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아, 뭐 하니?
3월이 되면서 남편과 나의 근무지가 바뀌었고 각자 퇴근 시간이 빨라지게 되면서 육아와 살림을 봐주던 친정엄마의 도움을 그만 받기로 했다. 엄마가 해주셨던 살림의 묵직함이 온전히 우리 부부에게로 넘어와 아주 사소한 것까지 우리 손이 닿아야 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출근하고 퇴근하여 돌아오기까지, 아침 먹고 저녁 먹는 그 사이사이에 생겨나는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들. 하찮지만 반드시 이어져야만 하는 부산스럽고 송신스러운(경상도 사투리다. 정신이 없다는 의미이지만 하루종일 겪는 사소하면서도 피곤한 감정의 소용돌이는 송신스럽다는 말이 아니면 표현이 어렵다) 일들이 끝날 때쯤엔 밤이었다. 바스러진 마음을 정비할 시간도 없이 아이를 재울 시간이 되어 잠시 같이 눕기만 해야지 하다가 나도 그만 잠들어 버린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대로 사라진 지난밤이 조금 허무하여 미세한 분노가 인다. 이 와중에 지난 근무지에서의 후유증인지 번아웃 증세까지 살짝 나타나 정말이지 만사가 귀찮았다.
깊은 산속 옹달샘 근처에 살면서 새벽에 일어나 물만 먹고 사라지는 토끼가 부러웠다.
조용하고 맑고 아무도 없는 그곳.
마음 같아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다.' 혹은 '꿈은 없고요, 그저 놀고 싶습니다.'를 중얼거리며 소파에 드러누워 있고 싶지만 나만큼이나 널브러져 있는 집안 꼴과 배고프다 칭얼대는 아들을 보면 그럴 수가 없어 못 하는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며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점점 이 움직임에 귀찮음과 고단함과 소소한 짜증이 들러붙어 몸집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마음의 소리에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분명히 어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오늘따라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며, 굳이 그러지 않아도 진즉에 눈치챘는데도 온몸으로 '그저 놀고만 싶다'는 의지를 표출하며 10살 아들보다 더 철없는 몸짓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남편이 얄미워 보란 듯이 달력에다가 이번주 집안 청소와 화장실 청소까지 모두 내가 했다고 적어뒀지만 남편은 당연히 보지 않는다. 정말로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혼자 청소를 마친 후 유난히 지쳐버린 몸과 마음이 끝내 두 동강이 나버려 유체이탈 상태가 되어 가는데도, 남편은 "어? 청소 다 했네?" 하며 해맑게 웃었다. 맑은 눈동자의 광인 같았다. 그 투명한 눈빛 속엔 어떠한 의도도 없었다. 약고 옹졸한 계산이 조금도 섞여 있지 않아 더 화가 났다. 나 혼자 무의미한 계산을 하며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쓸데없는 기싸움을 하고 있던 것이다.
남편은 그저, 진짜로, 내가, 안 보이는 거 같았다.
그래, 내가 졌다.
나를 보지 못하는 남편은 일단 제쳐두기로 했다. 나에겐 3월이 가기 전에 할 일이 있었다.
옷장 정리(행거 짜서 넣기), 세탁실 정비(선반 짜서 넣기), 창고 정리, 식탁 위치 바꾸기
몇 달 전부터 계획해 둔 일이었는데 체력과 시간이 따라주질 않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3월 중순이 넘어가고 있어 마음이 조금 초조해졌다.
이 무중력의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일단 질렀다. 의지가 생기지 않을 땐 돈을 주고 의지를 사야지,라고 중얼거리며 줄자를 꺼내 들고 이리저리 재어가며 옷방 행거와 세탁실의 선반을 주문했다.
행거 모양의 의지가 먼저 도착했다.
어제 퇴근하고 집에 오니 현관 앞에 내 키만 한 택배 박스가 서 있었다. '남편이 오면 집안으로 넣어달라 한 후 조립해 달라고 해야지' 생각하다가 '아니다. 집 안에 넣는 거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지.' 싶었다. 끙끙거리며 옷방까지 택배 박스를 밀고 끌고 하여 옮겼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조금 궁금해져서 어떻게 생겼는지 풀어나 볼까, 하며 박스를 살며시 개봉했는데 시커멓고 묵직한 철제들이 제법 위협적으로 보였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네, 하며 살짝 겁을 먹으려던 찰나에 때마침 남편한테 전화가 왔다.
