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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 Sep 21. 2021

함께, 다시, 유럽

또 다른 어느 신혼부부의 1년 정도 세계여행

 국문과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했던 아내가 글을 쓰고, 프린랜서 사진작가 남편이 사진을 채워 넣고 글도 조금 보탠 책입니다. 코로나19 판데믹으로 인해 여행이라는 것에 사실상 많은 제약이 생긴 뒤로 여행과 관련된 책을 많이 찾아보면서 간접경험, 대리만족 중에 있는데, 생각보다 젊은 나이에, 신혼 초에 하던 일을 정리하고 1년 이상 세계여행을 다녀온 부부들이 많다는 것이 조금 놀랍기는 합니다.



 이 책은 2015년에 발간된 책입니다. 그러면 여행은 그보다도 몇 년 전, 적어도 한두해 전에 이루어졌었겠죠. 올해 봤던 부부 세계여행 서적 <잠시 멈춤, 세계여행>도 2015년 그때 정도의 책이고, 에어비앤비로 떠나는 부부 세계여행인 <한 달에 한 도시>도 2014년 책인 것을 보면, 그때 당시 이런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유행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00년도 키워드"라고 구글에 검색을 좀 해보니 2013~15년도 즈음의 트렌딩 키워드에  '힐링', '스웨그' 등이 반복적으로 들어가 있는 것을 보니, 소위 요즘 말로 '여행 플렉스'가 한창 달아오르던 시기가 아니었나 되짚어봅니다.



 감성적인 느낌의 표지와는 다르게, 간접경험을 바라면서 유럽 골목길을 한 발자국씩 따라가는 기분을 기대했다면 그렇게 만족스러운 글이 아닐 수 있습니다. 같은 지역에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 다르게 느끼는 것을 '적어보고자' 해서 시작된 책이기 때문이죠. 청자, 독자를 배려해서 쓰였다기보다, 본인들의 느낌에 집중한 책에 가깝습니다. 날짜가 적히지 않은, 맥락 없이 흩어져 있는 일기장을 페이지별로 끊어서 읽는 느낌이랄까요. 책장에 꽂아두고 하루에 두세 페이지짜리 에피소드 하나씩 보면 모를까, 시간을 내고 쭉 읽기에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널을 뛰는 기분입니다. 따라가기 조금 쉽지 않은 구성입니다.



 부부가 같이 자신의 입장을 담은 글을 섞어서 배치하는 것이 신선하기는 하지만 - 비슷한 구성의 다른 책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 몰입해서 읽기에는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뭔가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차라리 유용한 정보라도 좀 많이 들어있으면 어디 메모해 두고 도움이라도 될 것 같은데, 책 말미에 몇 페이지 말고는 정보도 그렇게 많이 담고 있지 않습니다. 여행서적이라고 부르기에는 내용이 조금 빈약하고, 에세이라고 부르기에도 감정적인 전달과 공감이 잘 되지 않습니다. 여행지에 대한 감상과 역사, 사회적 콘텐츠도 그냥 여행정보 서적 어딘가에서 '그렇다더라'는 정도를 넘지는 않습니다. 전반적으로는 '우린 그랬다'와 '남들은 그랬다더라' 정도 느낌입니다.


 최근에 본 다른 책들과의 큰 차이점은 '사진'입니다. 프리랜서 사진가인 남편의 역할이 컸겠지만, 담겨있는 사진의 퀄리티는 확연히 좋습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작가 아내와 사진가 남편의 스페인 여행 책이 인상적이었는데, '사랑한다면 스페인'에서의 사진은 동적인 분위기를 잘 담은 것이 좋았면, 이번에 읽은 '다시, 함께, 유럽'의 사진은 차분하고 정적인 느낌이 좋았습니다. 아쉬운 것은 잘 찍은 사진과 함께 내러티브가 같이 물처럼 흘러가면 좋았을 텐데, 아무리 좋은 사진이라도 사진과 글을 같은 맥락으로 흘러가지 않다 보니 사진을 보면 글이 끊기고, 글을 읽고 있자면 사진이 큰 의미가 없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순서나 맥락 없이 중구난방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글의 순서는 잘 찍은 사진에 따라 억지로 글을 배치한 게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게 합니다.



 거실 한편이나, 소파 옆, 사무실 책상 같은데 두고 한 에피소드 씩 끊어가며 5분 정도 읽기에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표지도 요즘 '갬성'대로 잘 빠졌으니 꽂아두기에 인테리어적인 느낌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여행'에 도움이 된다거나, '여행'의 느낌을 받기는 좀 어려웠습니다. 상당 지역이 분명히 한두 번 다녀왔던 곳인데도 불구하고, 이 글을 통해서 그곳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죠. 이 작가분들께서는 '그곳에서의 여행'을 적어 내려 가셨다기보다는, '그때의 자신들'을 적으신 것 같습니다. 표지에 '다시', '함께'라는 단어에 이끌려 펼친 책이었는데, 그 '다시'와 '함께'가 제가 생각했던 의미와는 다소 달랐던 것 같습니다.




