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 바퀴의 소리는 언제나 좋았다. 심장의 두근거림과 맞닿아 있는 듯한 그 울림이 느껴질 때면 소리의 방향을 찾아 몸을 기울이곤 했다. 그저 바퀴가 굴러가는 요란한 소리일 뿐인데도 어째서 이렇게나 설레는 것인지 의아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 소리로 인한 감정의 진폭을 겪으며 그 여진에 흔들리는지 궁금했다. 캐리어를 끄는 이의 감정이 고조될수록 힘이 더해지고 속도가 붙어 그 울림의 결이 조금씩 달라져 갔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그 울림이 향하고 있는 곳, 그 소리가 품고 있는 저 너머 세상이 눈앞에 펼쳐질 것만 같았다.
처음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들어서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모든 소리가 숨죽인 듯 새하얀 정적이 흐르다가 일순간 왁자지껄 요란함이 밀려들었다. 천장이 높고 둥근 공항 안에서 거대하게 술렁이는 울림은 캐리어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만큼이나 나를 들뜨게 했다. 저 너머에 있을 이국땅의 낯섦과 낭만에 가슴이 일렁였다. 공항은 그런 신비함을 지닌 곳이었고 그러한 기대와 설렘이 캐리어 소리에 대한 동경으로 나타난 것인지도 모른다.
남편이 처음 내 손을 잡고 나를 바라보았던 날. 우습게도 그 바퀴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요란하진 않았지만 틀림없이 그 소리를 닮아 있었다. 어느 영화의 주인공은 이런 순간에 종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던데, 나는 머릿속에서 캐리어바퀴가 구르고 있었다. 딱히 이상한 일도, 뜬금없는 일도 아니다 싶어 웃음이 나오려 했다. 남편의 눈동자 속에 슬몃슬몃 비집고 나오려는 웃음을 꾹 누르고 있는 내가 보였다. 돌이켜보면 가장 무결한 환희에 취해 있었고 심장이 터질 듯 세차게 설레었던 날이다.
그날 그렇게 내밀어진 손을 꼭 잡았던 나는, 저 너머 하늘을 향해 어떤 꿈을 지니기 시작한 걸까. 그날 품었던 꿈이 무엇이기에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를 볼 때면 아이처럼 손을 뻗게 되는 걸까. 요즘 들어 부쩍 자주 그 순간을 돌이켜본다. 그 순간 나를 감싸고 있던 풍경의 색채, 어딘지 모르게 눅진하면서도 촘촘했던 공기의 감촉, 내 손을 잡아끌던 힘. 문득문득 그런 것들이 떠오른다.
얼마 전부터 식탁의 등이 깜빡였다. 멀쩡하다가도 느닷없이 가물거리곤 했다. 아이를 재운 후 불이 꺼진 부엌에서 식탁의 등만 켜놓은 채 유치원 알림장을 보고 있는데 또 등이 깜박였다. 마침 퇴근한 남편이 셔츠를 벗으며 지나가던 순간이었다. 불빛이 깜. 빡. 하던 찰나 속으로 옅은 담배냄새가 스며들었다.
“전등이 왜 이러지? 지난번에도 말했잖아. 자꾸 이러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힐끔, 전등을 바라보던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식탁의 등 같은 건 남편의 관심사가 아닌 듯했다. 남편의 온 신경은 내가 아직도 잠들지 않고 있는 이유에 집중되어 있을 터였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앉아 있을까. 식탁의 등을 시작으로 다른 이야기를 이어가는 건 아닐까. 그러한 생각들로 깜빡이는 등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눈치였다. 어쩌면 남편은 곧 들이닥칠지도 모를 피곤함을 피하고 싶어 조금 긴장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며칠 전 처음으로 전등이 깜빡였을 때도 남편을 기다렸었다. 전등이 깜빡인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아니, 사실 남편에게 할 이야기가 많았다. 대출금의 거치기간이 끝나고 곧 원금상환이 시작된다는 이야기, 아이는 요즘 어딘지 모르게 주눅 든 모습이라 고민된다는 이야기, 남편의 셔츠를 건조기에 넣고 돌려버려 조금 줄어든 것 같다는 이야기,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한 건 이미 눈치챈 지 오래되었다는 이야기까지 모두 남편한테 하고 싶었다.
“식탁 등이 깜빡거려. 아까 저녁 먹을 때 깜빡거리더니 조금 전에도 그랬어.”
남편은 곧장 전구부터 뺏다 끼웠다 하며 살펴보았다.
“전구가 나간 건 같진 않은데......”
“그럼 뭐가 문제야?”
"나야 모르지."
