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아이폰 케이스, 왜 있는지 모르겠는 장난감, 기념품 시계 등등
예전에 서랍 구석구석에 처박혀있던 잡동사니를 한번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서랍을 열어보니 비슷한 물건들이 또 나오더군요. 뭔가 물건을 집어넣으려고 하면 서랍마다 꽉 들어차 있어서 넣을 데가 없었었는데, 이렇게 버릴 물건들을 채워 넣고 있어서 그랬나 봅니다.
전에도 발견해서 버렸던 예전에 쓰던 아이폰 케이스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확실히 예전에 어릴 때는 기분에 따라, 유행에 따라 휴대폰 케이스도 바꿔가는 부지런함이 있었네요. 요즘은 카드 한 장 꽂히는 그냥 투명 케이스만 쭈욱 쓰고 있습니다. 뚜껑이 달려있는 지갑 형태의 케이스는 아직 좀 이른 것 같고요. 여러 개의 휴대폰 케이스를 보고 있으니, 어린 시절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를 드러내고 표현하는데 관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디 나들이나 데이트를 나가곤 하면 몇천 원, 몇만 원짜리 저런 물건들을 쉽게 사곤 했었죠.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 버리게 될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는데, 아무리 푼돈이었다고 해도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불필요한 낭비 같이 느껴집니다.
여기저기서 기념품으로 받은 손목시계와 레이저 포인터도 발견했습니다.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디자인의 손목시계는 마침 초침도 돌고 있지 않더군요. 한 번도 착용하지 않은 것이라 아깝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굳이 돈을 들여 약을 넣고 고쳐 찰 생각은 없는 물건입니다. 아주 오래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사실 요즘 같은 시대에 저런 손목시계는 별로 고맙거나 달가운 선물은 아니죠. 거기다가 기관의 마크까지 박혀있다면 더더욱 말입니다. 레이저 포인터는 배터리를 넣어보았으나 딱히 작동하지 않습니다. 사실 집에서 쓸 일도 없는 물건이죠. 그냥 큰 고민 없이 쓰레기 통으로 던져 넣었습니다.
왜 여기 들어있는지 모르겠는 주사위 장난감이 있더군요. 아마 어떤 보드게임 세트에서 나온 모양인데, 그 보드게임 세트 자체가 없으니 더 이상 존재의 의미가 없는 물건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이트 로고가 들어있는 야구공도 하나 있더군요. 저는 20대에 어깨를 다친 이후로 공을 던지는 운동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저에게는 전혀 의미가 없는 물건이죠. 조카라도 줄까 생각해 보았지만, 굳이 맥주 로고가 박혀있는 딱딱한 공을 줄 필요도 없겠더군요.
시대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예전에 쓰던 각종 케이블, 메모리카드들은 여기저기서 계속 튀어나옵니다. 근 20년 전 PSP 휴대용 플레이스테이션에서 쓰던 32메가짜리 메모리카드, 예전 디카에서 쓰던 메모리카드(전에 한 장 버렸었는데 다른 곳에서 또 나오더군요) 등 1기가도 채 되지 않는 메모리카드들은 이제 파일 하나 제대로 저장하기도 어려운 구세대의 산물이 되어버렸습니다.
끝으로 전에 버렸던 수제 맥주 제조기에 쓰는 탄산 카트리지 한 박스도 있더군요. 집에서 만드는 유럽식 맥주는 영국의 에일과 비슷하게 조금 묵직하고 탄산도 덜하고 텁텁한 맛이었기 때문에 톡 쏘는 탄산을 추가로 주입할 수 있도록 작은 총알만 한 크기의 탄산 카트리지를 활용해서 맥주에 탄산을 추가할 수 있었습니다. 청량감 있는 맥주를 마시기 위해서는 캔맥주 몇 캔 정도 되는 가격의 이 탄산 카트리지를 추가로 구매했어야 했죠. 지금 생각하면 참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물건이었습니다. 계속해서 파생 소비가 생길 수밖에 없었죠.
전에 버렸던 잡동사니들은 거실에 있는 서랍장에서, 오늘 버린 잡동사니들은 옷방에 있는 서랍장에서 나왔습니다. 아마 안방이나 서재에 있는 서랍장을 뒤지면 또 비슷한 물건들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큼지막한 물건들도 아니고 봉투 하나에 휘리릭 담아서 버릴 만한 작은 물건들이어서 얼마나 집안 정리에 도움이 될지 의문을 갖는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이 작은 물건들로 가득 차서 실질적으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던 한두 칸의 서랍이 텅 비워지면서, 거기에 제대로 된 물건들을 넣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밖에 나와있던, 아니면 곳곳에 나뉘어 있던 물건들이 효율적인 동선으로 제 자리를 찾게 되었죠. 이렇게 안쪽에 쌓인 쓰레기를 버리고, 밖에 나와 있던 물건을 안쪽으로 정리해 넣고,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점점 더 정돈이 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요.
