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면 TV도 디퓨저도 모두 참 필요 없는 물건들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외부에 드러나 있는 물건들 중에서도 꽤 오래도록 손을 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가구가 아닌데도 말이죠. 장식품 종류들이 제법 그렇지 않을까요. 집 분위기나 인테리어, 가구 배치를 바꾸는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그냥 거기에 잘 두었던 물건들을 옮기는 경우는 많지 않으니까요.
어제 주방 수납장에 이어서 오늘은 TV 없는 TV장 위를 스윽 훑어봅니다. 수년 전 TV가 고장 난 다음에 재구매를 하지 않다 보니 TV를 올려두던 장은 그냥 액자나 꽃병 등, 네스프레소 등을 올려두는 거실 수납장이 되어버렸습니다.
TV는 아마 앞으로도 사지 않을 예정입니다. 뭔가 큼지막하게 볼 필요가 있을 때는 보통 프로젝터를 이용하고 있거든요. 생각보다 TV가 없을 때 생기는 불편함보다는 장점이 많습니다. 주변에 친구들에게도 많이 권해주고 있고요. 오늘 버릴 물건 이야기에 앞서 잠시 TV에 관한 이야기로, 옆길로 새어볼까 합니다.
일단 퇴근 후나 주말과 같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의 체감적인 양이 엄청나게 늘어납니다. 아무 생각 없이 TV를 켜고 소파에 앉거나, 눈길을 주기 시작하면, 이런저런 수십 개의 채널을 멍하니 쭉 한번 돌려보는데 몇 분에서 몇십 분, 그리고 뭐 하나 걸려들었다 싶으면 그 프로그램 보느라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평일 저녁의 경우에는 그러면 벌써 한밤중이 되어 버립니다.
처음 막 TV를 없애고 나서 저녁에 사실 무어를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아내랑 앉아서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차도 한잔 마셨는데 아직도 초저녁입니다. 나가서 한두 시간 산책을 하고 와도 아직 잠자리에 들기는 이릅니다. 은은한 조명으로 바꾸고 책을 몇 소절 읽고 나면 어느새 '조금 일찍 잠들만한' 시간이 됩니다. 그렇게 조금 일찍 잠들면, 불필요한 TV 소음과 불빛 없이 잠에 들면 다음날 아침에 몸이 더 가볍기도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아침에 조금 더 일찍 일어나게 되고, 의도치 않게 저녁뿐만 아니라 아침에도 시간이 꽤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다 하다 할 일이 없어서 책을 보고 공부를 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보고 싶은 것들은 이미 충분히 볼 수 있고, 보게 됩니다. 유튜브, 각종 비디오 클립들, 넷플릭스와 같은 OTT 서비스까지 뭔가 '봐야겠다'면 볼 수 있는 플랫폼은 넘쳐납니다. 하지만 이러한 온디맨드 영상과, TV와 같은 온에어 영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온디맨드 영상은 '내가 필요할 때 찾아'보고, '그만두고 싶을 때' 멈춰서 나중에 다시 볼 수 있지만, 온에어 영상은 '그냥 맹목적으로' 보게 되는 경우가 많죠.
그러다 보면 물론 남들보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조금 느려질 수 있습니다. 사실 TV에서 소위 '밀고'있는 프로그램들에 대해서는 좀 눈이 어두워지게 됩니다. 그 유명한 '스우파'도 엊그제 '나 혼자 산다' 다시 보기를 보고 알았으니까요. 눈에 띄는 영상 소비 패턴의 변화는 TV 드라마를 보는 빈도가 급격히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밤 10시경에 하는 미니시리즈를 제법 봤었죠. 10~20부작의 그 드라마가 끝날 때쯤 되면 앞으로 방영할 드라마의 광고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또 그걸 이어서 보게 되죠. 그런데 TV가 없다 보니, 온에어 미디어를 접하지 않게 되니 그런 광고 자체를 볼 수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더군요.
두 번째로 소비 패턴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TV가 없다는 것은 광고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유튜브도 광고 투성이지 않느냐'라고 하신다면, 저는 '그래서 몇천 원 더 보태서 '유튜브 프리미엄을 본다'라고 답합니다. 시장경제 시스템에서 기업과 시장은 끊임없이 물건을 만들고 소비를 통해서 이익을 창출해야 하며, 이 가운데 광고가 아주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광고를 보고 있다 보면 저걸 사야만 할 것 같고, 저게 멋있어 보이고, 저게 필요한 것만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아예 그런 이미지를 접하지 않게 되면 그런 '누군가가 주입하는 메시지'에 현혹될 일이 없습니다. 물론 나쁘게 해석해 본다면 '점점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모르게'되는 것일 수도 있죠.
몇 년 전 그랜저 광고가 생각납니다. 30대 초반 정도의 잘 생긴 남성이 나와서 '잘 지내냐는 친구의 인사에 (그랜저 리모컨 키 비빅 소리)로 대답했습니다'는 짧은 카피로 마무리되는 광고였죠. 어릴 적 그랜저는 성공한 아버지의 자동차였는데, 언제부턴가 사회 초년생도 도전할 수 있는 자동차가 된 걸까요. 사실 그런 대형차가 필요한 게 맞기는 할까요. 우리나라의 경제가 발전한 것도 있겠지만 이런 것도 사실 어느 정도는 광고가 만들어낸 이미지일 것입니다.
