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rift, 표류
1983년, 근 40년 전에 있었던 표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저는 배경이나 인물이 한정된 집중된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몰입감이 좋습니다. 망망대해라는 뻥 뚫린 공간이지만, 실제적으로 배 안에서 생존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몸부림치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면 되기 때문이죠.
GPS도, 구글맵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저런 돛단배를 타고 대양을 건너갈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란 자연 앞에서 참 한없이 작은 존재임을 다시금 느낍니다. 땅에 두 발을 딛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사실 숨 한 모금 조차 마음대로 쉴 수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니까요. 이 영화는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재난영화로 분류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산드라 블록 주연의 그래비티가 우주에서 펼쳐지는 생존이 걸린 재난영화였다면, 이번 애드리프트는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벌어졌던 생존이 걸린 재난영화였습니다.
출항 이전, 과거의 행복했던 시간과 폭풍과 표류 이후 현재의 시간을 계속적으로 교차해서 보여주는 편집이 영화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남녀 주인공의 첫 만남부터 시작한 과거의 이야기는 폭풍우와 표류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표류 이후에 시작한 현재의 이야기는 지루한 시간과의 싸움을 보여주죠. 두 이야기가 맞아떨어지면서 반전을 거듭하는 부분은 마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Missing Link를 찾아서 계속 추측해만 갔던 이야기가 맞아떨어지는 그 기분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영화에 참여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이야기 구조가 간단하기 때문에 한 시간 반 남짓의 러닝타임이 적당했던 것 같습니다. 굳이 두 시간, 또는 그 이상 끌고 갈 필요는 없었죠.
이 영화, 시원한 여름 영화로 볼만합니다. 그런데 혹시라도 스포일러가 될까 봐 영화 이야기를 깊이 하지는 못하겠네요. 앞서 이야기했던 '그래비티'도 중간중간 떠오르고, 아주 감명 깊게 보았던 표류 영화인 'Life of Pi'도 생각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라이프 오브 파이'를 언젠가 다시 한번 보아야겠습니다. 근 10년이 지났지만 아마 지금 보아도 전혀 손색이 없지 않을까요. 잠깐 옆길로 샜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이 세 영화가 모두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래비티'가 '인간의 약함'과 '긴박함'에 초점을 두었던 영화라면, '라이프 오브 파이'는 전체적인 표류의 '과정'과 인물의 '변화'에 좀 더 치중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이번 '애드리프트'는 제 시각에서는 이 두 영화의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긴박함'과 '스토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두 영화만큼 어마어마한 CG와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화가 주는 +a'를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아름다운 바다, 자연의 거대함, 두 젊은 남녀의 사랑이야기, 나름의 반전, 실화가 주는 감동, 재난영화 특유의 긴장감, 모두 다 좋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배를 탔던 것이, 수영을 했던 것이, 아니 바다 자체를 보았던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를 않네요. 곧 좋은 시기가 오면 바다를 한 반 찾아가 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