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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 Aug 07. 2021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

유명인사 남미 여행

 지금까지 읽었던 남미 여행기들은 다 보통사람들의 여행이었습니다. 일반인들의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할까요. 책 이전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삶이 책을 통해 유명세를 타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이 책은 정 반대입니다. 유명인사의 보통 페루 여행을 담고 있죠. 사회적 명망이 있는 분이어서 그런지 무모한 일반인들처럼 사전 지식이나 가이드 없이 유명한 이름만 따라 여행을 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고, 두리뭉실한 '남미'가 아닌 구체적인 '페루'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여행 같은 여행기를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물론 직업목록에 '작가'가 붙은 분이어서 그런지, 글을 화려하게 잘 쓰시고, 그만큼 좀 미화되거나 확대, 과장된 부분도 있어 보입니다.


 지금까지 봤던 남미, 페루 여행기는 그냥 스쳐 지나가면서 마추픽추 한번 들려보고, '날씨가 좋았다 아니다, 경치가 좋았다 아니다, 가는 길이 힘들었지만 나만 해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이 책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은 마추픽추를 다룬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페루인 친구와 함께 다녀온 마추픽추여서 그런지, 마치 마추픽추 골목 구석 하나하나를 같이 걷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당시를 묘사하는 것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것들, 현지인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들을 차근차근 다루고 있죠. 마추픽추에서 쿠스코로 돌아오는 특급열차를 다룬 부분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절경을 담은 오지 특급열차에서 맞는 레스토랑식 식사와 무제한 칵테일, 맥주, 와인이라니 말이죠.


 남미, 페루, 이런 단어를 보고 있자면 마추픽추, 나스카 같은 단어만 동동 떠다니는 글을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그곳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가 더 궁금하죠. 그리고 무조건 힘들고 험난하게 오가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면 가고 싶어지지 않기 때문이죠. 손미나 씨 책에서는 현실적인 이동과 숙박 등을 살펴볼 수 있어서 생각보다 '한번 가볼 만하겠는데'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다들 고산병에 대해 말만 하지, 사실 이 책에서처럼 호텔 산소통 룸서비스까지 구체적으로 다룬 경험은 볼 수 없었으니까요.


 사실 공부하지 않고, 연구하지 않는 여행자의 글에는 조금 지친 것이 사실입니다. 책은커녕, 위키피디아에 나와있는 정보도 모르고, 인터넷 검색조차 안 해본 것 같은 사전 지식으로 '그냥 나는 거기 유명한 곳에 다녀왔고,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단한 고생을 했다'라고 하는 글들은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왜 여행을 떠나는 것만큼이나 호기심과 관심이 중요한지를 보여주어서 좋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남들이 좋다고 하는 여행지는 크게 관심이 없는 편입니다. 사실 그렇게 가서는 남는 게 없거든요. 대표적으로는 뉴욕이 그랬습니다. 한 달 좀 모자르게 있었지만, 그냥 남들 다 다녀오는 유명한 도시에 다녀왔다는 것 말고 딱히 남는 것이 없었던 곳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부 없이 돌아만 다니는 남미 여행기를 보면서, '굳이 남미는 갈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51%였는데, 이 책을 보니 조금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페루로 떠난다고 해서 저자 손미나 씨가 이야기한 것처럼 엄청난 영적 경험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쿠스코로 떠나는 특급열차에서 맥주 한 잔 하고 싶네요. 물론 고산병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골골대다가만 올 수도 있지만요.




7. 영국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공항에서 일주일을'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적었다. '이상적인 여행사가 존재한다면 우리에게 어디를 가고 싶으냐고 묻기보다는 우리 삶에 어떤 변화가 필요하냐고 물어볼 텐데.'


9. 간절히 소망하는 일은 이루어진다는 믿음으로 '페루에 가고 싶다, 언젠가는 페루에 갈 것이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더니 정말로 기회가 찾아왔다.


14. 게다가 이번엔 무려 네 종류의 주사가 한꺼번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A형 간염, 장티푸스, 파상풍, 그리고 황열병.


30. 때로는 관광 명소보다 더 강력한 '머무름'의 이유를 제공하는 것이 있는 법이다. 예를 들면 보고 싶은 사람의 존재 같은 것.


36. 과연 세계적인 미식 국가 아니랄까 봐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들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53. 언젠가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영상 제작자이자 동물학자인 루시 쿡이 '너무 바쁘게 살아가는 두발 영장류인 인간은 나무늘보의 에너지 절약형 삶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라고 주장했던 것이 떠올랐다.


62. 충분히 상상 가능하겠지만 정글 탐험은 어느 누구도 가이드 없이 혼자 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69. 높은 습도 때문에 온종일 수증기 속을 거니는 것만 같았는데, 설상가상으로 침대보마저 어찌나 축축한지 꽉 짜면 금세 물이 뚝뚝 떨어질 태세였다.


92. 어디에서 살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똑 같아요. 중요한 건 가슴에, 그리고 우리의 영혼에 있죠. 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요.


114. 고산병 예방을 위한 첫 번째 철칙이 바로 위를 최대한 비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135. 쿠스코로 돌아가는 길은 매우 유쾌했다. 우리가 선택한 교통 수단은 바로 하이럼 빙엄 특급열차. (중략) 차랑고와 안타라 같은 안데스의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들, 서로 다른 국적의 여행자들, 무제한으로 서빙되는 피스코 사워와 맥주. (중략) 자리로 돌아오자 이번엔 끝도 없이 음식과 와인 세례가 이어졌다.


140. 되도록 소로치 필 같은 건 먹지 마. 효과가 빠른 만큼 부작용이 심한 약이야. 그 대신 따뜻한 코카 차 한 잔 마시고 자.


165. 하긴 마추픽추에 갔을 때도 현지인 가이드가 설명하는 내용이 일본에서 가져온 책자 내용과 다르면 가이드가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그녀의 고집과 자국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174. 그러나 상술을 앞세우는 여행사를 통하지 않으면 섬사람의 집에서 민박을 해야 하는데, 그건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184. "푸노에 오신 외국인 여행객들에겐 보통 하루에 두 번 정도 산소통 서비스를 이용하시길 권합니다."


216. "바예스타스 섬은 페루가 자랑하는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수많은 종류의 새와 바다사자 등이 서식하고 있어서 '가난한 자의 갈라파고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지요."


227. 나스카 라인은 바로 그 시기에 리마 남동쪽 사막 지역에 생성된 거대한 유적으로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가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다.


249. 여행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마추픽추보다  인기가 많다는 바예 라도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성스러운 계곡' 정도가 된다.


260. 치차는 우리의 막걸리처럼 전통적인 방식으로 발효시킨 서민들의 술로 옥수수를 주원료로 한다. 치차를 마시는 장소를 치체리아라고 하는데, 간판 대신 붉은 천을 둘둘 말아 만든 봉을 내걸고 있다.


268. 여기선 배고프지 않을 만큼 양식만 있으면 싸울 일도, 욕심을 부릴 일도,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도둑질을 할 일도 없어요. 그저 산신들에게 감사하면서 인간의 숙명대로 주어진 현실을 살아낼 뿐이죠.


300. 아직도 많은 노인들이 사진을 찍거나 찍히면 영혼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믿기 때문에 사진을 싫어한다. 그래서 가끔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얼굴을 가리거나 카메라를 보지 않는데, 이때 계속 사진을 찍는 것은 무례한 행위이니 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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