이 밖에도 제가 느낀 여러 가지 장점들이 있지만 큼지막한 두 가지는, 앞에서 이야기한 시간적 여유와 경제적 독립, 이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삶 속에서 TV 하나 치웠을 뿐인데 하루에 시간이 서너 시간이 늘어나고, 불필요한 소비의 대부분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장점들 외에 더 이상 TV, 엄밀히 이야기하지만 국내 대기업 TV를 구매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십수 년 전 결혼 당시 혼수로 들였던 TV는 42인치 PDP TV였습니다. 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 대기업 제품은 AS기간 꽤 길었습니다. 중저가의 다른 브랜드도 있었지만 '오래 쓸 물건'이라는 이유로 대부분의 혼수 제품은 국내 대기업 제품으로 들였었죠. 사실 TV와 같은 가전제품은 같은 크기의 비슷한 다른 제품과 가격이 많이 차이 납니다. 요새는 아마 더 심할 것이고요.
어느 날 TV가 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AS 센터에 연락을 하니 '아직 AS기간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미 단종된 제품이어서 부품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내부적인 보상규정에 따라 TV 구매 가격을 감가 해서 소정의(정말 얼마 안 되었던) 금액을 보상해 드릴 테니 새로 구매하시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사실 이럴 거라면 굳이 국내 대기업 제품을 선택할 필요가 없었겠죠. 그냥 훨씬 싼 다른 제품을 사서 쓰다가 고장 나면 버리고 새로 사는 게 실질적으로 더 저렴하거든요.
요즘 AS 정책을 살펴보니 이런 문제가 더 심해진 것 같습니다. 업체와 모델에 따라 다르지만 인터넷을 얼핏 검색해 보니 1~5년 정도 AS 기간이더군요. 문제는 이 기간이 짧다는 것보다 신제품 순환 속도가 더 빨라졌다는 것입니다. 기업은 새로운 제품 생산공정을 돌리기 위해 구형 제품을 더 빨리 단종시킬 텐데, 실질적으로 저 기간 안에 수리를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죠. 기간이 짧아진 것도 문제입니다. 예전보다 더 좋아진 제품이어서 고장이 덜 날 텐데 보증 기간은 더 짧아졌으니 보증을 해주겠다는 것인지 말겠다는 것인지도 의문이 듭니다.
그래서 그렇게 국내 대기업 TV를 버려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쪽 제품은 안 사기로 했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오늘은 그 TV장 위를 훑어보다가 언제부턴가 양이 줄지 않는 방향제 디퓨저를 발견했습니다. 언제부터 저기 올라와 있었을까 되짚어보니, 청약으로 분양받은 아파트가 완공되고 입주 점검을 갔었던 2년 전에 건설사에서 기념 선물로 주었던 것이더군요. 사실 향에 그렇게 민감하지도 않고, 저와 아내 모두 인공적인 향을 즐기지 않다 보니 집이나 차량에 방향제 관련 제품을 직접 구매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이 분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죠.
사무실에 있는 디퓨저도 그렇고, 이 디퓨저라는 것이 사실 처음에는 향이 엄청 강하고 심지를 하나만 꽂아 두어도 증발이 빠르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향도 나지 않고 양도 줄지 않습니다. 전문적으로 이쪽에 조예가 깊으신 분들은 적정한 리필 또는 교체 타이밍을 가지고 관리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냥 '다 떨어지면 바꾸던가 버려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저 같은 초심자에게는 '영원히 줄지 않다 보니, 언제 버려야 할지 모르겠는' 물건이었던 것이죠.
향이 점차 나지를 않기 시작하면서 하나둘씩 더 꽂았던 심지 쪽으로 코를 가져다 대고 향을 맡아봅니다. 여러 개의 심지가 꽂혀있음에도 불구하고 향이 거의 나지를 않습니다. 사실상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이죠. 병에 담긴 액체의 양은 제법 남아있는데도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진짜 쓸모'가 아닌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치중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나. 디퓨저의 진짜 목적은 향을 내는 것인데, 향이 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의미 없는 액체가 남아있다고 해서 계속 두었던 것은 뭔가 주객이 전도된 것 같은 선택이지 않을까요. 일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특정 기술과 전문성이 필요한 일에 그 능력을 갖춘 사람이 일을 하도록 해야 하는데, 실제적인 능력이라는 것을 개개인별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으니 겉으로 드러나는 경력, 학위, 자격증 등에 치중하게 됩니다. 물론 경력, 학위,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전문성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꼭 그런 것 만도 아닌 것이 현실이죠.
진짜 제 역할을 하는 것과, 제 역할을 할 것처럼 보이는 것. 이 두 가지는 엄연히 다르지만 막상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구분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삶을 살아가면서 모든 케이스를 다 직접 겪어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부는 실체를 대면하지 않고 서류와 같은 외형을 통해서 구분해 내야 하고, 일부는 직접 처리하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여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 사람이 한 것처럼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지 않고,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의사결정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집에서, 밖에서, 일터에서, 지인관계에서도, 점차 기대가 커지고 책임과 의무가 늘어갑니다. 가끔은 오늘 이렇게 버리게 된 디퓨저를 떠올려보아야겠습니다. 지금 나는 향을 내고 있는 디퓨저를 선택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대충 스윽 훑어보고 남은 잔량만 체크하고 있는 것인지 말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지금의 나는 향을 내고 있는 디퓨저인지, 아니면 향은 다 날아가고 겉에서 볼 때 액체만 남아있는 디퓨저인지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