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안경테'를 버립니다.

다시는 쓸 일 없을 것 같으니까

by jim

버리고 버려도 잡동사니는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당장 쓸 일이 없는 물건들을 여기저기 '일단 눈에서 치워버릴 목적으로' 또는 '정리한다는 미명 하에 어딘가 미뤄두고 숨겨두기 위해서' 구석구석 처박아 두기 때문이겠죠.



원래 어려서부터 시력이 꽤 좋은 편이었습니다. 제게 안경은 그냥 '남의 물건'일뿐이었죠. 그런 게 어두운 곳에서 모니터에 있는 글을 많이 읽어야 하는 업무 환경 때문인지, 아니면 이제 마흔 줄에 접어들어서 그런 건지 점점 멀리 있는 글자들이 아른아른하고, 멀리서 인사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또렷해 보이지 않더군요. 그냥 개인적인 일상에서는 큰 문제가 없는데, 큰 공간에서 하는 회의와 같이 멀리 있는 글자를 읽어야 하는 데에 조금 애로가 있어서 업무 중에 쓸 안경을 작년 말에 구매했습니다.


예전에도 안경을 가끔 쓰기는 했습니다. 선글라스는 보통 햇살이 강한 날에는 챙겨 쓰는 편이었고, 이 외에도 유행에 따라 그냥 대충 얼굴 가릴 용으로 렌즈가 없는 안경을 걸치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알 없는 안경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나 걸치고 있는 게 불편하더군요. 길거리에서 혹해서 몇천 원짜리 안경테를 집어 들고 와서 며칠 몇 번 쓰다가 여기저기 처박아두기를 몇 차례 했던지 집에 은근히 쌓여있는 안경테를 제법 찾을 수 있었습니다.


구석구석 자리를 잡고 있던 안경테들을 꺼내 놓고 보니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일단 몇 년 터울로 한 번씩 산 것 같고, 유행에 따라 조금씩 디자인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실제 일상생활에서 자주 쓸 물건으로 샀던 게 아니어서 그런지, 제대로 된 '튼튼하고 멀쩡한' 물건은 없었습니다. 작년 말에 제대로 안경점에서 구매한 안경의 테와는 딱 봐도 다르더군요. 안경을 맞추기 전에는 '나중에 필요할 때 이 안경테에 렌즈만 맞춰 쓰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제 값을 치르고 맞춘 렌즈를 이렇게 아무 테에나 끼울 수는 없겠죠. 몇 천 원, 몇만 원 아끼려다가 전체를 손해 보는 격이니까요.


생각보다 안 쓰는 선글라스는 별로 없었습니다. 운동할 때나 야외활동을 할 때, 여행에서도 햇살에 눈을 찌푸리기보다는 선글라스를 끼는 편을 좋아하거든요. 4월 정도 조금 늦은 아침, 햇살은 밝은 9시경, 아직 쌀쌀한 바람이 코 끝을 살짝 치고 지나갈 때, 안에는 기능성 옷을 하나 받쳐 입고, 헐렁하고 두툼한 후드티 한 장을 걸치고 나서, 가벼운 반바지를 챙겨 입고, 이어폰을 끼고서 후드를 덮어쓰고 선글라스 하나 걸치고 조깅을 하면 기분이 참 좋죠. 나만의 세상에서 혼자 뛰고 있는 느낌,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도 없고, 누군지도 모르는 그 상황, 생각만 해도 좋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선글라스는 액세서리라기보다 생필품의 일종으로 별로 아껴 쓰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별로 좋은 제품을 쓰지도 않습니다. 마치 운동화처럼 적당한 디자인에 좋은 착용감, 괜찮은 가격대 제품이 있으면 사 두고, 헐거워지거나 덜렁거리면 밑창이 다 된 운동화처럼 버리고 그다음 물건을 꺼내어 사용합니다. 몇십만 원짜리 제품을 쓰면 사실 아까워서 그렇게 쉽게 쓰지도 못하고, 케이스에 담아서 애지중지해야 하거든요. 운동을 하다 보면 호주머니나 아니면 밖에 그냥 두어야 할 때도 있고, 바닷가에서 쓰게 되면 바닷물에 젖거나, 그냥 해변에 두고 물에 들어가야 할 때도 있는데, 잃어버릴 걱정이 될만한 선글라스는 오히려 거추장스럽기만 하죠.


그래서 그런지 버릴만한 선글라스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냥 어울리지도 않는데, 재미로 샀던 특이한 디자인의 선글라스가 한두 개 있어서 그것들은 버리는 쪽으로 따로 추려냈습니다.