남편은 귀찮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도 귀찮다는 얼굴이었다. 우리의 이런 온도차는 늘 다툼의 원인이 되어왔다. 최근 들어 실랑이 벌이는 일이 부쩍 잦아지고 있었기에 또 다른 시빗거리를 만들고 싶진 않았지만, ‘과연 단순한 온도차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 모를 분노가 서서히 차오르고 있었다. 아니, 이유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이유가 너무 많아 뭐부터 꺼내야 할지 몰랐다. 어떤 이유를 먼저 말해야 내 분노가 극적일 정도의 타당성을 지닐 수 있게 될까. 귀찮은 기색을 감추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저 표정을 이유로 삼아도 될까. 그러나, 언젠가의 밤처럼 잠든 아이가 울면서 깨어나는 일은 없어야 했다. 나는 전등 아래서 말없이 시선을 돌렸다.
그게 바로 며칠 전 저녁의 일이었다.
그날 이후 다시 남편을 마주한 건 오늘이 처음이다. 남편이 방에서 나오길 기다리며 아이의 가방을 챙기고 있는데 옷을 갈아입고 나온 남편이 “계속 이러면 사람을 불러. 내가 봐서 뭘 아나.” 하며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바싹 말라 버석거릴 것 같은 얼굴만큼이나 건조한 말투였다. 예상보다 간소한 대답에 당황했지만 딱히 그 이상을 기대했던 것도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낮은 한숨이 흘러 나왔다.
깜깜한 부엌의 어둠 속에서 홀로 켜진 식탁의 등을 멍하니 보고 있으려니 밤하늘 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비행기의 꽁무니가 떠올랐다. 남편과 바라보았던 공항 창 밖으론 비행기가 계속 날아오르고 있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캐리어 바퀴를 굴려가며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늦은 저녁이었다. 신혼여행의 첫 목적지는 빈이었다. 두바이를 경유하여 빈에 도착한 다음 프라하에서 야경을 보며 신혼여행을 마칠 계획이었다.
게이트 앞에서 두바이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공항 유리창엔 보랏빛의 어스름이 너울거리더니 이내 어둠이 내려앉았다. 출국장 너머엔 낮과 밤의 시간이 따로 없는 듯했다. 비행기는 밤에도 날아올랐다. 까만 하늘 위로 날아오른 비행기는 색색의 빛으로 몇 차례 반짝이다가 구름 속으로 빨려 들었다. 낮의 풍경보다 조금 더 느리게 흘러가는듯하여 살짝 몽롱해졌다. 점멸하다 사라지는 비행기의 빛 때문에 온전히 어두워지지 못한 채 불투명한 색채를 지닌 밤하늘은 꿈결 같기도 했고 동화 같기도 했다.
“신기하지 않아? 밤비행기를 타고 사막 위를 나는 거야.”
“나중에 사막에도 가보자. 나는 스핑크스가 너무 보고 싶어.”
마주 보고 웃기만 해도 부족함이 없던 때였다. 그렇게 남편의 손을 꼭 잡은 채 출국장 너머를 상상했다. 앞으로의 시간들을 꿈꾸었다. 그곳은 이전과는 얼마나 다른 곳일까. 우리는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그때, 또 식탁의 등이 깜빡거렸다. 잠시 졸았던 걸까. 머리 위의 전등을 쏘아보자 눈이 부셨다. 처음 이 집으로 이사 왔을 때 식탁 놓을 자리가 있어서 기뻤다. 신혼집은 좁아서 식탁과 소파를 둘 곳이 마땅하지 않았다. 억지로 구입했던 식탁은 결국 반품해야 했기에 결혼 후 4년 만에 가진 식탁이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전등을 골라 식탁 위에 달았다. 퍽 신이 나서 아이처럼 껐다 켰다를 반복했었다.
전구쯤은 나 혼자 갈 수 있다. 그저 남편이 갈아줬으면 했던 것이다. 남편은 아직도 샤워 중인지 물소리가 세찼다. 아이가 뒤척이는 소리가 나서 자리를 뜨려는데 식탁 한편에 있던 남편의 민방위 통지서가 눈에 띄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남편은 빨간색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까만 백팩을 메고 나타났었다. 앳되고 말간 얼굴로 웃던 모습이 어제처럼 선명한데 어느새 민방위라니. 아직도 그 시차는 적응이 되질 않아 민방위라는 말이 어색하기만 한데 이제 그 민방위조차 끝이 난다. 예비군이었던 남편, 군인이었던 남편, 교복을 입은 학생이었던 남편. 내가 모르는 시간들을 상상해 본다. 아이 옆에서 까칠해진 얼굴로 잠든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체 모를 감정들이 솟구쳐 코끝이 시큰거린다.
여전히 남편은 출국장 너머의 세상이다. 여전히 우리는 국경을 달리하고 있다.