이제 한 달 조금 넘어가는 조금씩 틈 나는 대로 물건 버리기, 생각보다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불필요한 소비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없이 조금씩 집을, 그리고 짐을 정리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날을 잡고 해야지'라고 하는 일은 날을 잡기도 어렵거니와, 크게 일을 벌이는 과정에서 귀찮고 스트레스도 받습니다. 대신 조금씩 하는 일은 별로 부담스럽지도 않고, 스트레스도 없습니다.
전에 후배들과 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저는 한 번에 일을 몰아서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100이라는 일을 해야 한다면 그리고 우리에게 2주라는 시간이 있다면 하루에 5~10씩 차근차근 처리해 나가자고 합니다. 하루 이틀에 몰아하게 되면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야근도 해야 하지만, 미리 계획해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스케줄에 따라 일을 하다 보면 같은 일인데도 불구하고 스트레스를 훨씬 덜 받기 때문이죠.
자기 계발이나 취미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단기간에 열심히 하는 방법의 장점도 있지만, 멀리 길게 보았을 때 꾸준하게 하는 것을 능가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1과 100의 차이보다 0과 1의 차이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1을 100일 동안 계속하면 100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100의 노력을 100일 동안 계속하면 10000이 되고, 9900이라는 격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과의 경쟁을 치워두고 바라보면, 나는 적어도 1에서 100까지 99라는 성장을 멈추지 않고 만들어 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 0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계속 0입니다. 1의 노력을 1,000일 동안 들여서 1,000을 이룰 수 있다면, 0과 1은 거의 차이가 없어 보인다고 하더라도 결국 0일뿐이고, 그 차이는 점점 더 커질 것입니다.
저는 꾸준하게 부담 없이 스트레스 안 받는 방식으로 취미 아닌 취미를 가져가고 있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스페인어 공부가 그렇습니다. 공부라는 말을 붙이기도 조금 그렇기는 하네요. 벌써 몇 년 되었지만, 스마트폰 Duolingo라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 게임 형식으로 푸는 스페인어 퀴즈를 하루에 딱 1세트, 시간으로는 5~10분 정도만 투자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하루에 대여섯 개, 열댓 개 세트씩 했었는데, 그러면 조금 지루하고 지겹더군요. 그러면 다음날에 하기 싫어지고, 저도 모르게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서 안 하는 날도 늘어나더군요. 그래서 딱 한 세트로 바꿨습니다. 생각보다 부담이 없으니 안 빠지게 되더군요. 그렇게 안 빠지고 이걸 쭉 이어온 지 벌써 몇 년이 흘렀습니다. 물론 대단한 실력은 아닙니다. 여행자 수준에서 몇 마디 할 수 있고, 어린아이 수준의 말귀를 알아들을 정도, 초등학교 저학년 교과서를 띄엄띄엄 읽을 수 있는 수준이죠. 하지만 하루에 5분을 쌓은 것 치고는 매우 만족합니다. 앞으로도 계속하는데 부담이 없고요.
요즘 입사하는 후배들에게 독서를 권할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하루 날을 잡고 책을 한 권 읽는 것은 꾸준히 책을 읽어오지 않은 사람들에게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루에 1개 챕터 5~10페이지 정도는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제법 어려운 책이라고 해도 말이죠. 보통의 단행본은 200페이지 내외입니다. 10페이지씩 읽으면 주중에만 점심 먹고 잠시 쉬는 타이밍에 책장을 넘겨도 한 달에 한 권은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루 주말 시간을 내어서 - 쉬는 시간을 쪼개서 - 책을 읽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겠지만, 점심 먹고 자리에 앉아 커피 한잔 마시면서 대여섯 페이지의 책장을 넘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걸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의 점심시간은 그렇게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 정도라면 독서 때문에 압박을 받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도 아니고요. 차이는 1년 정도 지나면 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1년이면 적게는 10권 내외, 많게는 그 이상의 책을 읽은 사람과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몇 년의 차이가 더 쌓이면 세상을 바라보는 식견 자체가 서로 다른 두 사람으로 인생 자체가 달라져 있을 수도 있겠죠.
그래서 물건 정리에 있어 무엇 하나 제대로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었던 맥시멀 리스트였던 저 자신을 바꾸기 위해 차근차근 습관을 들이기로 했습니다. 하루 날 잡고 싹 정리하고, 다시 구석구석 물건을 쌓아두면서 사는 삶보다, 지금은 별 차이가 없더라도 조금씩 비워나가는 삶을 앞으로도 쭉 살아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