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둘과 떠난 아빠의 세계여행
마흔을 넘긴 아버지가 초등학생, 중학생 두 아들을 데리고 떠난 1년 간의 세계여행입니다. 우리나라 세계 여행하면 꼭 들어가는 인도, 아프리카, 남미 3종 세트도 포함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요즘 여행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유럽이나 미국에 대한 내용도 조금 들어 있어서 구석구석 찾아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회적으로 한창인 40대 중반에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그만큼 본인의 삶에 자신감이 있었겠구나 하는 존경을 넘어 경외심마저도 듭니다. 무작정 지금의 삶을 정리하고 도망친 것 같은 여행이 아니어서 더 좋았습니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쉽지 않은 생전 처음 딛는 땅에서 두 아들을 챙겨가면서 하는 여행이라뇨. 얼마 전에 읽었던 필리핀 사장님의 글처럼 몇 년에 걸쳐 띄엄띄엄 짤막짤막하게 다녀온 여행이 아니라, 어린이들을 데리고 배낭여행이라니, 조금 비현실적이기도 했습니다.
그리 두꺼운 책은 아니지만 아들들이 나중에 읽었을 때 이해할 수 있도록, 여행지를 처음 가보는 사람 수준으로 기초지식이 없더라도 머릿속에 그곳을 그려볼 수 있도록 다양한 설명이 잘 녹아 있습니다. 유럽에서의 여정을 다루기 전에 유럽의 역사를 관통하는 로마와 크리스트교를 먼저 설명해준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오스트리아 잘츠브루크 여행에 앞서 어린아이들과 함께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를 봤다는 대목에서는, '이 분, 진짜 여행 고수이시구나', '그냥 놀러 다니는 여행이 아니고, 진짜 진지한 배움과 경험의 장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공기 조종사를 꿈꾸는 큰 아이를 위해 나라별 항공기 박물관을 찾아가고, 어떤 지역을 가더라도 사전에 아버지가 공부를 하고 아들들에게 설명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제대로 된 여행과 공부가 되는 여행을 볼 수 있었습니다.
책은 잘 읽히는 문어체가 아니라 두 아들에게 다시 여행을 되짚어 주는 것처럼 문어체로 쓰여있습니다. 아무래도 정제된 글 보다 눈에 잘 들어오지는 않죠. 그래도 다양한 참고자료, 사진들이 맥락에 잘 맞게 들어가 있고 중간중간 정리도 잘 되어 있어서 읽어 내려가는데 걸림돌은 많이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두 아들에게 이야기하듯이 적혀 있어서 그런지, '이 책이 수십수백 년이 흘러 읽힌다면, 키케로 의무론(그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나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같이 보이지는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혹시 이분께서 쓰신 다른 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아들에게 해주는 이야기 말고, 이 이야기를 준비했던 과정이나 정보, 그리고 소감이 담긴 '본인'에 대한 글이 있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 말고 '나'의 이야기도 궁금한 여행이었거든요. 우산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비와 바람과 햇살을 막아주는 존재이지만, 그 우산 자체는 그 변화무쌍한 하늘을 바라보면서 세상과 직접 맞닿아 싸우는 존재이니 말입니다. 우산 아래 이야기 말고, 그 우산 위의 이야기도 궁금하네요.
여행이 진행된 시간과 삼부자의 발길을 따라 책이 진행됩니다. 아무래도 여행 초반의 기억이 더 생생하고, 파이팅도 넘쳤겠죠. 여행 초반의 아시아와 유럽에 비해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아프리카, 아메리카에서의 글은 조금 디테일이 떨어지고 분량도 줄어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인 혼자서 세 사람 분의 여행을 해 내려면 뒤로 갈수록 처음 같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죠. 개인적으로는 요즘 뻔한 남미와 아프리카 오지 여행기에 조금 지쳐있어서, 유럽 여행을 조금 세세하게 다룬 이 책이 오히려 더 읽을거리가 많았습니다.
