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인터뷰 모음집
여행을 다녀오지 않고 쓴 여행 서적입니다. 엊그제 이 책의 저자인 손미나 씨가 페루 여행을 다녀오고 쓰신 책을 보았었는데, 이 책은 그 이후에 여행을 좋아하는 유명인사들을 인터뷰한 다음 엮은 책입니다. 본인이 직접 경험한 여행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여행작가로서 다른 여행자들을 인터뷰하고 사람마다 다른 여행의 방법을 모아둔 책이라고 할까요. 같은 장소라고 하더라도, 누가, 언제, 왜 다녀왔는지에 따라 그 감상이 다 다를 것이고, 그 목적도 다 다를 것이기에 시도가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여행을 테마로 많은 프로그램을 제작한 나영석 PD부터, 같이 프로그램을 했던 '여행이라고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뮤지션' 윤상과 같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연예인부터, 취미로, 일로, 다양한 여행을 경험한 각 분야별로 한 획을 긋고 있는 인사들의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개그맨 김영철, 개그우먼 송은이 씨의 여행 에피소드는 이미 다양한 방송을 통해서 접했던 터이지만 이렇게 글로 또 만나니 새롭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인터뷰한 대부분의 분들이 본인이 직접 여행기를 쓴 적이 없기 때문에 이분들의 이야기를 접해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았습니다. 자기 이야기를, 특히 여행 이야기를 쓰겠다고 시작한 여행은 그 틀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한두 달 전에 읽었던 몇몇 부부들의 세계여행 이야기들은 나중에는 이 책을 통해서 경제활로를 어떻게든 풀어보려고 한 것이 너무 보였다고나 할까요. 사실 손미나 씨의 예전 여행기들도 그렇습니다. 꼭 '책을 쓴 여행기는 별로다', '상업적이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여기에 담긴 인터뷰들 속에서는 '누구에게 이야기해주려고 다녀온 여행이 아닌, 나만을 위한 여행'을 찾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훌쩍 어딘가 떠나고 싶을 때, 그렇지만 그럴 수 없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을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떤 여행을 하고 있을지 궁금할 때, 그럴 때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다녀온 특정 여행을 되짚어서 적당히 덜어내고, 적당히 덧붙인 이야기보다, 더 진솔하고, 더 울림이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22. 지금 이대로 안될 것 것 같고. 그래서 이걸 끊고 어딘가를 가야 할 것 같았는데 새해 첫날 뱉어놓은 말고 있고, 돌아보니 영혼이 고갈된 것 같고. 이럴 때 갈 곳은 하와이나 그런 곳이 아니라 인도라는 생각을 했어요.
31. 몸이 아플 때도 나중에 돌아보면 그때 그게 그거였구나 아는데, 당시에 바빠서 그냥 지나간다면 나중에 큰 병이 되잖아요.
32. 본질은 대부분의 경우 가려져 있어요. 으레 그럴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껍질을 벗겨내지 않으면 본질이 잘 보이지 않죠.
33. 인도 여행 중에 시타르 연주 같은 인도 음악만 듣고 다니다가, 인도 남부 고아라는 곳에 갔어요.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그곳은 70년대부터 히피들이 모이는 유명한 지역이라 서양문화가 꽤 많이 침투한 곳이었어요. 집을 떠난 지 아주 오랜만에 팝송이 들리는데, 고향 노래 같은 거 있죠. 제가 생긴 건 한국 사람인데 어릴 때부터 내 안에 채워진 콘텐츠는 상당 부분 서구식이구나 느꼈죠.
35. 어떤 이는 별 노력 없이 살아온 인생에도 만족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누구보다 열심히 달려 경지에 올랐음에도 겸손함을 잃지 않고 계속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50. 파리에 각 전에 한 달 정도 책을 열심히 읽었어요. 원래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앞으로 방문할 모든 도시의 역사를 숙지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실제로는 그럴 시간이 없어 파리만 읽다 끝났죠.
57.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잖아요. 배경지식을 알고 가면 정말 느끼는 것이 다른 것 같아요.
66.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한 발짝 떨어져서 보니까 당연하지 않은 거예요.
80. '아, 아나운서도 활동을 접었다 폈다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늘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84. 콧수염을 기르겠다고 한 건 지금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89. 지금 나를 만들고 있는 수많은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99. 처음에는 잘못했다고 했는데 남자는 잘못한 것에 대해서 너무 많이 혼나면 종국에는 자기가 왜 혼나는지 까먹고 그 자체에 대해 불만을 갖게 된다고 해요.
101. 보통 우리 한국에서 사는 게 너무 각박해져서 언젠가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 하지만 떠난 사람들은 대개 아, 내가 원래 있던 곳이 가장 소중한 곳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하거든요.
102. 여행을 하는 여러 방식이 있는데, 저는 갔던 데 또 가는 여행이 정말 좋아요. 여행은 낯선 곳으로 떠나는 느낌이 있는데 익숙한 듯 낯선 그 느낌, 그리고 옛날과 비교해볼 수 있다는 것도 좋아요.
103. 마드리드에서 차를 빌려서 파라도르라는 곳을 다니기로 했어요. 스페인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 봉건체제가 있었기 때문에 지방에는 영주의 요새나 성 같은 것이 있어요. 근대국가가 되면서 다 폐허가 되었는데, 스페인에서는 그걸 다 나라에서 인수했어요. 그러고는 국영 호텔로 만든 게 파라도르죠.
