 신혼집이었다. 남향으로 지어진 집이라 작고 따뜻하고 밝고 아늑했다. 아들이 4살 때까지 평일엔 친정집에서 지내며 엄마가 아들을 봐줬고 주말에만 그 집으로 와서 세 식구가 함께 지냈다. 아들의 어린 기억 속에 있는 '작은 거 우리집'의 따뜻함과 포근함은 절대적이었다. 아들이 '작은 거 우리집 같다'라고 말하는 건 아주 행복하고 평화로운 순간이라는 의미라서 듣고 있던 내 마음도 온기와 안온함으로 가득 찼다.
여전히 그렇게 누워 있다가 그 각도에서 보이는 거실(부엌 쪽만 보였다)을 향해 사진을 찍었다.
"그런 건 왜 찍어? 어차피 잊어버릴 텐데..."라고 하길래 "아니야, 너는 잊어도 엄마는 기억할 거야. 엄마는 기억해 둬야지."라고 대답했다.
우리 아들의 작은 거 우리집 같았던 어느 주말 아침.
이런 대화를 나눌 정도로 자랐구나. 포근함과 따뜻함. 여유가 뭔지 느낄 줄 아는 아이로 자라고 있구나.
너는 지금처럼 그저 쑥쑥 잘 자라렴. 때때로 잠시 멈춰서 가만히 마음을 기울였던 매 순간순간은 엄마가 다 기억해 줄 테니.
아들이 지금보다 더 자랐을 때. 뒤돌아본 아들의 기억 속 주말 아침은 이 날처럼 여유롭고 평화로웠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온기가 필요한 어느 순간에 살포시 끄집어내어 시린 마음을 데워줄 수 있도록 유년의 한 조각과 별거 아니지만 따뜻했던 찰나는 내가 잘 기억해야겠다.
#. 2월 마지막 주의 어느 퇴근길
3월이면 근무지가 바뀌어서 마지막 출근과 퇴근을 하는 날이었다.
여기서 탈출(우리끼린 그리 불렀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주말에도 늘 만나다 보니 수감 생활에 비유하곤 했다)만 하면 너무 행복할 거라 생각했는데 상상했던 그런 기쁨은 아니어서 이상했다.
이 안에서 그저 꾸역꾸역 버텼던 순간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힘들 때면 어깨를 내밀어 주고 손을 잡아줬던 사람들도 함께 있었구나, 그제야 깨달았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등을 두드려주는 손길에 괜히 울컥 눈물이 났다.
보통의 퇴근길처럼 덤덤하게 퇴근을 하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늘 그렇듯 여전히 불이 환했다. 잠시 서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려니,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이곳을 좋아했구나, 싶었다.
'안녕히들 계세요. 고마웠습니다.' 하며 돌아서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눈물이 흘러서 당황했다. 혹여 다음에 다시 이 풍경을 마주하게 될 때가 온다면, 그때는 내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람일 수 있었으면...... 했다. 마지막 페이지는 결국 그리움과 아쉬움이었다.
#. 3월의 첫째 주 주말
튤립이 활짝 피었다.
핑크 임프레션의 은은한 핑크빛이 너무 이뻐서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이름 하난 진짜 잘 지었네, 하며 내내 감탄했다.
어쩜 저리 이뻐. 내 튤립이 제일 이쁘네. 봐도 봐도 또 이쁘네.
팔불출처럼 튤립 앞에만 붙어 있다가, 지금 이 꽃이 지면 내년 봄까진 많이 기다려야 하구나, 싶어 집 안으로 들였다.
이 순간을 잘 간직하기 위해 소파 옆의 책장 위에 올려두고 오며 가며 들여다보고 있다. 각도를 바꿔 사진도 찍고 몇 달째 똑같았던 카톡 프사도 바꿨다. 남편한테 계속 "이쁘지? 진짜 이쁘지?" 하며 묻고(강요하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제법 집요하게 많이 묻고 있어 남편은 조금 지친 기색이다. 하지만, 나 이뻐? 도 아니고 진짜 이쁜 튤립을 보며 이쁘지? 하고 있는 거라, 질린 표정은 모른 척하기로 했다.
1월에 심어 키우는 내내 튤립에게 햇살과 바람을 쐬어주다 보니 나도 덩달아 햇살아래에 있곤 했다. 겨울의 햇살도 꽤나 따뜻했고 차가운 바람의 일렁임도 생각보다 맑고 다정했음을 튤립을 키우며 알게 되었다.
튤립을 심던 날. 낮부터 맥주를 한 캔 마시며 튤립을 심었다. "이게 바로 소확행이지." 하며 혼자 신이 나서 맥주를 한 모금 가득 목 안으로 밀어 넣고 흙을 팡팡 두드리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 이건 절대 소소하지 않다 싶어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아니지!" 했다.
낮부터 햇살 아래서 맥주를 마시기 위해 일상의 아픔과 지루함을 꾸역꾸역 삼키며 아등바등거리고 있는데 이게 어떻게 소확행이냐며, 사실 이건 아주 아주 큰 행복이라고..... 혼자 가끔씩 일기를 쓰는 블로그에 튤립을 심는 마음으로 나의 일상을 지켜가야지,라고 썼더랬다.
그 튤립이 이렇게 잘 자라서 저리 우아한 빛깔의 꽃을 피워내니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울었던 소쩍새의 마음이 이런 건가 싶다.
잘 자라줘서 많이 고맙다.
일상이 무탈하여 진심으로 감사하다.
기억하고 싶은 찰나가 있어 행복하고 따스한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