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그곳
여행 서적을 읽으면 작가 자신의 여행에서 한 발자국 물러서서 '그곳'을 담은 책이 있고,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시선에서 '그때'를 담은 책이 있습니다. 무작정 떠나고 싶어서 빡빡한 일정으로 또는 정처 없이 떠난 사람들의 글을 보면 추억과 경험만 있을 뿐, 그곳에 대한 콘텐츠는 거의 없습니다. 이 책은 손미나 여행연구소 과정을 수료하신 분의 프로를 지향하는 여행 글이어서 그런지 본인이 그 지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착만큼의 콘텐츠를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보고 '크로아티아'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만큼의 정보들은 실려있지 않습니다. 여전히 대부분이 '그때의 날씨', '그때 만났던 사람들', '그때 겪었던 이야기'로 귀결됩니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그곳'을 담는 것을 지향하고 있지만, 아직은 '그때'를 추억하는데 머물러 있는 책 같습니다.
이런저런 여행기들을 적잖게 읽다 보니, 나름의 기준이 생겼습니다. '그때의 에피소드'로 시작해서 '그곳의 역사, 문화, 사회, 경제 등'으로 자연스레 넘어가면 '프로', 그 역순은 '프로를 지향하는 아마추어', 그냥 콘텐츠 없이 본인이 쓰고 싶은 순간순간의 조각들을 엮은 글은 '자신의 세계를 갖고 계신 분' 정도로 분류해서 글을 읽기 시작하는 것이죠.
일단 내용을 떠나, 다양한 부분에서 독자에 대한 배려하고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크로아티아 여행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궁금해할 만한 정보들을 구석구석 잘 배치하고 있습니다. 에세이를 곁들인 여행정보 서적 같달까요. 크로아티아에 가져가서 이동 중에 보아도 좋을 것 같은 책입니다. 사진이 많다 보니 그만큼 책 내용이 많지는 않지만, 가급적 맥락에 맞춰 사진을 넣으려고 노력한 것이 엿보이고, 사진들에도 지역이나 상황과 같은 설명이 곁들여져 있어 텍스트를 읽는데 방해가 되지 않아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 하나로 크로아티아 여행을 계획해 보겠다거나, 크로아티아 분위기를 물씬 느껴보겠다고 하는 것은 과한 욕심이 될 수 있습니다. 몇 차례 크로아티아 여행을 해본 분께서 본인의 경험을 잘 녹인 글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지역들을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씩 계셨던 것이 아니라 거의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정도만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죠. 우리로 치면 지방 중소도시들에서 1~2박씩 하면서 외국인이 한국 여행에 대해 적은 글 정도가 아닐까요. 적당한 가벼움을 먼저 깔아 두고 내 기대를 덜고 보면, 파란 표지만큼 시원시원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크로아티아를 무작정 동유럽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아드리아해 연안이라는 것이 머리에 박혀있지가 않았죠. 나중에 유럽여행을 간다면, 베네치아에서 배를 타고 이동해서 크로아티아 여행을 한번 시작해봐야겠다는 아이디어를 품을 수 있게 되어서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5. 크로아티아 역시 1990년대 초반까지 끔찍한 내전의 한가운데 있던 나라이다.
10. 수도 자그레브를 중심으로 한 내륙 지방은 대륙성 기후로 우리나라와 기후가 비슷하다. (중략) 이스트라 반도와 달마티아 지방 등 아드리아 해 연안은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엔 매우 덥고 건조하며 겨울에도 그다지 춥지 않다. 10월 초까지 해수욕을 할 수 있다.
28. 초여름은 온갖 베리류의 계절이었다. (중략) 특히 알이 빨갛다 못해 검붉은 체리는 한국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라 매일 사 먹었다.
34. 영어와 헝가리어에도 능통하고, 다른 무엇보다 손자뻘의 여행자와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젊은 감각! '아, 이 사람처럼 늙고 싶다.'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41. 우리나라 학생들이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듯이 인근의 유치원생, 초등학생들이 죄다 바라주딘으로 현장학습을 온 모양이었다.
56. 첫 번째, 청결할 것. 최악의 경우 숙소에 빈대가 있다면 여행 중에 괴로운 것은 물론이요, 여행하면서 갖고 다녔던 물건들을 모두 태워버려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89. 당일치기로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의 진면목을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1박이라도 할 것을 추천한다. 여유가 된다면 사흘 정도 숙박하면서 천천히 산책하듯이 다녀보자.
116. 포도주 하면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떠올리는데 크로아티아 역시 꽤나 질이 좋은 포도주 생산국이다.
120. 안타깝게도 포레치 주변에는 전망대 역할을 하는 언덕이 없고 가장 높은 곳은 에우프라시우스 성당의 종탑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134.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중략) 베네치아에서 포레치까지 페리로 2시간 30분이면 올 수 있다니!
199. 영화 피아니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살고 있던 유대인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실화를 근거로 만들어졌다.
227. 시장을 구경하고 왼쪽으로 빠지면 항구, 버스터미널, 기차역이 모여 있는 구역이고 오른쪽으로 빠지면 다시 리바 거리이다. 대리석으로 깔린 바닥이 반짝반짝 빛나는 리바 거리는 언제 걸어도 기분이 좋다.
253. 서울에서였다면 아침 11시부터 레몬 맥주를 들이켜는 호스텔 직원들을 보면서 근무 태만이라고 혀를 끌끌 찼을 텐데,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264. 한 번 더 오게 되어 참 다행이다. 다시 만난 흐바르 섬은 지구 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 틀림없었다.
269. "내가 하는 일은 내 배에 탄 사람들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일이지, 재미있으라고 하는 일이 아니란다."
327. 그런데 호수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난 조금 전 물에 손 한 번 담그는 것도 주저했는데. 국립공원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도 있기에 다가가 물어봤다. "여기 국립공원인데 수영해도 돼요?" "물론이죠!"
370. 아일랜드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말했다. '지상의 천국을 보고 싶다면 두브로브니크로 오라'고. 또 영국의 시인 바이런은 두보르브니크를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고 극찬했다.
373.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우선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에서 물가가 제일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