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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 Aug 31. 2021

유럽을 여행하는 아주 특별한 방법

히치하이킹으로 유럽의 민낯을 만나다

 '아주 특별한', '민낯' 이런 자극적인 단어들은 사실 책을 고를 때 피해야 하는 단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자그마한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거나, 사무실에 마련된 공용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뒤적거리면서 읽을거리를 찾는 취미형 주말 독서가는 그냥 찾고 있는 장르만 비슷하면 일단 읽기 시작하죠.


 자극적인 제목과는 다르게 '아주 특별한' 것도 잘 모르겠고, 지역마다 며칠씩 스쳐 지나간 여행에서 '민낯'을 볼 수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히치하이킹'과 '카우치서핑'이라는 '무전여행' 시스템으로 유럽여행을 다녔다는 것 자체는 어찌 되었건 일반적이지 않은 경험이기는 합니다. 여행 관련 책이 쏟아져 나오는 속에서도 이런 콘셉트의 책은 사실 아무나 쏟아내고 싶어도 그러기 힘드니 말입니다.



 그래도 전에 읽었었던 무전여행 책보다는 읽을거리가 아주 많은 편이었습니다. 나름 지역별로 문화나 사회적인 부분도 담고 있고, 그 지역의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 적잖이 포함되어 있더군요. 사진을 진지하게 찍으시는 분인지 포함된 사진들의 퀄리티가 괜찮습니다. 일부 사진과 구성은 전문 여행작가의 책 보다 더 나아보기도 합니다. 아마추어 작가들의 책을 보면 도무지 어디인지도 모르게 본인을 비롯한 사람들만 중간에 떡하니 꽉 차있는, 핸드폰으로 찍은 것 같은 저화질 사진이 글의 맥락과 무관하게 아무 데나 툭툭 박혀있곤 한데, 이 책의 사진들은 읽는데 방해가 되지도 않고, 해당 페이지의 텍스트와 함께 꽤나 그곳의 분위기를 잘 전해주고 있습니다.


 다만, 그래도 '먹고', '자고', '이동하는 것', 즉 '생존'을 먼저 해결해야 하는 무전여행의 특성상 여행의 깊이나 공감대, 스펙트럼이 그렇게 깊거나 넓지 않습니다. 매슬로우의 욕구 피라미드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1, 2단계의 먹고, 자고, 안전한 것에 대한 욕구가 해결이 되어야, 사회적이고 자아실현적인 그다음 단계의 욕구가 생기게 되는 것이니 말입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그날그날 먹고, 자고, 이동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깊어서인지 그 여행지를 사실 충분히 담고 있는 글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삶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글에 비해, 패기 넘치는 젊은 청춘의 무전여행 스토리는 사실 깊이가 없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죠.



 누가 들어도 알만한 직장을 그래도 몇 계절이 바뀔 때까지 버티고, 한 자리해보고 나서 박차고 나왔다던가, 남들은 안정적이 뻔한 일이라고 경시할지 몰라도 가족과 사회를 위해서 맡겨진 일을 꿋꿋하게 몇십 년간 해내시고 명예롭게 정년퇴직을 했다던가 하는 노력 없이 무작정 떠나는 여행은 사실 그 목적이 무언지 공감이 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여행을 위한 여행인지, 아니면 그다음 무엇을 위한 여행인지 말이죠. 사실 꼭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준비한다는 식으로 빡빡하게 살 필요도 없지만, 책까지 써가면서 기록을 남긴다고 하는 것은 그래도 무언가 메시지가 있는 여정이었다는 것 아닐까요.



 책에 그 지역에 대한 내용은 많지 않습니다. 1인칭 시점에서 본인의 발걸음 순서대로 정리된 글이다 보니, 갔던 국가가 다음에 또 나오기도 합니다. 특정 지역에 대한 기억을 추억하고자, 아니면 정보를 얻고자 보기에는 건질만한 것들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 누군가 차의 옆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과정과 고민이 담겨 있고, 운 좋게 성사된 만남을 통해 얻게 된 그 사람들과의 추억들이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습니다. '여행'이 고플 때 보기 좋을 것 같은 글입니다. '유럽'이 필요할 때 보기에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겠고요.




