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m Jul 17. 2021

얘들아, 세상 밖으로 나가거라

가족과 함께한 세계여행

 그간 읽었던 많은 여행기들은 '부부'가 함께 다니거나, 아니면 '혼자' 다닌 여행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 책은 부제로 '가족과 함께한 세계여행'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근래에 접해보지 못했던 '가족 세계여행'을 다룬 책이었습니다. 


 부부가 다닌 여행은 두 사람의 관계와 대부분 관광지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었고, 혼자 다닌 여행은 내면과의 대화와 사색이 주 내용을 이루고 있었던 것에 비해 이 책은 '성장 드라마'를 담고 있더군요. 일단, 책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를 짚자면, 이 책은 다른 '세계여행' 책들과는 다르게 '한 번에' 한 여행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짧게 며칠 다녀온 여행부터, 중교고에 이르기까지 방학 등을 이용해서 다녀온 짤막한 여행들을 한 곳에 엮은 책입니다. 하긴 세계여행이 꼭 한 번에 해야만 세계여행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한 번에 기획적으로 다녀온 여행을 정리한 것보다 십수 년 동안 이렇게 한 가지를 주제로 해서 자료를 엮어왔다는 것이 대단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메인 테마가 분명 '가족'이기는 한데, 책 속에 가족 이야기는 별로 없습니다. 성별에 대한 기대가 다르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여행에 아내와 큰 딸은 없습니다. 아들 쌍둥이 이야기가 책 내용의 90%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7%는 본인 이야기, 2%는 딸, 1%는 아내, 이 정도 분량이지 않을까요. 아들사랑이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아들에 대한 기대도 남다르신 것 같고요. 아들들이 이 책을 보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부끄럽기도 하고, 아버지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다양한 감정이 교차할 것 같습니다. 따님은 좀 서운하지 않을까 생각도 들고요. 앞에서도 간략히 이야기했지만 두 쌍둥이 아들의 성장드라마가 내용의 대부분입니다. 여행지에 대한 내용보다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행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이 책을 보는 것은 맞지 않을 것 같고, 여행지에서 자라나는 두 아들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간접경험을 해보기에는 적당한 책일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어리다고 싸우고, 사춘기 때는 사춘기라고 말을 안 듣고, 지구 반대편까지 여행을 가서 노트북으로 영화보기에 바쁘고, 세계 어딜 가나 그 나라 음식보다는 삼겹살에 김치찌개만 찾고 말이죠.


 요즘 우리나라 서점에서 '세계여행'으로 분류가 되려면 인도, 남미, 아프리카 3종 세트는 필수 코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에도 이 세 곳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일부 관심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지역들인데, 요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끌리는 곳은 끌리지만, 별로 가보고 싶지 않은 곳은 책을 통한 간접경험 때문에 더 가기 싫어지기도 하고 그러네요.


 이 책이 좋았던 여러 가지 중의 하나는, '현실적'인 여행이었다는 것입니다. 굳이 무리해서 한 번에 세계를 다 돌 필요는 없겠죠. 저 같은 보통사람의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보이지도 않고요. 오히려 이 책에서 다니신 것처럼 기회가 될 때마다 여기저기를 다녀보는 개념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좋았던 점은 '도피가 아닌 성취와 성장'의 여행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한국의 쳇바퀴 같은 삶을 벗어던지고자 나는 퇴사를 하고 전세금을 빼서 세계로 내 몸을 던졌다'는 것은 너무 흔한 콘셉트이기도 하고, 자꾸 반복적으로 비슷한 글들을 보다 보니 그냥 '도피' 이상의 것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좀 피로하죠. 반면 이 투박한 글은 본인의 꿈을 이루는 것과, 자녀들의 성장을 같이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누군가의 로망이 도피나 도망 없이 이루어지는 것, 그리고 그를 통해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니 이 책의 여행은 혼자 지출해서 세 사람이 다니는 여행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이야기는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여행이 시간에 쫓기지도 않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역시 사업을 해야 하는 건가', '피고용인이나 노동자는 결국 현대판 노예일 뿐인 건가'.


 굳이 별로였던 점을 꼽자면, 아마추어 여행가들의 편집에서 많이 나오는 무의미한 모눈종이, 구긴 종이 배경이나 불필요한 디자인 속지들이 여기에도 등장했다는 점입니다. 뭔가 이게 유행이었을까요. 텍스트를 읽기에 방해되는 것들이 왜 여행기에는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마추어 작가들의 책이 많이들 그러듯이 설명 없고 맥락 없는 - 본인의 추억만 가득할 것 같은 - 사진들이 중간에 너무 많다 보니 글을 읽는 것이 중간에 툭툭 끊어지곤 합니다. 어딘지도 모르겠고, 왜 들어있는지도 모르겠는 사진들, 한국 식당에서 찍은 사람들 얼굴만 가득한 (여행책에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는) 사진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본인 가족의 추억을 담은 출력물이라면 좋겠지만,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독서를 방해하기도 하니 말이죠. 차라리 방문지의 저명한 경치가 낫지 않을까요. 텍스트 만으로 전달되지 않는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사진 말입니다.




