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달걀 보관함과 다트판'을 버립니다.

결국은 예쁜 쓰레기

by jim

굳이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지 않더라도, 꽤 오래 시간 동안 그냥 그 자리에 있었던 것들이 생각보다 의미가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우연찮게 장식장 위에 올려져 있는 다트판이 눈에 띄더군요. 그리고 그 안 쪽에 닭 모양의 계란 보관함이 같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의외로 기능이나 필요에 의해서 산 물건들보다 그냥 눈에 끌려서, 예뻐서, 특이해서 산 물건들이 있습니다. 아마 이 달걀 보관함이 그런 것이지 않을까요. 아마 결혼 준비 당시에 이런저런 잡기들을 사러 다닐 때 모던하우스 같은 생활용품 가게에서 들고 온 물건일 것입니다. 왠지 여기에 달걀을 넣어 두면 분위기도 나고 그럴 것 같아서 샀겠죠. 어린 시절, 처음 집을 꾸릴 당시에는 사실 돈의 크기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이런 물건들을 사 본 적이 없으니 기준이 없는 것이죠. 큼지막한 몇십, 몇백만 원짜리 물건을 사다가 몇천 원, 몇만 원짜리 물건들의 가격표를 보면 왠지 저렴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장바구니에 그런 것들을 잔뜩 싣고 계산대에 오면 그것들이 쌓여서 결국 몇십만 원이 되는데도 말이죠. 이 예쁜 닭 모양의 달걀 바구니도 그렇게 들고 온 물건일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달걀을 담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죠. 아니, 사실 한번 정도는 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용적이지 않기 때문에 다시는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죠. 냉장고를 사면 달걀을 담을만한 적당한 공간과 보관함이 이미 세팅이 되어 있습니다. 사실 굳이 이런 별도의 바구니가 필요하지도 않죠. 게다가 각이 딱딱 떨어져서 공간 효율이 좋은 사각형 보관함이 아닌 애매한 타원형에 닭 모양까지 들어있는 이런 바구니는 공간 효율이 매우 떨어집니다. 냉장고 속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여기저기 헤매게 되죠. 위로 비쭉 쏟아있는 닭 머리와 꼬리, 손잡이 구실을 하지 못하는 날개 때문에 자꾸 여기저기 걸리기만 합니다.


달걀을 넣고 빼는 곳도 위에 작은 구멍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달걀이 사실 많이 담기지도 않을뿐더러, 한두 개 남았을 때에는 손목을 넣어 꺼내기도 불편하게 되어 있는 것이죠. 이 물건이 가진 장점은 그냥 '일반적인 달걀 보관함보다 조금 예쁘다'는 것인데, 사실 문을 닿아놓고 있는 냉장고에 굳이 이런 인테리어 소품이 들어있을 이유도 없습니다. 결국 쓸모없음이 디자인을 뛰어넘는 '예쁜 쓰레기'일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물건은 자연스럽게 냉장고와 계란에서 멀어져서 여기저기 장식장이나 선반을 떠돌게 됩니다. 때로는 와인 코르크를 담아두었다가, 때로는 도대체 뭐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잡동사니를 담아두기도 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비어있는 상태로 보이지 않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굳이 가지고 있을 필요가 전혀 없는 물건이 맞는 것이죠. 큰 고민 없이 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다트판. 사실 제대로 된 코르크 재질의 판과 바늘이 달린 다트 침이 아닌 철판에 자석으로 된 장난감 형태의 다트입니다. 기억을 되짚어 보니, 수년 전 서울에 살던 당시에 아내와 집 근처 홍대에 마실을 나갔다가 새로 생긴 소품 가게에서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어서 그냥 부담 없이 집어온 물건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홍대에 마지막으로 나간 게 몇 년 전인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그도 초반에는 제법 다트를 던질 기회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다트는 번쩍번쩍 거리는 전광판이 달린 다트게임이 가 주욱 늘어서 있는 소위 '다트바'에서 하는 놀이죠. 다트 게임의 규칙도 그냥 점수 높은 사람이 이기는 카운트 업 게임 위주로 하고요. 다트라는 것이 우리나라 문화도 아닐뿐더러 우리나라 술자리에서는 이것 말고도 놀 거리가 많아서 그렇겠죠.


