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건 좋은데 주변에 털 테러가 심해서
겨울이 다가옵니다. 아직은 가을이긴 하지만 제가 보통 출근길에 오르는 새벽 세네시 경에는 벌써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날이 더 많아졌습니다. 곧 영하도 다가오겠죠. 이삼십 분 거리를 걸어서 출근하는 길에 보통 스마트폰으로 이런저런 뉴스들을 읽으면서 가곤 합니다. 사람은커녕 차도 한대 안 다니는 아직 어둑어둑한 길이지만, 이제는 눈길보다 발걸음이 먼저 방향을 잡을 정도로 익숙해졌습니다. 그런데 한두 주 전부터는 제법 쌀쌀해져서 맨손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오래 있기가 힘들더군요. 이렇게 겨울이 다가옴을 느낍니다.
아내가 방한용품을 따로 보관해두는 박스가 있습니다. 목도리, 장갑, 워머 등등이 들어있는 함이죠. 필요한 것들을 챙겨볼 요양으로 그 상자를 꺼내어보았습니다. 오랜만에 꺼내는 옷 박스를 건드릴 때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제법 많은 먼지가 흩날립니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 코가 먼저 알아챕니다. 한참을 재채기를 하고 나서 다시 박스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필요한 몇 가지를 꺼내어 손이 닿는 곳으로 옮겨두고, 얇고 가벼운 장갑 한 켤레는 출근 가방 안에 미리 넣어둡니다. 저는 제 물건만 손을 댈 뿐 아내의 물건은 잘 손대지 않습니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던 아내가 본인 목도리 몇 개를 들었다 놓았다 하더군요.
아무래도 여자이다 보니 목도리 종류도 다양합니다. 저랑 같이 쓰는 보통의 털실 목도리부터, 하늘하늘한 스카프 종류도 있고, 털이 복슬복슬한 것들도 많았습니다. 원단의 종류뿐만 아니라 색상도, 디자인도 다양하더군요. 아내가 목도리들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털이 복슬복슬한 것들을 한쪽으로 추려내더니 '나도 버려야겠다'라고 했습니다.
왜 이런 종류만 버리느냐고 물어봤더니, '사실 잘하지도 않는 데다가, 주변에 털이 많이 붙어서 불편하다'라고 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아내가 앙고라나 토끼털 등 복슬복슬한 겨울옷을 입고 나왔을 때 데이트했던 기억이 납니다. 팔짱을 끼고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 보면 한쪽 팔에만 밝은 색깔 털이 제법 붙어있었죠. 그걸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은 그렇게 많은 나이를 먹은 것은 아니지만, 저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결혼생활 10년이 훌쩍 넘어가면서 격식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편리함과 편안함을 점점 더 추구하는 것을 느낍니다. 예전에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예쁜 신발을 신고 하루 종일 걸어 다녔다면, 요즘은 조금 멋스럽지는 않더라도 편안한 신발을 먼저 꺼내어 신고 나가는 날이 더 많습니다. 조금 춥더라도 핏이 딱 떨어지는 코트를 입는 대신, 어차피 실내에 있는 약속 장소에 도착하면 벗어놓을 생각으로 패딩을 걸쳐 입고 나갑니다.
언제부턴가 옷장에 정장이나 캐주얼 의류보다 트레이닝복이나 기능성 소재로 된 아웃도어 웨어, 골프웨어의 비중이 늘어가는 것도 비슷한 현상이겠죠. 그러고 보면 어린 시절에는 외적인 면에서 주변의 시선을 많이 의식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주변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경험의 폭이 넓어지고, 책임의 범위가 커질수록 더 늘어가고 있으니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내 겉모습보다 내 안에 있는 나에 대해 관심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과도하게 눈에 띄는 케이스가 아니라면 사실 40대 아저씨가 어떤 옷을 입고 다니든, 어떤 스타일로 하고 다니든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패션업계에 종사하거나 유행에 민감한 업종이 아니라면 말이죠. 그것보다는 제가 하는 일, 일을 하는 방법, 특히 어려운 일을 헤쳐나가는 과정, 이 가운데에서 나타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등에 대해 더욱 관심이 많을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면적인 모습이 아닌, 그 사람의 속에 있는 '진짜'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어지는 것이겠죠.
그걸 조금씩 알아가면서, 그렇게 생활의 패턴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나름의 '멋'의 끈을 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멋'을 부리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멋지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도 없으니까요. 학창 시절 말씀을 재미있게 하시던 '기술' 교과 선생님의 말씀이 문득 떠오릅니다.
"멋은 부리는게 아니고, 폼도 잡는 게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풍겨나오는 것이다."
그분은 실제 나름의 멋이 풍기는 분이셨습니다. 시험의 주요 과목은 아니었지만, 최대한 필요한 많은 지식을 전해주시려고 재미있는 전달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때로는 엄하게, 다양한 모습으로 수업의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시험성적과 진로 결정을 좌지우지하는 소위 주요 과목은 아니었지만 그때 배웠던 간단한 이론들과 지식들은 지금까지 성인 남성으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주요 과목이라고 국영수 선생님들처럼 강압적인 수업도 아니었고, 혼자서 10개 학급의 주 1~2시간짜리 과목을 맡아하셨지만, 다른 일부 소규모 교과 선생님들처럼 매너리즘에 빠진 수업도 아니었습니다. 한창 브랜드 운동화에 눈을 뜬 사춘기 철없는 학생들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비싸고 보기 좋은 신발 신고 못 뛰는 놈보다, 자기에게 잘 맞는 신발 신고 잘 뛰는 놈이 제대로 된 놈이다."
이제야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조금 더 알 것 같습니다. 겉모습이 잘 빠지는 것도 좋지만, 이제 제법 어른의 대열에 들어가는 불혹의 나이, 제게 어울리지 않는, 분에 맞지 않는, 불필요한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제대로 된' 어른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