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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빌리 Apr 21. 2023

빵 무덤 앞에서

빵을 굽기 시작했다. 다소 실망스럽게도 기대와는 다르게 죄다 실패 중이다.

치아바타, 르뱅 쿠키, 식빵, 모닝빵. 차례로 하나씩 하나씩 도장 깨기 하듯 침착하고 진지하게 실패하고 있다. 밀가루, 버터, 달걀, 설탕, 소금, 이스트의 양이 전부 조금씩 다르며 어떤 재료들은 만드는 빵에 따라 아예 들어가지 않을 때도 있다. 엄연히 재료와 그 질량이 다른데도 이상하게 똑같은 맛과 똑같은 식감으로 똑같이 맛이 없다. 어째서 이렇게 한결같은 맛이지? 네 번째 빵에서도 같은 맛이 나자 놀라웠다. 게다가 이 퍽퍽한 식감이라니.


실패한 빵들을 아무도 먹지 않고 나만 먹고 있는 중이라 그 빵들이 죄다 내 옆구리와 뒷구리로 몰려와 붙어버렸다. 실패한 빵들의 무덤이 옆구리에 생긴다는 사실을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을까. 그럼 시작도 안 했을 텐데. 장난처럼 투덜거려 보지만 내가 구운 빵과 쿠키를 아무도 먹지 않아 역시나 살짝 속상하긴 하다.


"빵이 왜 자꾸 실패하지? 치아바타만큼은 진짜로 난이도 '하'라고 했는데..." 했더니 남편은 너무 이상한 걸 고민한다는 듯 대답한다.

"당연한 거 아니야? 항상 모든 요리를 다 실패했잖아. 기대했던 거야?"  

저, 저, 저... 저 입! 내가 만든 빵을 남편 입에다 다 쑤셔 넣고 싶었다.

르뱅쿠키를 실패한 다음날은 어디서 르뱅쿠키를 받아와선 "참고하도록" 하며 건네주길래 쌍권총을 든 옛날 영화주인공 흉내를 낼 뻔했다.  


요리를 못 한다. 내가 생각해도 참 어지간히 못 한다. 간단한 걸 만드는 데도 온 주방을 다 어지럽히고 남들보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결과물만 좋다면 무슨 상관이냐 싶겠지만 레시피 그대로 따라 해도 이상하게 맛이 없다. 음식 자체에 큰 관심이 없는 데다 그저 가족들이 한 끼 때워야 한다는 의무감과 과제를 수행하는 듯한 묵묵함만으로 만들어서 그런 걸까.

당연히 음식과 관련된 글도 딱히 관심사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왜 음식 관련 글을 좋아하는 걸까. 그냥 매일 같이 반복되는 조금 지루한 일상 중의 하나인데 이게 뭐라고? 그런 생각이 있었나 보다.  


그러다 자주 가는 이웃 작가님의 글을 보던 중 불쑥 마음이 일렁였다. 내게 '집밥'이라는 말은 그저 매일매일 쌓이는 숙제 같은 거였는데 어쩌면 그 집밥이 주는 포근함과 안락함이 있겠구나 싶었다. 제철 음식으로 차려진 식탁을 보면서 일상의 단단함과 소박한 행복을 다져가기도 하겠구나 했다.

최근 들어 부쩍 음식 관련 글을 자주 클릭해서 보곤 했다. 따뜻함, 위로, 정성,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 부모님에 대한 기억들. 음식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였나. 다른 건 몰라도 빵은 계량만 잘하면 된다니까?! 싶었다. 아들의 이유식을 만들 때 쓰던 저울이 아직까지 작동하고 있었기에 아무리 나라도, 제 아무리 똥손이라도, 밀가루 계량은 할 수 있겠지.

호기롭게 밀가루를 종류별로 사들이고 빵을 굽기 시작했다. 주말 아침에 내가 구운 빵에 잼을 발라 먹는 남편과 아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하얀 밀가루가 온 주방에 사방팔방 날리는 번거로움도 조금 행복하게 느껴졌다.


우리 아들은 조금 더 자란 후에 투박한 식감을 가진 고소한 빵을 먹다가 추억에 잠기고 말겠지.

'아, 이 맛은!!! 내가 어릴 때 주말이면 엄마가 구워주던 바로 그 빵 맛이야.' 드디어 아들에게도 유년의 맛이 생기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제법 신났다. 밀가루 반죽에 버터를 넣고 치대어 녹여가며 다짐했다.

수없이 많은 집밥은 실패했지만 집빵만은 성공하고 말리라. 기가 막힌 유년의 맛을 선사하고 말리라.

내가 만든 치아바타, 쿠키, 모닝빵
이건 아마도 식빵

그러나, 남편의 말처럼 당연하다는 듯 빵 만들기는 연이어 실패하고 있다.

실패한 빵들의 무덤( 옆구리 살)을 꼬집듯 붙잡고 괴로워하고 있으니 남편 딴에는 위로랍시고 "기대했던 거야?"라고 한다. 그냥 쫌! 괜찮다고 말해주지 싶다가도, 괜찮다고 했어도 어차피 엄청 약 올랐을 테니 늘 하던 대로 놀려대어 차라리 다행이었다. 실패한 빵 때문이 아니라 네가 놀려서 화난 거거든? 내 약 오름에 이유라도 만들어줬으니.

남편은 아들이 한 입도 먹지 않은 식빵을 그나마 조금 먹어주었다.


사놓은 밀가루가 아직 많은데 어쩌지?

소용없어 보이는 노력과 쉬워 보이는 포기 사이를 서성이던 중 슬그머니 비집고 든 빵냄새에 옳커니! 했다. 유년의 맛 대신 유년의 향기는 어떨까.

내가 어릴 때 우리 엄마는 유년의 맛을 만들어주겠다며 주말마다 빵을 구워대고 끊임없이 실패했던 덕에 점점 굵어져 가는 허리만을 보여줬지만 엄마가 굽던 빵냄새를 맡으면서 아, 주말이구나, 하며 편안해했다고. 혹시 아나? 우리 아들이 이렇게 추억하게 될지.

내가 만든 빵이 맛있을지, 아들이 그런 정서를 이해하는 아이로 자라게 될지. 혼자만의 내기를 시작해 본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을 듯 하지만 후자가 더 내 맘에 들긴 하다.


철퍼덕거리며 흩날리는 밀가루에 힘을 꼭꼭 주어 누르고 밀고 치대는 동안 단정하고 매끈한 덩어리가 되어 간다. 한주 동안 쌓였던 일상의 먼지들도 내가 반죽하는 모양대로 차분하게 정리되는 것 같다. 그 과정 자체가 썩 맘에 들어 일단은 계속 빵을 구워볼까 한다.

빵무덤이 커지는   싫지만  굽는 냄새만큼은 꽤나 고소하니 이번 주말에도   가득 냄새를 풍겨가며 빵을 구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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