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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 Oct 01. 2021

Loving Pablo, 에스코바르

바르뎀이 연기한 콜롬비아 마약왕

 콜롬비아의 유명한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에 대한 영화입니다. 사실 마약, 게다가 남미를 다룬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는데, 몇 년 전 넷플릭스를 한창 볼 당시 '스페인어를 귀에 좀 익숙하게 하겠다'는 핑계로 '나르코스'를 열심히 보면서 파블로 에스코바와 콜롬비아 마약상들에 대한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DEA(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 마약 단속국)이라는 부처가 있다는 것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항상 총을 차고 다니면서 미국 국내에서는 연방수사국 FBI, 해외 현지에서는 중앙정보국 CIA 요원들과 함께 합동작전을 펼치기도 하는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죠. 소재가 소재이다 보니 폭력, 살인, 총성, 욕설이 난무하고 아주 자극적이었습니다. 시뻘건 소스가 올라가 있는 붉닭처럼 한번 보기 시작하면 끊을 수가 없는 아주 몰입감이 대단한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대신, 아쉽게도 이걸로 스페인어 몇 자락을 들어보겠다고 한 목적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고, Puta(bitch)를 비롯한 욕만 익숙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얼마 전에 하비에르 바르뎀 주연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로드무비를 아주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예전부터 유명했던 배우지만, 사실 이 배우를 직접 화면에서 마주 본 것은 처음이라 여운을 좇아 그의 필모그래피를 좀 뒤져보았습니다. 눈에 띄는 제목이 나오더군요. 우리나라 제목으로 '에스코바르', 영문 원어 제목으로 'Loving Pablo(사랑하는 파블로)'라는 영화였습니다. 한 나라를, 그리고 물 건너 미국을 들썩이게 했던 악명 높은 범죄자에 Love를 붙이는 것이 우리나라 정서에는 아직 맞지 않아서였을까요? 우리나라 번역 제목은 한번 비틀어서 느낌을 바꾼 제목이었습니다.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고, 돈이라면 무슨 일이든 해치우고, 자신과 조직의 성공을 위해 정치에까지 손을 뻗쳤던 야망찬 마약왕. 극으로 만난 그는 가족을 그 무엇보다 아끼고, 의리 있는 조폭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조금만 한 발자국 떨어져서 생각해보면 정말 무자비한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드라마 자체로만 보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대단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스케일이죠. 미국으로 범죄인 인도가 되지 않게 한다면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겠다고 하고, 여느 특급호텔보다 더 좋은 감옥을 스스로 짓는 다니 말입니다. 그와 대척점에 서게 되면 국가의 가장 큰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인 법무부 장관이라도 해도 비명횡사할 수 있다 보니 그에게 맞설 사람은 없었죠. 이 이야기에 비하면 과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던 우리나라 조폭 문제는 스케일이 조금 작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 기억이 남는 관람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먼저 실제 부부인 하비에르 바르뎀이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연기하고, 페넬로페 크루즈가 불륜관계의 유명 여성 아나운서 버지니아 발레호를 연기했다는 부분이죠. 실제 부부관계가 더욱 끈적끈적한 밀월관계를 연기하다니 말입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두 걸출한 배우의 연기에 몰입되게 되는 것은 이 두 사람의 케미 때문이겠죠.


 두 번째 포인트는 스페인 출신의 두 배우가 스페인어권 국가인 콜롬비아에서 남미 마약상과 아나운서를 연기하면서 스페인어 말투로 '영어' 대사를 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스페인어로 연기를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러면 제작사 유니버설 픽쳐스가 있는 미국에서,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많이 상영되기는 어려웠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틴아메리카 악센트로 이게 영어인지 깜빡할 정도로 연기를 제법 자연스럽게 한 것 같습니다. 모국어로 연기하면 될 것을, 그걸 외국어로 바꿔서, 다시 모국어 느낌을 살려서 연기한다는 것이 사실 더 어색할 수도 있는 것인데, 이 배우들은 그걸 자연스럽게 해냈습니다. 물론 제가 스페인어 네이티브가 아니다 보니 실제 그 나라, 그 동네 사람들이 보면 어색할 수도 있겠죠. 문득, 영화 미나리에서 스티븐 연이 영어보다 한국어가 자연스러운 이민 1세대를 연기하면서, 너무 한국어 발음이 어색했던 기억이 스칩니다.


 하비에르 바르뎀이라는 배우의 몰입감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페넬로페 크루즈야 워낙 유명한 여배우이다 보니, 그녀가 연기하는 역할보다 여배우 자체가 눈에 띌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바르뎀이 아닌 안톤 쉬거만 존재했던 것처럼, 이 영화에서 바르뎀이 아닌 파블로 에스코바르만 보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정말 선이 굵은 배우가 아닐까요.


 원 제목을 'Loving Pablo'라고 한 것처럼, 이 영화는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사랑했던 여성 아나운서 시각에서 영화가 흘러갑니다. 워낙 많은 작품들에서 이미 다루었던 실존 이야기이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서 아직도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방법은 많겠죠.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처음 알게 되었던 드라마 '나르코스'에서는 DEA 마약단속국 요원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같은 이야기더라도 한 이야기는 그를 잡아야 하는 외국 특수요원, 다른 하나의 이야기는 한때 그를 사랑했던 여자의 눈을 통해 조금은 다르게 비칩니다. 이미 그에 대한 다른 작품을 보았다고 해도, 한번 더 보아도 될 것 같은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콜롬비아나 다른 남미 국가들도 다 사람들이 잘 살고 있는 곳일 텐데, 이런 작품을 보고 나면 여행조차도 가볼 생각이 통 들지를 않네요. 분명히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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