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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초이 Jan 19. 2023

시작이 반이다

스터딩맘의 박사학위논문 여정기-2

이 세상 모든 글은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된다.

무엇을 쓸 것인가?


학위논문도 마찬가지다. 일단은 논문의 주제를 정해야 방법론도 정하고 데이터도 수집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논문의 주제를 정하는 과정이 너무나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다.


교수님들이 요구하시는 박사학위논문의 주제는 꽤나 역설적이다. 첫째로, 이전에 없던 신선함! 둘째로, 선행연구로 뒷받침될 수 있는 탄탄한 논리! 그런데 말이다. 만약 신선함을 위해 이전에 연구되지 않은 주제를 선택하면 근거가 부족하다. 연구가 이미 많이 이루어진 주제는 별로 신선하지 않다. 도대체 어떻게 이 둘을 요리조리 잘 조합한단 말인가.


뭐라도 시작하기 위해 최신논문부터 서칭해 트렌드를 파악하였다. 이 단계를 위해선 평소에 '이런 주제는 좀 재밌네?' 하는 내 마음을 잘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오래 쉬다와서 그런 마음을 잊었다. 그래서 하루에 몇십편씩 최신 연구를 훑다가 잘 읽히는 주제들을 솎아냈다.


긴 시간 후, 드디어 이 정도면 될 것 같다고 생각한 안이 떠올랐다. 다만 학위논문은 지도교수님의 컨펌 없이 주제를 내 마음대로 정할 수가 없다. 논문작성과정 중 어떤 것 하나 바꾸는데도 지도교수님과의 길고 깊은 대화가 필수적이다.


교수님께 보여드리기 위해 작성한 연구의 필요성, 대상 및 연구모형 등을 가지고 교수님 방문을 노크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재밌다고 생각한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을... 이 주제에 혼자 매몰되어 있다가 빠져나와서 또 열심히 주제를 검색해야 한다. 아, 고독하다.


여기서 학위논문의 첫 단추를 끼우는 스텝을 요약하자면

  1) 아이디어를 교수님께 가져간다

  2) 거절당한다

  3) 다른 아이디어를 교수님께 가져간다


기승전 교수님


결과적으로 교수님께 가져간 연구모형만 28개였다(그림참조).


이 과정을 지지리도 여러번 반복할 때는 언제까지 이 터널 속에 있어야 하나 답답한 마음뿐이었다. 겨우 특정 주제로 하자고 합의를 보았을 때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다.


벌써 반 했네. 주제 정하면 논문 반 쓴 거야

반이라니요 교수님... 앞으로 최소 1년 이상이 남았는데요?


그런데 그 말씀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반년 동안 주제를 정하니 얼추 틀에 맞게 쓰는 것은 한 달이면 되었다. 또한, 훗날 커미티에서 논문주제'' 괜찮다는 평을 들었다(논문주제는 괜찮다=논문주제 괜찮다)


그동안 거쳐온 모형변천사들을 다시 들여다보니 고생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보니 허술한 것들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처음 가져갈 때 모형의 빈곤함을 보면 부끄럽다. 그런데 교수님은 이걸 일일이 다 들으시고 타당한 이유를 대며 그다음 방향성을 제시해 주셨다. 교수는 참 극한 직업이다. 이래서 난 교수 안(못) 하려고.


아마 다른 학생들도 이 허접한 걸 어찌 들고 가서 보여드리지 생각하며 연구실 방문 앞을 서성거리지 싶다. 그러나 철판 깔고 노크를 좀 더 자주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위논문은 내 생각대로만 쓸 수 없으니까. 주제선정 단계에서 더 논의를 자주 깊게 하면, 그 이후 단계는 좀 더 쉽게 갈 수 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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