남편과 나는 동료로 지내다가 결혼을 했다. 나는 우리가 서로를 아주 잘 안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우리는 서로를 전혀 몰랐다. 두바이를 거쳐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한 직후부터 우리의 여행은 삐거덕거렸다. 안내 책자의 정보는 엉터리가 많았고 지도는 읽기 힘들었다. 바람은 생각보다 차가웠으며 음식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입에 맞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미처 모르고 있던 서로의 다름을 목도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때때로 남편의 말과 표정은 그 어떤 지도보다 읽기 힘들었다. 도저히 그 방향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신혼여행 내내 남편과의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주위는 온통 낯선 이정표들로 가득 차 있고 모든 것들이 '나'라는 존재가 완벽한 이방인임을 말해주고 있는데 어찌하여 더 이상 설레지 않는 것인지. 그 단호한 낯섦에 겁이 났다. 남편의 작은 대답 하나에도 앞으로의 일에 대한 결말을 성급히 예측했으며 모순으로 뒤엉킨 내 감정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했다. 출국장 너머의 드라마를 꿈꾸며 떠나온 나에게 사랑과 이기심이 동의어로 기능하고 있는 이 상황은 그저 기가 막힐 뿐이었다. 그곳은 내가 열어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선물 꾸러미가 아니었다. 그 또한 내가 만들어가는 세상이었음을 그때는 왜 몰랐던 걸까. 꿈꾸며 욕심내었던 풍경이 출국장 너머에 당연하게 존재할 것이라 확신했던 그 어리석음이 아직도 조금은 아프다.
우리는 결국 귀국하는 길의 프라하 공항에서 크게 싸웠다. 남은 동전으로 초콜릿을 사던 중에 남편이 던졌던 한마디가 화근이 되어 통제력을 잃고 말다. 우리의 캐리어는 서로 다른 소리를 내며 다른 방향을 향하여 다른 속도로 굴러갔다. 각자 검색대를 통과하여 비행기를 기다렸다. 다시금 출국장 너머로 발을 내밀었지만 언제나 나를 가득 채웠던 설렘과 신비함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저 너머의 낯섦이 모두 낭만은 아님을 그제야 깨달았다.
가끔씩 신혼여행의 일들이 떠오른다. 쉽게 가질 수 없던 것들을 너무도 당연하게 기대했던 탓에 좌절해야 했다. 남편과 나는 서로에게 출국장 너머의 존재였기에 우리가 같은 국경 안에 존재하기 위해선 많은 노력과 인내심이 필요했다. 설렘과 분노, 사랑과 미움, 환희와 아픔. 극명하게 다른 그 감정들이 동시에 휘몰아쳤던 그 일주일의 시간들은 그 후에도 계속 반복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어리고 미숙하며 마음을 전하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뻔히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물러서지 않은 채 같은 일들을 되풀이하고 만다.
가끔 몹시도 궁금하다. 우리는 언제까지 국경을 달리하고 있을까. 이 여행의 종착지에서 우리는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까.
두바이 공항에서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며 잠시 졸았는데 그때 남편이 찍은 사진을 보면 초췌한 얼굴의 아랍인과 그보다 더 초췌한 표정의 내가 어깨를 기댄 채 일행인 듯 잠들어 있다. 남편은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소리 내어 웃는데 나는 쉽게 웃어지지가 않는다.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채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는 타인들이 잠시 어깨를 기댄 채 졸고 있는 그 사진 속에 인생 전체의 그림이 담겨 있는 듯하여 마냥 웃을 수가 없다.
남편과 나도 서로의 어깨에 기댄 채 잠시 쉬고 있는 중인 걸까.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출국장 너머를 여행 중인 걸까.
여전히 공항을 생각하면 설렌다. 캐리어 바퀴가 구르는 소리가 연상되면서 심장이 빠르고 거세게 내달린다. 그렇지만 그 소리에 묵직하게 묻어있는 삶의 소리도 이제는 안다.
얼마 전 아이와 산책하던 중에 아이가 하늘을 가리키며 손을 흔들었다. 머리 위로 작은 비행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하늘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가 같은 국경을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 나도 모르는 틈에 차곡차곡 쌓였던 것인지 내 시선은 좀 더 하늘 가까이에 닿아 있었다.
“엄마, 비행기 집은 어디지?”하며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글쎄, 저 비행기는 어디로 갈까? 저 너머에 뭐가 있는지 엄마도 아직 잘 몰라.”
그날 그렇게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남편과 다시 밤비행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구름 위로 반사된 달빛의 농도를 궁금해하며 하늘 위에서 같이 잠들었다가 비행기 날개 끝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아침 해를 같이 보는 꿈을 꿨다. 너와 하는 모든 방향이 나의 목적지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줘야지. 그런 다짐도 했다. 같은 방향으로 같은 소리를 내며 같은 속도로 굴러가는 캐리어 바퀴의 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세차게 나를 두드릴 테지.
밤하늘의 구름 속으로 사라지기 전 몇 차례 깜빡이던 비행기의 빛처럼 식탁의 등이 여전히 어둠 속에서 깜빡인다. 우선은 식탁 등부터 갈아볼까 한다.
# 사진출처 픽사베이, 내 사진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