갑작스러운 추경때문에 남편은 주말부터 지쳐있었다. 오늘은 그 추경 관련 보고를 하러 본청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보고는 잘 끝냈느냐 물으니 지친 목소리로 나중에 얘기해 줄게,라고 한다. 어느 선에서 막혔는지 대충 짐작이 되어 남편이 가여워졌다.
그래, 집에 와서 쉬고 싶겠지. 행거 조립이 웬 말이야.
맘 속의 변덕스러운 저울이 살짝 기울어지며 택배 박스를 풀도록 종용했다.
택배 박스를 활짝 열어 저 커다란 선반의 몸체를 마주하게 되자 다시 택배 박스를 닫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남편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지쳐있던 남편의 목소리가 떠올라 조립을 시작했다. 남편이 집에 오면 쉬게 해 줘야지.
기본 틀이 되는 사각형 모양을 만들기 위해 내가 혼자 얼마나 기괴한 몸짓을 했는지 모른다. 온몸의 관절과 팔다리가 이토록 다양한 각도로 꺾이며 펼쳐질 줄 아는데, 왜 요가를 할 땐 그리 되지 않는 걸까.
철제 다리를 하나 어깨로 받쳐 목 사이에 끼우고 이마로 공군('괴다'의 사투리다) 다음 다리 사이에 끼우고 팔을 뻗어 망치로 쾅쾅!
망치질의 충격이 이마를 강타하여 "아야!" 하며 꽤나 호들갑을 떨었지만 아무도 봐주질 않아 조금 서러웠다. 살짝 우스꽝스러웠지만 꽤나 짙었던 아픔의 순간들. 역시, 아프니까 사랑이다.
드디어 1단이 완성되었다. 기뻐하는 나의 환호에 아들이 다가와서 축하해 줬다.
엄마, 요리는 못 해도 다른 건 잘하네? 아빠보다 망치질 더 잘하는 거 같아.
마침내 2단까지 완성! 기왕에 다 만든 거 정리까지 하자 싶어 옷도 다 걸었다.
청소기까지 싹 밀고 택배 박스도 접어 정리하고 분리수거까지 마친 후 잠시 옷방에 드러누웠다.
내가 집안일을 하고 있을 때 남편이 소파에 누워 있으면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그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았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10살짜리 아들이 할 순 없으니 그 '누군가'는 나 아니면 남편인데, 나는 또 남편을 향한 마음이 먼저 기울어버려 부산스레 움직이고 말았지만 남편은 이러한 이유와 이러한 모양새로는 좀처럼 마음을 기울이는 법이 없다.
서로를 향한 감정의 무게가 늘 같진 않아 조금씩 오락가락할 때도 있지만 내 기억 속 저울의 기울기는 항상 어딘지 모르게 내가 조금 손해 보는 듯한 각도로 움직였던 것 같은데, 가끔은 남편도 좀 나와 같은 무게로 움직여주면 안 되나 라고 투정 부리고 싶다. 때때로 남편이 먼저 내게 마음을 기울여줬으면 하는 건데. 그저 그건데. 정말로 내가 안 보이는지 궁금하다.
밉살스럽지 않게 조금 토라져서 자그마하게 투정 부리고 싶은데, 그 방법을 알지 못하여 언제나 늘 망치 두드리듯 쿵쾅쿵쾅 거리고 있는 것이 문제인가. 살짝 고민해 본다.
나 망치에 손 찌어쪄.
언뜻 떠오른 그림은 드라마 속의 어떤 장면들인데 그런 반토막 난 소리를 하기엔 이미 나이가 너무 많이 들어 남편도 나도 서로 참아내질 못 하니 조금 토라지는 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 계속 계속 열심히 고민해 본다.
부디 세탁실 선반이 배송되기 전까지는 내가 그 방법을 조금이라도 깨우치길.
스스로에게 격한 파이팅을 보내며 옹골찬 주먹을 꼭 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