104. 하엔에서는 2박을 했는데 운전하고 가는 길에 끝없이 올리브 밭이 펼쳐져요. 파라도르에서는 아침 식사를 다 주거든요. 그 동네는 올리브에 자부심이 있으니까 모든 음식에 듬뿍 넣러요. 올리브유를 구색 맞춰서 뿌린 게 아니라 흥건할 정도로요. 모든 요리가 초록색이 되죠. 그 올리브가 완전 맛있어서 행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108. 지브롤터에서 배를 타고 사십 분만 가면 아프리카로 넘어가는 거예요. 혹시 '연금술사' 읽어보셨어요? 스페인 남부랑 모로코를 여행하실 때는 연금술사를 꼭 읽어보시고 가면 좋을 거예요.
140. 단적인 예지만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제가 가수로서 얻은 이 영향력을 정말 좋은 일에 쓰려면 많이 공부하고, 사회를 제대로 알아야겠구나 느꼈어요. 홍보대사가 아닌 대사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요.
141.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요령이 생기더라고요. 무엇보다 완벽히 답을 알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됐고요. 법도 늘 변하는 거니까. 정답에 가까워지려고 노력을 할 뿐이지 정답이 있지는 않은 거 같아요. 그런 인식 후에는 훨씬 마음이 편해졌어요.
150. 체계적인 준비를 못 했을 땐 호텔 직원들 도움을 받는 게 현명한 일인 것 같아요.
160. 꿈꿀 수 있는 나이, 꿈꿀 수 있는 조건, 꿈꿀 수 있는 사람에 과연 어떤 제약이나 조건이 있을까.
164. 제가 예순다섯에 유학까지 다녀온 에너지의 원동력은 호기심이에요.
177. 우스갯소리로 신이 가장 영감이 뛰어났을 때 만든 나라가 아르헨티나래요. 다른 나라들이 하나씩밖에 갖고 있지 못한 사막, 열대우림, 빙하 그 모든 게 있어요. 브라질이 아르헨티나보다 면적이 크지만 빙하도 없고 사막도 없거든요. 그런데 아르헨티나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 모든 게 다 있는 나라예요.
213. 일단 제 여행 철학은 그래요. 이 틈은 또 오지 않는다.
215. 오히려 여행은 준비할 때가 더 좋은 거 같아요. 여행의 즐거움은 비행기를 타면서 정점을 찍고요,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하향곡선을 그리기는 해요.
222. 영국에 가서는 뮤지컬을 봐야겠다, 그래서 '빌리 엘리어트'를 봤어요.
225. 진짜 걷기 좋은 곳은 아일랜드 같아요.
234. 요르단 하면 페트라를 빼놓을 수가 없죠.
244. "찾아가되 따라가지는 마. 도착지는 같아도 여정은 달라지니까."
272. 아무리 물이 뜨거워도 99.9도에서는 물이 끓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임계점에 도달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297. 옛날에는 진짜 많이 갖고 다녔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다 짐이 되는 거예요. 요즘에는 아주 간소하게 가지고 다니고 있어요.
299. 피렌체에 가면 팔라초 피티라는 곳이 있어요. 베르사유처럼 넓은 건 아니지만, 굉장히 아름다워요. 팔라초 피티가 메디치 가문의 궁정이었거든요.
320. 저는 나중에 혹시 세계여행을 하더라도 돌아다니면서 짧게 스쳐가는 여행은 하지 않으려고 하거든요. 어디든 한 군데에서 오일이든 육일이든 충분히 보는 여행을 하고 싶어요.
330. 작은 유적에 가면 고요한 유적지에서 혼자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어요. 그래서 영감을 받고 싶은 사람이나 세상만사가 복잡한 친구들은 거기 가면 새로운 휴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333. 고기 구워 먹고 놀면서 2박 3일을 있다 왔는데, 산을 오른 사람들과 밑에서 논 사람들은 경험이나 느낌이 전혀 다르더라고요.
339. 토스트랑 간단한 거지만 그 넓은 풀밭에서 앞에 히말라야를 보면서 아침을 먹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360. 저는 부가 악이고, 가난이 선이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좋은 부자도 있고, 나쁜 빈자도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지금 우리 사회의 모든 가치의 중심이 경제로 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위험 요소인 것 같아요. (중략) 우리가 무슨 호텔에서 몇십만 원짜리 음식을 먹어야 행복한 거 아니잖아요. 일례로 고속버스 타고 전주에 가면 진미집이라는 콩국수집이 있는데, 칠천 원이면 얼마든지 좋은 맛을 즐기고 좋은 풍경을 즐길 수 있거든요. 왜 더 좋은 것을 누리기 위해서 지금 하고 싶은 일을 참고, 지금 더 고생해야 도달할 수 있어,라고 사람들을 몰아가는지 모르겠어요. 마치 그 고난과 고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거기에 중독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정작 자기가 해야 하는 이야기, 이것이 옳다 그르다에 대한 이야기를 못하게 되고,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얘기했을 때 자기한테 불이익이 될까 봐 행동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고... 그런 게 답답했어요.
386. 조금 있으면 둘 다 마흔이 되거든요. 앞으로 여행을 같이 다닐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 따져보면 길어야 삼십 년일 것 같아요. 나이 일흔 정도 되면 사실 몸도 힘들고 지치고 하니까 마음껏 다니지 못하잖아요. (중략) 저희 부부에게는 그렇게 쌓아가는 추억이 더없이 훌륭한 자산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