6. 그것은 단순한 아빠의 욕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간절히 원했었고, 그리고 아이들이 아빠를 필요로 할 때 실행하고자 했다. 시간이 있고 여러 가지로 떠날 여건이 될 때, 그때는 이미 아이들이 부모 곁을 떠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41. 100년이 채 안 되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은 서로 잘났다고, 내가 더 옳다고 기를 쓰며 살아가는데 박물관에서 수천 년의 역사를 보면서 참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과 삶에 좀 더 겸허해지는 나를 바라보게 된다.


62. 가족들과 함께 자유롭게, 시간의 제약 없이 비엔티엔의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저녁에는 여행자들이 많다는 곳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 또 새로운 분위기에서 여행자의 기분을 느껴보며 맥주를 한잔 한다. 지금의 이 느낌과 행복감을 오래 간직하자.


73. 그런데 뉴질랜드 세관 통관에 문제가 생겼다. 여행 동안 먹으려고 챙겨간 음식물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아 세관에 지적을 당한 것이었다.


77. 한 번은 캠핑장에서 우리 옆 차에 주차해놓은 미국인 노부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하기도 했다. 그 노부부는 한 달 넘게 뉴질랜드를 캠프 밴으로 여행 중이라고 했다. 아마도 젊은 시절을 열심히 살며 또 사랑했을 것이고 지금은 인생의 황혼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여러 세상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여향을 떠나는 모습이 멋지다.


102. 인도의 기차는 늘 연착을 밥 먹듯이 한다. 이놈의 기차는 가다 서다, 가다 서다 급할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면서 무얼 그리 바쁘게 살아가느냐고 우리들에게 무언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103. "그런가? 넌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 자리를 너의 자리라고 주장하는가? 이 자린 네가 잠시 앉았다가 떠날 자리 아닌가? 넌 영원히 이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인가?"


128. 분명히 오르막이 다시 나올 것이니. 삶도 그러한가? 행복하다고 너무 기쁨에 겨워하지 말고 불행하다고 비관할 필요도 없듯이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뭐 그리 대단한 존재인가!


146. 네 사람이 간단히 먹었는데도 거의 100불이다. 러시아의 물가가 보통이 아니다.


150. 아이들은 춥다면서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사실 그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참 난감하고 힘든 순간이었다.


171. 고함을 치고 싶은 생각이 목까지 차 올랐으나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더 있으면 감정 컨트롤이 안될 것 같아 마시고 남은 보드카와 치즈 몇 조각을 가지고 1층 거실로 내려와 버렸다.


196. 시간은 새벽 1시다. 오 마이 갓! 밖으로 나가보니 호스텔 앞에서 세워놓은 우리 차의 운전사 쪽 유리창이 깨져 있고, 차 안에 있는 물건도 없어졌다.


234. 차를 가지고 다니는 여행은 운전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가다가 어느 순간 이렇게 아무 곳에서나 차를 세워 먹고 싶은 것을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어디에도 구속됨이 없이 여행할 수 있어 참 자유롭다.


238. 금전적이 출혈이 심하지만 오랜만에 하얀 시트의 침대에서 잠을 자니 기분은 좋다.


248. 사실 돈을 따면 더 안 좋은 법이다. 오히려 잃은 것이 아이들 교육에 더 도움이 되어 잘 되었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276. 여기서 무서워 포기하면 운전에 대해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어 다시 기회를 줘 본다. 충격을 극복하는 것은 다시 도번을 해보는 것이다.


294. 인생은 여행객과 같은가 보다. 우리가 있는 곳이 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영원할 것 같지만 언제인가 또 누군가에게 물려주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348. 포도주를 한잔 하니 기분이 편안해지면서 여러 생각들에 젖어든다.


353. 아이들도 어느덧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조금씩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359. "킬리만자로의 등반에 약이 세 가지 있는데 무엇인지 아니? 첫째가 물을 많이 마시고, 둘째는 많이 먹고, 그리고 마지막은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 거야. 그러면 문제없이 언젠가 정상까지 갈 수 있어."


395. 이런 이상한 친구가 있나 생각하며 기분이 많이 상하지만, 그러나 오늘 하루 관광을 원만히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참을 수밖에 없다.



이전 08화 단돈 삼만원 들고 떠난 219일간의 세계 무전여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