싸구려 알 없는 안경테, 재미로 집어 들고 온 선글라스, 그리고 장식장 한쪽에 숨어있던 줄 끊어진 스위스 아미 손목시계, 오늘은 이렇게 버리기로 했습니다. 손목시계는 조금 아깝기는 한데, 이렇게 '버리기는 일단 아까운데'라고 생각한 지가 벌써 10년도 훌쩍 넘었네요. 예전에 중동지역에 업무차 파견 나가 있을 때 근처의 상점에서 50% 세일가로 그래도 10~20만 원은 주고 샀던 시계입니다. 군용 시계 콘셉트에 맞게 방수도 꽤 깊은 수심까지 가능해서 해양스포츠를 할 때에도 거의 풀지 않고 사용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시계는 멀쩡한데 우레탄 시계줄이 나중에 삭아서 끊어지더군요. 그런 다음 줄을 맞춰야지 맞춰야지 했던 게 어느덧 벌써 10년도 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줄을 맞춰볼까, 약도 넣고 살려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 여기에 몇만 원 들이기에는 그냥 다음번 애플 워치를 사는데 그 몇만 원을 보태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멀쩡하게 만들어 놓는다고 하더라도 사용하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저는 명품이나 고가의 물건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자동차에도 관심이 별로 없어서 그냥 실용적인 차를 좋아하요. 올해 13년 동안 잘 타고 다녔던 03년식 큐브를 처분했습니다. 유행을 타는 디자인도 아니고 해서 큰 문제만 아니면 사실 계속 타고 싶었지만 수리비가 차 값을 초과하는 상황이 발생해서 어쩔 수 없이 정리했죠. 첫 차로 구매해서 큐브를 10년 넘도록 타고 다니다 보니, 차체가 높은 박스형 차량에 익숙해져서 세단 쪽은 관심이 가지 않더군요. SUV를 사자고 알아보니 차량에 들이고자 하는 예산 범위를 좀 넘어가기도 하고, 그렇게 큰 차가 필요하지도 않고요. 그러다가 경차 레이를 결정했습니다. 전에 타던 차보다 조금 작아지기는 했지만, 유류세 환급 등 경차 혜택도 솔솔 하고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와 가족의 만족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의견들이 많으시더군요. 나이도 있고 한데 너무 작은 차를 샀다거나, 다른 사람들이 얕잡아 본다거나 등등. 안 그래도 사회생활이라는 게 끊임없이 주변을 의식하는 것인데, 내 물건을 사서 쓰는 것 까지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나를 내세워야 한다는 것에 숨이 턱턱 막히더군요.



이런 타입이다 보니 시계도 별로 관심이 사실 없습니다. 자동차 한 대를 손목에 얹고 다니는 사람들의 삶은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삶의 방식은 그들이 사는 세계에 들어갈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겠죠. 그냥 소박하고 평범하게 사는 제게는 수백 수천만 원짜리 시계 하나보다는 그냥 옷에 따라 어울리는 시계 두어 개를 마련해 두는 것이 나은 것 같습니다. 가죽 스트랩으로 된 캐주얼한 시계 하나, 전자시계 하나, 은색 메탈로 된 시계 하나.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실 제일 많이 차고 다니는 것은 스마트워치지만 말이죠.


싸구려 철 지난 안경테들을 모아보고 있자니, 참으로 '길거리에서 싸다고 쓸데없는 것들을 참 꾸준히도 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간 버리지 못하고 계속 굴리고만 있었던 줄 떨어진 손목시계를 보다 보니, 얼마 전부터 손목시계형 순토 다이빙 컴퓨터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일에 치여 몇 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다이빙을 위해서 '굳이 큰돈을 들여서 물건 하나를 집에 또 쌓아놓을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도 듭니다.



안 쓰는 물건을 찾아서 버린다는 것을 쭉 하다 보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버릴 물건들을 통해서 그때로 돌아가서 '그 물건이 그래서 의미가 있었나? 잘 쓰긴 했었나?'를 떠올려보고, 요새 살까 말까 하고 있었던 물건들을 사면 잘 쓸지 잠시 미래도 한번 다녀오는 것 같달까요. 어제는 금요일 저녁이어서 가족과 치킨에 맥주 한잔 했습니다. 숙취도 없이 푹 자고, 평일보다는 한두 시간 더 잤지만, 그래도 주말 치고 이른 시간에 일어나 조용하고 차분한 집을 둘러보면서, 이런저런 물건들을 찾아내어서 이렇게 생각에 잠겨보는 것이 점점 더 꽤 괜찮은 주말 루틴으로 익숙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