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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 Jul 03. 2021

단돈 삼만원 들고 떠난 219일간의 세계 무전여행

26 Euro

 26유로, 우리 돈으로 3만 원 정도의 돈만 가지고 편도 비행기 티켓으로 유럽을 2백 일 넘게 여행한 젊은이의 여행기입니다. 무전여행, 말은 낭만적이지만 본인을 제외한 다른 보통 사람들도 낭만적 일지 항상 의문이 드는 단어였습니다. 여행이라는 것이 하는 사람에 따라, 가는 장소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해본 무전여행은 '좀 별로'였습니다.


 글을 업으로 쓰시는 작가분의 글이 아니어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경험의 폭이 좁고 깊이가 얕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엮은 책이어서 그랬을 까요. 구체적이지 않은 묘사와, 건너뛰어 가는 맥락으로 인해서, 텍스트가 별로 없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집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여행은 그냥 보기에 '좀 불편' 했습니다. 부주의한 성격 탓에 알게 모르게 주변에 폐를 많이 끼치다 보니, 의식적으로는 절대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정당한 대가 없이, 숙식과 이동수단을 당연하게 제공받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이 여행은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친절해 보이는 사람을 물색하고, 본인의 대단한 경험을 어필한 다음, 그 집에서 잠을 자고, 식사를 기대하고... 제가 이런 것을 할 성격도 못되지만, 누군가가 이렇게 다가온다는 것도 그렇게 유쾌한 경험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책에 있어서 나름 기준이 있지만 관대하다고 생각했는데, 기존에 읽어왔던 책, 기존에 읽어왔던 여행이라는 것의 범위를 많이 벗어나는 책을 보다 보니 저도 모르게 40대 '꼰대' 기질이 올라오고, '프로 불편러'가 되어버렸습니다. 책을 덮을 때 즈음에는 '제가 불편해하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것' 때문에 한번 더 불편한 경험을 했던 책이었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현지인의 삶 속에 들어가는 것이 진짜 여행이라고 하기에, 너무 그들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연구와 노력이 좀 부실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을 이해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경복궁을 통해 역사를 알아볼 수도 있을 것이고, 강남을 돌아보면서 경제와 산업에 대해 배울 수도 있을 것이고, 홍대와 신촌을 돌면서 젊은이들의 문화를 몸으로 느껴볼 수도 있겠죠. 무엇이 정답이라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요 관광지 위주로 찾는 '관광객 마인드'는 가짜 여행이고, 자신의 여행이 '진짜 여행'이라고 은연중에 풍기는 분위기는 그리 편치 않았습니다. 심리학에서 이야기 하는 '신포도 기제'와 관련된 이솝우화 <여우와 신포도>가 떠오릅니다. 내 경험만이 우월하고, 내가 하지 못한 경험은 별로라고 생각하는 방어기제 말입니다.


 구어체로 쓰인 글 자체도 읽기가 어려웠습니다. 글과 말은 엄연히 사용하는 방법이 다르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동생, 친구들과 맥주 한 잔 하면서 본인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주는 정도의 내용이기 때문에 그 분위기를 문체로 담아내었다면 그렇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책에 텍스트가 별로 없고, 디자인이 화려하고, 폰트가 다양할수록 내용이 그만큼 빠진다는 20년 전 교수님의 말씀을 들었어야 했는데, 또 깜빡했습니다. 3백 페이지가 넘는 글이지만, 실제 보통의 편집으로 글을 빼면 백 페이지 정도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텍스트가 있는 페이지도 모눈종이 같은 체크 바탕을 쓰는 것은 젊은 여행자들의 글을 정리한 책에서 종종 보이는데, 여행기 출판사들의 트렌드인가 싶기도 합니다.


 본인의 여행이 대단한 것이라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 말고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인지 끝까지 찾아볼 수는 없었습니다. 여행이 끝나고 책도 끝났어야 되는 타이밍에서 갑자기 다른 여행을 억지로 추가해서 그나마 동선을 따라 연결되던 맥락도 막판에 가서는 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도하고 있는 '여행 - 책 - 돈', 이 절차였던 것일까요.


 이왕 '프로 불편러'로 이 책을 읽은 김에 가장 불편했던 점을 하나만 더 짚어보고자 합니다. 자기보다 경험의 폭이 좁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행에 대해 경험을 공유해 주기에 다소 무책임한 글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타국에서 비자, 취업 관련 위법을 자랑스럽게 적는 행위는 양쪽 국가 모두를, 그리고 그 불법 계약의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것이지 않을까요. 나중에 이 글로 인해 '비정상의 정상화'가 조금이라도 증가하게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런 것일까요. 책에 적은 것처럼 '세상에 위험한 곳이 없다'라고 이야기 하기에는, 실제 잘 준비가 된 여행에서도, 국내 여행에서도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생들에게 이야기해주는 여행기 정도라도 본인이 준비한 것들, 적어도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준비했던 것들에 너무 없습니다. 혹여라도 이 책을 보고 떠난 이가 불법을 자행하다가 법적인 문제가 생기거나, 경제적인 빈곤으로 사고를 당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없었을까요. 본인의 능력이 출중했을 수도 있지만, 운이 그만큼 좋았던 것일 수도 있고요. 이 책을 보면서, 얼굴은 모르는 사이지만 십수 년 전 여행을 떠났다가 주검이 되어서 돌아왔다는 대학교 후배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돈 한 푼 없이 모든 것을 '시도'하는 적극적인 자세는 저자의 큰 장점이자 강점 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는 삶은 '잘못된 삶'일까요? 같이 여행을 준비했다가  떠나지 않고 안정적인 직장을 찾은 친구를 은연중에 비교한 것은, 은연중에 '본인의 다름'을 '나음'으로, '타인의 평범함'을 '틀림'으로 정의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세상의 주인공은 '나'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세상'의 주인공만 '나'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지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요새 말로는 정신 승리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내가 받아들이기 싫은 이야기를 하면 잘못된 것일까요. 여행기를 보면서 별 생각을 다 하는 주말 오후입니다.




16. 사실 위험하지 않은 곳은 없으며, 위험하다는 것도 생각하기 나름이야.


196. 너의 여행은 틀렸어. 넌 크로아티아에 여행을 온 거잖아. 그럼 크로아티아에서 돈을 써야 해. 지불하는 것도 없이 뭘 얻어가려고 하는 거야? 오늘은 얻어먹고 남의 집에서 잔다고 해도 내일은 돈을 써야 해. 그게 이치에 맞는 거지. 네가 지금 하는 것은 구걸이야. 여행이 아니라고. 신을 믿어? 신이 너에게 손을 내줄 것 같아? 정신 차려. 똑바로 여행하라고.


214. 어떤 의무감이나 어딘가를 꼭 가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이, 늦잠을 자도 되고 일정에 맞춰야 한다는 책임감 없이 프라하를 즐길 때 더 많은 것을 볼 수가 있었던 것 같아. 관광객의 마인드로 찾아가면 쉽게 지나치고 잊히는 사소한 것들이 현지인처럼 있을 때 더 의미 있게 다가오거든.


245. 사실 영국에서도 관광 비자를 가진 사람이 일 하는 것은 불법이야. 학생 비자가 있어도 주당 22시간밖에 일을 못한대. 나는 돈이 필요했고 사장님은 불법이긴 하지만 싼 인력이 필요했으니 이것도 어찌 보면 윈윈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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