영국에서 연수를 받던 당시에 그쪽 친구들과는 일과를 마치고서 딱히 할게 별로 없었습니다. 동네 펍에 가서 맥주 한잔에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일 그러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그 동네 펍에 걸려있는 다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코르크로 되어 있는 다트는 그냥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것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으면 좀 기다리면 알아서 비켜주고 돌아가면서 하던가, 같이 하던가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 동네 공원에서 즐겼던 3대 3 길거리 농구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코르크 판으로 된 다트판 옆에는 작은 칠판이 있었습니다. 점수를 기록하는 것이죠. 전자식으로 된 다트가 아니기 때문에 알아서 점수를 곱하고 더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단순하게 점수를 더해나가는 직관적인 카운트 업 게임을 많이 하는데, 영국에 있을 때는 그 게임은 '역전'의 묘미가 없다고 하여 조금 더 규칙이 복잡하고 엎치락 뒤치락하는 다른 게임들을 많이 했었습니다.


특정 숫자를 먼저 맞춰야 하는 크리켓 게임을 주로 했었는데, 이건 가운데에 잘 던지기보다는 특정 숫자들을 먼저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잘 못하는 사람이 끼어있더라도 팀에 그리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 외에 301점부터 차례로 점수를 깎아내리면서 정확하게 0점을 맞춰야 하는 301게임도 했었습니다. 두 게임 다 무조건 큰 수만 쭉쭉 맞춰나가면 되는 게임이 아니라 조금 전략이 필요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트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도 같이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이었죠.


집에 다트판을 들고 온 것은 이런 추억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집에 친구들이 놀러 오면 '아기' 또는 '아이'가 같이 오는 경우보다는, '미혼' 친구들이 놀러 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한두 잔 마시고 다트도 던지고 그런 분위기가 가능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다들 시답잖게 다트나 던지고 있을 만한 여유들은 없어졌죠. 만나기도 어려워졌을 뿐더러 시간 내서 만난다 하더라도 이제 '우리'보다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더 둘 수밖에 없어졌으니까요. 그렇게 이 다트판은 점차 손에서 멀어져 갔고, 가끔 놀어오는 친구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쓰이다가, 서로 던지고, 맞추고, 울고, 그러다가 안 보이는 곳에 치워두고, 결국 그렇게 되었죠.


그렇게 이 다트판도 아무도 던지지 않은 채 그냥 이사 왔을 때 올려둔 대로 수년이 흘렀습니다. 이 물건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아마 앞으로도 던질 일을 없을 것 같습니다. 가끔 다트가 생각나면 집 근처에 다트게임기가 있는 가게를 찾아가면 되니까요. 굳이 집에 둘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인구밀도가 높고, 도시의 경우 상가지역 접근도 용이하고, 집이 미국과 같은 외국에 비해 평균적으로 그리 넓지 않기 때문에 엔터테인먼트를 위해 '방'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집에서 컴퓨터 여러 대를 두고 게임을 할만한 공간이 안되기 때문에 친구들과 게임을 할 때에도 PC방에 가서 하고, 아파트에서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노래 부르면 소음문제로 신고당하기 때문에 노래방에 가서 부릅니다. 집에서 늦은 시간까지 술 마시고 파티를 하는 것도 이웃 간에 피해를 줄 수 있어서 소주방에 가서 마시고 놉니다.


집 밖에 나가면 걸어서 몇 분 안에 다 할 수 있는데, 굳이 이런 물건들을 집에 끌고 들어올 필요는 없겠죠. 그냥 물건을 채우면서 자기만족을 하기 위한, 추억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사실상 불필요한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이 다트판도 쓰지 않는 물건, 쓰지 않을 물건, 그 자리에 있어도 존재를 몰랐던 물건, 즉 그냥 '예쁜 쓰레기'였을 뿐이지요.


이렇게 오늘은 예쁜 쓰레기 두 개를 버리기로 했습니다. 매번 물건을 찾아서 버릴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런 물건을 다시 집에 들이지 않게끔 이 순간을 잘 기억해야겠습니다. 잠시 긴장의 끈을 놓치면, 몇십 프로 세일 붙어있다고, 몇천 원 몇만 원 안 한다고, 별로 부담 없다고 그냥 집어 들고 올 수 있으니까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것들이 돌고 돌아 누군가는 사고, 또다시 버려지면 결국 어딘가 쓰레기가 또 쌓여가는 것일 테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