아이들을 두고 있는 분들에게 좋은 책일 것입니다. 혹시 피곤에 지쳐 주말이면 TV 앞 소파에서 시체처럼 누워있다거나, 아이들과 공감할 거리가 점점 더 없어진다거나 하면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대로 부모님과 이런 공감대를 만들 기회가 없던 사람들에게도 좋은 간접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가족의 형태만큼이나 다양한 부모님의 형태가 있을 테니까요. 모두가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해볼 수는 없습니다. 용기도 필요하고, 능력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책 중간에서도 한번 언급된 것처럼, 우리는 '글'과 '책'이 있어서, 저렴하게, 손쉽게 다양한 경험을 간접적으로 해볼 수 있습니다. 직접 경험이 물론 경험의 질과 양적인 면에서 훨씬 좋겠지만, 그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이렇게 간접 경험해 볼 수 있는 것도 문명의 혜택인 것이죠.
그나저나 배낭여행 가운데 중간중간 두 아들을 데리고 이렇게 골프를 즐길 수도 있다니 솔깃한 정보였습니다. 이 부분은 좀 더 알아봐야겠네요.
6. 그런 어른들의 시선이 주입되기 전에,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을 낯설어하고 불편해하지 않고 호기심으로 바라봅니다.
33. 그건 바로 필요하거나 원하는 것이 있다면 일단 얘기하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 및 선입견과 '안 될 거야'라는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돌아서는 경우들이 아주 많이 있단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미 너희에게 책으로도 알려준 랜드 포시의 <마지막 강의>가 좋은 예가 될 것 같구나.
34. '밑져야 본전이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하고 싶은 것을 요청하거나 가능성을 물어보는 것은 항상 남는 장사라는 생각을 품었으면 좋겠어. 일단 물어보고 요청해라!
60. 지금은 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이지만, 그 당시 타지마할을 지으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의 땀, 노력, 희생이 필요했을까 생각하니 또 다른 슬픔이 밀려오는구나. 세상의 모든 것에는 항상 양쪽 면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크게 느끼는 순간이야.
67. 가끔은 최고의 경치나 위치를 위해 기꺼이 값을 지불해라. 우리는 항상 최고로 살 수도 없고 항상 최하로 살아서도 안된다.
74. 이 모든 원인은 말라리야 약 복용 때문인 것 같아. 이 약이 어떤 사람의 간에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데, 이로 인해 간이 피곤하고 힘드니 아빠의 모든 몸의 균형이 깨져서 이렇게 힘들었던 게 아닐까 싶어.
84. 자연도 그렇지만 우리 인생도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데, 특히 내리막일 때 더 조심히 잘 보내야 편안한 삶을 보낼 수가 있단다.
90. 패러글라이딩의 첫 경험을 훌륭히 잘 마치고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애마(오토바이)를 타고 포카라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히말라야 골프장으로 향했어.
104. 무언인가를 적극적으로 하려고 하는 것은 아주 좋은 태도인 것만은 확실해. 하지만 그와 더불어서 새로운 것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하는 법과 규칙을 배워서 연습하는 것이 중요하단다.
110.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알버트 아인슈타인)
118. 걱정되고 불가능처럼 보이지만 한 걸음부터 시작하면 이렇게 목표지점에 이를 수 있어.
129. 불과 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발레와 오페라를 거의 매일 즐길 수 있는 타슈켄트 시민이 부러운 것은 아빠만의 생각은 아니겠지?
139. 여행은 준비하는 만큼 아는 만큼 볼 수 있고 즐길 수 있다는 말을 알자? 그 즐거움을 위해서는 항상 한 시간 정도는 역사 공부에 투자할 가치가 있으니, 기분 좋은 마음으로 꾸준하게 함께 하기를 바라.
142. 살아가면서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낭비하지 않고 잘 아껴서 쓰는 것 또한 아주 중요하단다.
143. 우리의 이번 유럽 여행은 캠핑이 주제인 만큼 미리 많은 것을 준비할 필요가 있어. 캠핑카는 비싸기도 하고 이동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일반 자동차를 리스하여 승차감과 이동의 이점을 충족하기로 했지.
145. 사고 후에 알아보니 파리 북쪽 18 지구 주변에서 외국인 관광객의 차를 고장 낸 후 배낭 등 소지품을 뺏는 금전적, 신체적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된다고 하는구나.
