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타투 스티커'를 버립니다.

언젠가 또 쓸 일이 있겠지 라고 생각하다가 근 10년이 흘렀습니다.

by jim

오늘도 아직 해가 올라오지 않은 시간에 일어났지만, 이따 오전 중에 사무실에 잠깐 들려서 팀원들과 함께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런지 마음이 분주합니다. 혼자 잠깐 보는 일은 별로 마음이 시끄럽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과 얽혀있는 일은 괜스레 마음에 조금 더 걸립니다. 이타적으로 생각하면 괜히 시간을 빼앗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이기적으로 생각하면 혼자 후다닥 해결하는 것보다 시간도 더 걸리고 신경 쓸 것도 많으니까요.


마음 한쪽이 다른 곳에 이미 팔려있어서 그런지 아침부터 무엇을 버릴지 손에 잘 잡히지 않습니다. 괜히 서재, 옷방, 거실 서랍장을 오가면서 물건들을 들었다 놨다 합니다. 느긋하게 커피 한 잔 들고서 모자를 정리했던 어제와는 많이 다른 분위기입니다.



어릴 적, 사회 초년생일 때 사무실 동료 선배들과 어울리기 위해 샀다가 딱 한번 쓰고 안 쓴 낚시도구를 들었다가, '이건 너무 새것인데' 하면서 내려두고, 고장으로 충전이 안 되는 구형 애플 워치를 들었다가 '혹시 또 모르니까'라고 하고 내려두고, 옷방에 들어가서 옷장을 뒤적이다가 '오늘은 통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문을 닫고 나오기를 몇 차례 반복했습니다. 역시 무언가 비워내는 일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일까요. 마음의 여유를 찾고자 차분하게 물건을 둘러보며 버리기 시작했는데, 반대로 마음 한쪽이 시끄러우니 물건이 눈에 들어오지를 않고, 집중이 되지를 않습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겠는 문제 같이 말이죠.


이런 날일 수록 '그럴싸한', '버려서 티가 나는' 물건이 아닌 '작고 보잘것없는 것'을 찾아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제야 서랍장 한 구석에서 눈에 띄지 않던 비닐봉지 하나가 들어오더군요. 가짜 문신을 하는데 쓰는 헤나 잉크와 어린이들이나 쓸 법한 피부에 붙이는 판박이 문신 스티커들이 들어있는 지퍼백이었습니다.


이게 언제 적 물건이더라.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억을 되짚어 보니 2010년대 초반에 다녀온 하와이 여행과 연관된 물건이더군요. 그러고 보니 몇 년만 더 있으면 벌써 10년 전 여행이네요. 요즘 하와이에 있는 지인이 올리는 인스타그램 사진을 보니 거기는 아직 10년 전, 20년 전 그대로인데 말이죠.


당시 보름 정도 여유 있게 시간을 낼 수 있어서 어디로 여행을 갈까 고민하다가 하와이를 결정했었습니다. 긴 여행을 가기에는 조금 가까운 것 같고, 짧은 여행으로 가기에는 비행시간이 조금 되고, 사실 하와이라는 것이 조금 애매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미국 여행은 아닌 것 같고, 남쪽 섬나라 여행 치고는 우리나라에서 갈 수 있는 다른 옵션들보다 조금 가격대가 있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때는 한창 다이빙에 푹 빠져있을 때여서 다이빙 여러 번 하고, 시간을 제법 넉넉하게 낸 김에 두 곳의 섬에서 일주일씩 머물면서 서핑도 배워볼 요양으로 다른 옵션들을 제치고 하와이행 티켓을 예약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아후, 마우이를 제외한 다른 섬들은 안 가봤으니 언젠가 꼭 다시 또 가봐야겠습니다. 사실 가봤던 곳들도 다시 가면 더 좋겠고요.


바쁜 일상이지만 기회가 닿는 대로 남들이 휴가를 잘 내지 않는 시기에 하루 이틀 휴가를 내어서 가까운 제주도나, 필리핀과 같이 비행시간이 길지 않은 곳 위주로 여행을 다니다가, 이렇게 1~2주 단위로 여행을 갈 생각을 하니 저도 그렇고 아내도 같이 몸과 마음 모든 것이 설레더군요.


하지만, 당시 30대 초중반, 과감한 도전을 안 하기에는 스스로가 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다고 무작정 덤벼들기에는 벌써 사회에 제법 찌들어버린 젊은 꼰대 초입에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따뜻한 남쪽 섬나라에 가서 보름 동안 까맣게 피부를 태우면서 물질만 할 생각을 하니 그럴싸한 문신이라도 하나 있으면 어떨까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피부에 영구적으로 남는다는 것에 선뜻 마음이 내키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좋게 표현하면 주변 사람들의 일상에 관심과 애정이 넘쳐나는 이 대한민국에서, 친지 지인분들과 운동이라도 마치고 같이 샤워할 일이 있을 때마다 자초지종을 설명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쪽에 있어서는 저도 모르게 소심 해지더군요.


그래서 영구적인 타투는 바로 생각을 접었습니다. 문신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많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패션이나 액세서리의 일부분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몇 년 전 구매한 옷을 지금 입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30대에 만든 타투가 70대에도 만족스러울지에 대해 스스로를 믿기도 어렵더군요. 그러던 중 아내가 재미 삼아 인터넷에서 몇천 원짜리 1~2주 지나면 지워지는 타투 헤나 잉크와 판박이 스티커를 구매했습니다.


사실 이것들로 대단하고 큼지막한 타투를 만들 수도 없고, 그렇게 만든다 하더라도 여기저기 이염되기 십상이고, 나중에 지워질 때 얼룩덜룩 좀 지저분하게 지워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보통 작은 문양 같은 것들 위주로 작업을 하죠. 그러다 보니 꽤 넉넉한 양이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여행에서 굉장히 작은 양만 사용했었습니다.


그렇게 여행을 다녀오고, 2주가 지나 여행에서 돌아올 무렵 그 헤나 염색 문신도 얼룩덜룩 지워져 가기 시작하고, 이 잉크와 스티커 세트는 어디 처박혀있는지 관심도 없어지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오늘까지 근 10년의 시간이 흘렀던 것입니다.


잉크 뚜껑을 열어보니 거의 다 말라서 마치 초등학생 시절 일 년에 한 번 열어보던 포스터 칼라 물감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스티커들은 초등학생들 페이스페인팅에 쓸 법한 아기자기한 것들 뿐이고요. 아마 남은 생에 있어서 이 물건을 다시 꺼내어 쓰는 일은 100%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이 물건을 보자마자 들었습니다.


작은 지퍼백 비닐봉지에 정리되어 들어있던 물건. 한번 쓰고 다시는 꺼내어보지 않았던 물건. 관심조차 없었기에 버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눈에 띄지도 않았던 물건. 그 물건을 우연찮게 찾아서 결국 오늘 버리게 되었습니다. 아침부터 생각이 복잡한 하루였는데, 이 물건을 쓰레기통에 넣고 나니 조금 정리된 느낌이 납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커피 한잔도 얼추 다 마셔갑니다. 잔을 헹구고, 양치를 하고 잠시 사무실에 들릴 준비를 하고 다녀와야겠습니다.


이전 07화오늘은 '안경테'를 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