14. 모나코를 떠올리면서 N양은 아름다은 로맨스를 담고 있는 사랑의 도시로, T군은 어릴 적 카레이서의 꿈을 실현시켜주었던 희망의 도시로 기억을 하고 있었다.


21. 돈이 아니라 꿈이 많은 부부였던 겁니다. 저희는 그걸 가치관의 우선순위라고도 말합니다.


44. 그동안 손에 쥔 책이 밝혀주는 길이 너무나 확고해서 수천수만 이나 되는 샛길들을 그냥 지나쳤다는 사시리 안타까울 뿐이었다.


55. 오랜 기간 여행을 하다 보면 신이 내린 선물은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는 이들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래서 멋진 자연 앞에선 늘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을 엿보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57. 세상에 정말 존재할까 싶은 상상 속 하얀 동화마을이 잠시 후 내 눈앞에 펼쳐졌다. 아니, 실제 네르하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65. 누군가는 많은 것을 보고 싶어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아 여행을 떠난다. 누군가는 어떤 이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는 어떤 이를 잊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83. 난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천성이 게으른 탓에 몸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거니와 다시 내려와야 할 꼭대기를 향해 숨 가쁘게 올라가야 하는 것도 썩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107. 말 그대로 사방이 푸른 세상이었다. (중략) 단언컨대 지구 상에서 천국의 휴양지를 가장 닮은 곳을 꼽으라면 누가 뭐래도 바로 카프리 섬이다. 


127. 방금 전 떠나온 프랑스의 니스가 원색의 젊음으로 통통 튀는 20대의 꿈꾸는 하룻밤 같은 로맨스를 실현시켜 줄 곳이라면, 우아한 모나코는 사랑에 대해 뭘 좀 아는 30대에게 잘 어울리는 여행지였다.


174. 그러니까 우리가 하는 걱정의 90퍼센트 이상은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라는 말처럼,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 걸까?' 했던 생각은 완전한 기우였다. 갈까 말까 고민될 땐 가는 게 정답이다.


179. 유럽의 어느 도시엔들 문화유산이 없겠냐만은 비엔나 만 한 곳이 있을까? (중략) 셋째,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다. 부담 없는 물가. 유럽 여행에서 가장 겁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물가다.


210. 사실 차 한 대로 모두가 함께 이동해야만 하는 이번 여행에선 처음부터 서로에 대한 배려와 양보가 절실히 필요했던 게 사실이다. (중략) 그저 시간이 흐를수록 누군가의 양보가 희생이 되고, 서로에 대한 배려는 불편한 눈치 보기로 전락했다고나 할까?


227. 하지만 모든 것이 느리고 평화로운 이곳에서 만큼은 우리만 발발거리며 돌아다니는, 천국에 적응하지 못한 낯선 이방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264. 카사바트요에서 직접 마주하며 느낀 가우디의 천재성에 먹먹해진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음으로 향한 곳은 '사그라다 파밀리아'였다. (중략) 아름드리나무를 모티브로 한 아름드리 기둥들 사이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투영된 찬란한 오후의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성당 안에서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려온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진짜 숲 속을 거니는 느낌이었으니까.


293. 한스와의 대화에서 난 우리의 응원 문화가 떠올랐다. 이기고 지는 것, 무조건 그 결과가 중요하기에 탈락이 확정된 상태에서 자국을 응원한다는 건 불필요한 사치였다.


338. 루체른 근처의 헛간 숙소는 단어 그대로 진짜 헛간을 개조한 도미토리다. (중략) 침대도 없이 볏짚 위에 그대로 몸을 누인다.


349.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년 동안 쓸모없는 것들은 깨끗이 정리하고 떠날 필요가 있었습니다. (중략) 또한 안 입는 옷과 가방, 신발 하나까지 돈 되는 건 모두 벼룩시장에 내놓았어요.


354. 중간 크기 정도의 밀폐 용기는 여행 시 매우 유용합니다. 각종 양념을 담아 다니거나 달걀 같이 깨지거나 짓무르기 쉬운 재료 또는 먹다가 남은 음식을 보관할 수도 있고, 뚜껑을 이용해 요리 시 도마로 사용할 수도 있어요. (중략) 라면 2개 정도 끓일 수 있는 미니 전기 쿠커 또한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363. 각 도시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인포메이션 센터였습니다.


364. 사람들은 저마다 여행 스타일과 취향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누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366. 저희 같은 가난한 여행자가 유럽이나 북미에서 렌터카 여행이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렌트 비용이 상대적으로 무척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367. (리스) 새 차가 지급되기 때문에 여행 기간 동안 깨끗하고 쾌적한 최신 모델의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383. 부부가 함께하는 여행, 그리고 인생에서의 중요한 한 가지 요소가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론 싸울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살면서 점점 눈에 띄는 상대방의 단점들, 그게 내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방을 바꾸려 한다면 그는 이미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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