151. 산책은 가끔 아무 할 일 없이 편하게 걷거나 앉아서 자연을 숨 쉬고 사람들도 보면서 우리들 자신도 천천히 되돌아보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의미도 되새겨 볼 수 있는 시간이란다.
157. 작지만 소중한 이런 시간은 어떤 것보다 소중하고 힘이 강하니 꼭 잘 활용하기 바란다. 그중 가장 일반적이고 쉬운 것은 책을 읽는 것이란다. 좋아하는 책은 항상 가까이에 두거나 가방에 잘 챙기고 다니면 소중한 자투리 시간을 값지게 보낼 수 있지.
170. 고흐가 어렵게 살았지만 그나마 그림 그리며 삶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동생인 테오 덕분이란다.
180. 아빠가 만약 너희들처럼 어린 시절에 다양한 박물관들을 경험했다면, 지금쯤 또 다른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몰라.
186. 오늘 미라벨 궁전과 정원을 둘러보기 위해 미리 어제저녁 텐트 안에서 도레미 송으로 유명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봤었지.
201. 특히 거울의 방은 마리아 테레지아를 위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6살 때 연주한 것으로도 유명하단다.
218. 그나마 독일은 지속적으로 여러 총리들이 나서서 나치의 만행과 유대인 학살에 대해 국제적인 사죄를 하며 잘못된 역사를 깊이 반성하고 부끄러워하고 있고, 동시에 그때 당시 가담했던 나치 친위대원들을 수색하여 90이 넘은 사람도 예외 없이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등 진정성 있는 사죄와 후속 조치를 하고 있어.
228. 그런데 얘들아, 가끔은 즉흥적으로 살아 봐야지 만이 또 다른 즐거움과 가슴 뜀을 느껴 볼 수 있단다. 가끔은 계획과 틀에서 벗어난 즉흥적인 것이 필요하단다.
260. 이름은 '나이로비 로열 골프장'. 오래되어 보이는 골프장인데, 확인해 보니 100년도 넘는 전통 있는 골프장이라고 해.
271. "Haraka haraka haina baraka, pole pole ni mwendo." 서두르는 것에는 축복이 없고, 천천히 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속도라는 의미야. 이제까지 아빠가 살아오면서 추구한 삶과는 반대로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더구나.
279. 찬형이 너는 정상을 가고 싶은 마음에 하산한다고 하니 정상까지 올라가자고 울먹였지. 잘 이해시키고 10년이나 12년 후에 다시 꼭 오기로 하고, 결국 우리는 천천히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어. 2시간 넘게 올라온 거리를 20분에 내려가니 허탈하더구나.
314. 특히 너희가 성인이 되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업무와 인간관계에서 힘든 경험을 하게 되면, 공부는 쉽고 행복한 것이라는 것을 느낄 거란다.
320. 오랜만에 뜨거운 물에 편하게 온천을 즐긴 다음에는 경치를 구경하러 기대하던 스프링스 골프장으로 향했지.
335.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어. 이솝 우화의 여우가 그랬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포도를 따 먹어 보려고 애쓴 후에 신 포도일 거라고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지. 만약 해 보지도 않고 처음부터 '신 포도일 거야'라고 포기한다면 결국에는 그것이 습관이 되어 일상생활에서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을 수가 있단다. 어떤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면 힘들어하고 자책하는 순간은 최대한 줄이고 해결책부터 빨리 찾은 후 잊어버리면 되고, 대신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하지 않도록 준비하고 습관화하는 노력이 필요해. 그리고 어떤 힘든 일이 발생했을 때는 남의 탓을 하기보다는 우리들 스스로 책임을 느끼고 주도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단다.
340. 아들아, 날씨가 흐리다고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말아라. 날씨가 하루 종일 지속되는 경우는 거의 없단다. 그리고 아침에 특히 비가 오면 반드시 개기 마련이란다. 태양은 언제든지 다시 나타나니 차분하게 기다리면 될 거야. 우리들의 인생도 날씨와 같단다.
357. 아들아, 책은 항상 가까이해야 한단다. 실제로 많은 경험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경험을 할 수 없는 만큼 우리는 책을 통해서 그 부족한 경험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