11. 제가 느낀 좋은 삶은 행복의 가짓수를 늘리는 것입니다. 사진 한 장을 위한 기다림, 느긋하게 카페에 앉아있는 여유, 골목길에 선 길고양이에게 주는 눈길, 해질 무렵 조금씩 달라지는 하늘, 들어보지 않았던 밴드의 앨범, 관심 없던 분야의 책, 확인되지 않은 미지의 가능성을 조금씩 열어 삶의 범위를 넓혀 가는 것. 이와 비슷하게 좋은 사람이 되는 길 역시 감당해야 할, 책임져야 할 것의 범위를 넓히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41. 백수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무척이나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74. 어설픈 여행자의 눈에도 노숙하기 그만인 그곳을 터줏대감들이 놓칠 리 없었다.


88. 아를의 고흐, 엑상프로방스의 세잔 등 후 많은 화가들이 남프랑스의 빛과 색에 매혹되어 이곳에 머물며 그 따스함을 오래도록 즐겼다고 한다.


90. "이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죄가 아니야."


132. 독일인들의 수준 높은 질서의식은 아우토반에서도 볼 수 있었다. 1차선은 추월차로, 2차선은 주행차로, 3차선은 트럭 차로라는 기본적인 질서를 철저히 지켰다. 속도 무제한의 아우토반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그들의 몸에 밴 이 같은 질서 의식 때문이다.


148. 보트에서의 삶은 일반적인 집에서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중략) 아리의 집에 머무는 동안 나는 날이 좋으면 갑판에 누워 햇볕을 쬐고, 비가 올 땐 널어둔 빨래를 재빨리 걷고는 선실 소파에서 빈둥대며 시간을 보냈다.


151. "네덜란드의 모든 국민은 평등한 관경에서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종교 신념, 정치적 의견, 인종, 성별 등의 어떠한 배경에 따른 차별은 금지되어야 한다." 네덜란드의 헌법 제1조이다.


162. 대화를 이끌어 주는 건 현란한 말주변이 아니라 따뜻한 관심이다. 작은 배려를 놓치지 않는 것. 사소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것. 상대방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듣고 싶어 하는지 찾아내는 것.


198. 다만, 라벤스부뤼크가 그 비극을 진실 그대로 드러내고 기억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은 지금도 자신들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감추기에 급급하다.


214.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지형은 여러 언덕이 도심을 감싸고 있는 형상이다. (중략) 각각의 언덕들이 바라보고 있는 프라하는 제각기 다른 모습일 것이다.


217. 물건은 낡아도 생각만은 그렇지 않기를 기대했지만,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의 신선함을 사라진 것만 같다. 눈앞의 풍경이 이제는 너무도 익숙하게 느껴지고, 내일은 어떤 하루가 될지 쉽게 그림이 그려진다.


223. 또한 장기간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내가 차근차근 이룩한 것을 기꺼이 포기해야만 한다. 안정된 삶, 또 다른 기회, 그리고 나를 이루는 수많은 관계를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설 수 있다.


254. 저렴한 물가 덕분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대학에 다니는 크로아티아 학생이 상당히 많다고 했다.


290. (마케도니아) 손보다 더 큰 햄버거가 고작 한화 600원 정도라 가격에 한 번, 맛에 또 한 번 감탄하며 창밖을 내다보니 터키의 민속악기 바을라마를 연주하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302. 불가리아 전체 토지의 45퍼센트가량이 농지다. 그리고 토지의 시세가 매우 저렴하다. 루세까지 나를 태워준 토도르는 고향에 있는 자신의 집 역시 매우 저렴하다며, 넓은 마당이 딸린 1층짜리 집이 우리나라 돈으로 100만 원 정도라고 했다.


326. "히잡은 머리를 감싼 것이지, 생각을 감싼 것은 아니야. 히잡을 하고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 생각대로 살아갈 수 있어."


337. 꽤나 많은 수의 터키인들이 쿠르드인들과의 직접적인 소통 없이 그들은 거칠고 위험하다는 부정적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중략) 편견이라는 것은 실제가 아닌 내 스스로 쳐놓은 벽에서 비롯된 오해에서 출발하는 것임을 새삼 마음에 새겼다.


354. 역시 이런 놈은 상대방의 관심과 반응이 없으면 금세 흥미를 잃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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