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게 적어 내려간 '응답하라 19XX'
이번 달에 읽은 책 중에서 두 번째로 읽은 소설입니다. 코로나가 한창이기는 하지만 5월의 햇살은 창가에서 책 읽기에 참 좋기는 합니다. 정보가 가득한 책이나, 동기부여를 잔뜩 해주는 에너지 넘치는 글도 좋지만, 이런 시기에는 머리보다는 가슴을 두드리는 글을 읽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사실 소설가 분들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주말이나 평일 짬을 조금 내서 취미로 탐독하는 자칭 '주말 독자', '주말 독서가'로서, 바쁠 때는 적게 한 달에 한두권, 많게는 한주에 한두권 정도 읽는 수준이기 때문에, 한 분야를 연구하듯이 추적해가면서 읽기보다는 다양한 분야에 집히는 대로 읽다 보니 소설을 읽을 기회도 많지 않고, 더욱이 소설가 분들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도 않겠죠.
이 글은 '55년생 전주에서 태어나고 '78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문단에 등단하신 '양귀자' 작가님의 책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책을 읽을 때 내용만 따라가기 급급했는데, 언제부턴가 어떤 사람이 이런 글을 적었을까? 그의 인생에 있어 어떤 부분이 이런 글을 적게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책 목차를 훑어보기 전에 좌측 날개에 적혀있는 저자의 간략한 정보를 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이 글은 98년도에 쓰인 글입니다. 98년이면 저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무렵이었고, 55년생인 작가님께서는 우리 부모님 뻘 정도 되는 연배이시니, 고교시절 부모님의 젊은 날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따라가 봅니다. 핸드폰이라는 것이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기도 했던 시절. 고층 아파트보다는 시멘트로 포장된 작은 마당이 있는 단층 주택이 많던 시절. 그때쯤으로 머릿속을 돌려놓고 이야기를 좇아봅니다.
제목 그대로 이 이야기는 삶의 모순을 다루고 있습니다. 호수가처럼 안정적인 삶 속에 폭 빠져있는 한 사람은 지루함, 권태함 속에서 역동적인 삶을 갈구하고,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한가운데와 같이 삶의 역경과 기쁨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가는 한 사람은 안정적인 삶을 갈망합니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쌍둥이로 등장합니다. 어머니와 이모는 둘 다 중매로 결혼했지만, 일란성쌍둥이인 둘의 인생은 정 반대방향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쌍둥이라는 설정을 통해 극명하게 이를 보여주는 설정이 아주 매력적이었습니다. 이를 직접 그들의 시선을 통해 이야기하기보다는 딸의 입장에서 관찰하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며 그 느낌을 전하는 방식이 참 좋았습니다. 다소 냉소적이기도 하고, 그 때문에 더 객관적이기도 하고, 보고 느낀 점을을 자신에 삶에 투영하기도 하고, 전개 방식이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같은 얼굴을 갖고 있지만, 정 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와 이모를 저울질하듯이, 주인공은 이모부 같은 남자와 아버지 같은 남자, 정해진 시간에 계획대로 움직이는 안정적이고 착실한 남자와 삶을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남자 사이에서 누구와 결혼을 선택해야 할지 갈등하는 부분이 작품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세 번째 시즌까지 인기리에 방영을 마쳤던 TV 드라마 '응답하라'시리즈를 보는 것 같달까요.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도 여주인공의 남편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궁금증을 자아내면서 마지막화까지 긴장감을 더해갔었는데, 그 드라마보다 10년도 먼저 씌어내려 졌던 이 소설에서 같은 구성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읽어 내려가면서 '혹시 결론이 안 나오는 것 아니야?'라는 의심을 품었었는데, 열린 결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제 취향에서, 다행히 결말이 납득할만한 논리적 전개와 함께 정리되어서 뒤끝도 깨끗했습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이런 고민은 계속될 것입니다. 안정과 변화, 지루함과 새로움, 다양한 가치들이 충돌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주식투자만 하더라도 안정적인 배당을 보장하는 우량주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소 불안하지만 저평가된 회사를 찾거나, 막 신기술을 가지고 장에 뛰어든 기업을 찾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밝고 행복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만, 삶이라는 것이 항상 환하게 펼쳐져 있지는 않기에, 이런 글을 통해 타인의 삶과 생각을 엿보는 기회도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찾고 인정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해지는 요즘의 시기에 이런 간접경험은 더 소중했다고 생각합니다.
11. 삶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씹을 줄만 알았지 즐기는 법은 전혀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에피소드란 맹랑한 것이 아니라 명랑한 것임에도.
20. 인생은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 이것이 사춘기의 내가 삶에 대해 내린 결론이었다.
21.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29. 심심하다는 것은 사람이 싱겁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일에 예외가 없어서 언제라도 예측이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51.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말을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표현으로 길게 하는 사람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말이었다. 그런 말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만이었다.
58.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고 조심 또 조심을 해도 그렇게 되지 않은 것처럼, 영원무궁토록 사랑하겠다고 아무리 굳은 결심을 해도 내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 것이야."
75. 아껴서 좋은 것은 돈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돈보다 더 아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이었다.
108. 저 웃음. 그는 모든 말과 말 사이를, 모든 행동과 행동 사이를 언제나 웃음으로 연결 짓는다. 마치 수채화 붓으로 연푸른 선 하나를 짧게 긋듯이 씨익.
124.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잘 사는 이모가 가난한 어머니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두 사람의 내왕은 완전 불가능이다.
127. 그러나 이모부에 대한 내 생각은 다른 것이었다. 물론 그 시절이 지난 뒤에 홀로 정리한 생각이지만, 우리가 이모부를 비난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주리와 주혁이는 이모부의 자식들이었고, 나와 진모는 술주정뱅이의 자식들이었다. 이보무가 누구를 더 사랑했겠는가. 생선살 한 젓가락 우리에게 떼어주기를 아까워했던 이모부이지만 아버지의 사업자금으로 갈치 백 마리, 아니 천 마리, 만 마리 살만한 돈을 빌려주었고 결국 돌려받지 못했어도 별다른 불평을 하지 않았던 것을 어머니는 왜 잊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133. 가족 중 누구 하나의 불행이 너무 깊어버리면 어떤 행복도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없는 법이었다.
176. "옳으면서도 나쁘고, 나쁘면서도 옳은 것이 더 많은 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야."
182.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상처는 상처로밖에 위로할 수 없다.
193. "왜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았어요?" "있으면 찍으니까. 보지는 못하고 찍기만 하니까."
200. 달리기만 할 줄 알고 멈출 줄은 모르는 자동차는 아무 쓸모도 없는 물건이듯이, 인생도 그런 것이었다. 언젠가는 멈추기도 해야 하는 것이었다.
232. 한 번 더 강조하는 말이지만 이모부는 심심한 사람일지는 몰라도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돌출을 못 견뎌하고 파격을 혐오한다고 해서 비난받아야 한다는 근거가 어디 있는가.
247. 하나의 거짓말을 수도 없이 되풀이하다 보면 나중에는 어떤 것이 진실인지 모를 때가 있다.
248. 무엇이 육성이고 무엇이 가성인지 분별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면 분별을 할 필요가 어디 있으랴. 이제는 그렇게 사는 일만 남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