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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 Sep 25. 2021

WESTWORLD, 어쩌면 이럴 수도

인공지능을 모티브로 한 Sifi 드라마

 웨스트 월드라는 인공지능 기반의 테마파크를 배경으로 한 3개 시즌 분량의 HBO 드라마입니다. 올해는 물리적으로 잠잘 시간도 없고, 심적으로 여유도 없다 보니 시리즈물을 전혀 보지 않고 있었는데, 추석 연휴를 기회삼아 우연찮게 시청을 시작했습니다. 세 시즌으로 마무리되는 이야기면 그렇게 부담이 되는 분량도 아니기도 하고, 각 에피소드 끝날 때마다 그다음 편이 궁금해지게 애매하게 끊어 놓지도 않아서 그냥 보다 말다 하기 괜찮았습니다. 엄청나게 몰입이 되는 편은 아니었지만, 평상시 인공지능과 인간의 공생이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디어 선구자들은 어떤 식으로 상상을 했을지 궁금했기 때문에 마지막 편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미래를 다루는 이야기지만 화려한 우주선이나 외계 생명체, 히어로가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같은 것이 주는 사회적인 메시지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그냥 기존 세력과 신흥세력 간의 권력다툼 정도의 큰 재미없는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는 이야기입니다. 유명한 배우들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시즌 3개 정도 분량의 시리즈라고 하기에 등장인물이나 공간이 그렇게 충분치도 않아서 호불호가 갈릴만한 요소가 제법 눈에 보입니다.


 드라마 속 '웨스트 월드'는 서부 개척시대의 무법지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손님을 마주하는 사람 아닌 사람, '호스트'라고 불리는 존재들은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인공지능 로봇들입니다. 거액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그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과거 체험을 하기도 하고, 살인, 강과 같이 실제 사회에서는 못할 짓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분출하고 떠납니다. 첫 시즌에서는 인간처럼 보이지만 인간이 아닌 그들을 대할 때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성이 사라지고, 그 모습이 결국 '진짜'라고 이야기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줍니다.


 사람을 해칠 수 없다는 '규칙'에 갇혀있고, 주어진 내러티브대로 행동하는 첫 시즌의 인공지능 로봇 '호스트'를 보면서 작가가 인공지능에 대해 얼마나 많이 연구를 했는지, 대충 접근한 게 아닌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일단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rule based' 인공지능을 보여주는 것이죠. 사람들이 통제할 수 있는 대상. 그렇지만 사람들이 만들어 주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변화도 없는 한정된 존재이기도 하고요.


 시즌별로 인공지능에 대한 관점과 인공지능들의 역할이 달라집니다. 다음 시즌에서는 스스로 학습하고 스스로를 찾아가는 인공지능의 모험이 펼쳐집니다. 알파고로 유명해진 딥러닝 같달까요. 스스로 환경에 따라 학습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립니다. 겉모습부터 생각하고 판단하는 내면의 과정까지 사실 인간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몇 년 전부터 우리는 동물의 권리에 대해서도 사회적으로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그 권리는 하나의 생명이기 때문에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여기서 질문 하나가 머리를 스칩니다. 만약 사람과 똑같이 생겼고, 사람과 똑같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존재가 있다면, '사람이 만들었다'는 것 때문에, 신으로 부터 부여받은 '생명'이 없기 때문에, 동물보다 못하게 대우하는 것이 맞는 건인가? 아직 우리 사회에서 논의될 만큼의 문제는 아니지만 분명 언젠가는 고민되어야 하는 철학적 문제입니다.


 인간과 같은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가지고, 로봇이기 때문에 인간보다 더 뛰어난 신체능력 바탕으로 인류를 압도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혹성탈출' 프리퀄의 시저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지구 상에서 모든 것들을 발아래 두고 오로지 그들의 종족 보존을 위해서 모든 생명과 자원을 이용하고 있는 인류의 정당성은 그들이 가장 강한 존재라는 것이기 때문이겠죠. 그렇다면 영화 혹성탈출에서 지구라는 혹성의 주인이 인간이 아닌 유인원이 되어버렸던 것처럼, 나중에 언젠가 지구의 주인이 인류가 아닌 인공지능 로봇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두 번째 시즌에는 이와 동시에 살아있는 인간의 행동을 학습시켜서 그 데이터를 로봇에 집어넣고 로봇화 되어 영생을 살기 위한 프로젝트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을 닮은 인공지능 로봇 이야기가, 그리고 그다음에는 사람을 데이터화 시켜서 로봇 안에 집어넣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전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아니고, 똑같지는 않지만 관련된 연구들도 진행되고 있는 분야입니다. 문득, 백인들이 영생을 영위하기 위해 그때그때 유행하는 몸을 빌려 정신만 옮겨 다니면서 산다는 콘셉트의 영화 '겟 아웃'이 묘하게 겹쳐 보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시즌은 웨스트 월드 테마파크를 떠나 실제 인간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여기에는 사람 모양을 한 로봇은 아니지만 새로운 인공지능이 등장합니다. 전 세계 모든 데이터를 종합해서 가장 최적의 선택을 내려주는 '인간을 통제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이 나옵니다. 테마파크 안에서 인류는 인공지능 '가짜' 로봇을 이용해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즐겼었는데, 정작 '진짜'들이 살고 있는 진짜 세상에서는 본인들이 직접 본인들의 삶을 결정하지 않고, 기계의 선택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이 부분도 실제 연구가 계속적으로 되고 있는 분야입니다.


 사람이라면 심리적인, 인지적인 각종 편향 때문에 제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도 모든 순간에 최적의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다만 책임을 질 수 있을 뿐이죠. 하지만 기계라면, 가용한 변수들의 범위 안에서 항상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계는 책임을 질 수는 없죠. 이는 로봇과 인공지능을 둘러싸고 계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철학적 문제입니다. 소위 인공지능은 '사람을 해쳐야만 하도록'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쪽도 있습니다. 자율주행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면, 특정 교통사고 상황에서 직진하면 세명이 죽고, 우회전하면 한 명이 죽고, 좌회전하면 운전자가 죽는다고 할 때, 분명 이 인공지능은 '어떻게 사람을 해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학습이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또 다른 예로, 전쟁 상황에서 인공지능의 지원을 받는 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쪽으로 공격하면 어떤 부대 몇 명이 죽을 것으로 예상되고, 저쪽으로 공격하면 또 다른 부대 얼마가 희생할 것으로 계산이 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인공지능에 의해서 죽고 죽이는 상황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 드라마는 보는 내 낸 조금 분위기가 어둡습니다. 그렇게 밝고 즐거운 주제도 아닐뿐더러, 테마파크의 배경인 서부 개척시대 황량한 사막부터, 실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초고층 빌딩 숲도 다 무거운 분위기였습니다. 드라마가 다루고 있는 주제도 철학적으로, 사회적으로 무거운 주제이다 보니 보는 내내 머리가 그리 가볍지 않았습니다. 드라마이다 보니, 극이다 보니 과하게, 극단적으로 표현된 부분도 분명 많지만, 분명 이런 고민들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리도 식힐 겸 연휴를 맞아 가볍게 시작했던 시간이었으나, 그 끝은 그렇게 가볍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쪽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재미를 떠나서 꼭 한번 볼만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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