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즈초이 Feb 21. 2023

이상하게 졸업이 달갑지만은 않다

스터딩맘의 박사학위논문 여정기-4

중간에 육아로 쉰 기간을 포함하면 박사과정 기간에만 총 5년이 소요되었다. 그중 첫 학기만 빼고는 아이의 존재와 함께 했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집에서 짜투리 시간내어 몰두하고 있으면 아이는 고장난 노트북 졸졸 들고와서 심각한 표정으로 자판을 눌러댔다.


엄마 따라쟁이


논문 인준지에 심사위원 5분의 도장을 찍었다. 반 십 년 동안 바라고 바라던 그 순간이었다. 이제 제출만 하면 이 생활은 진짜 끝이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행복에 미처 날뛸 줄만 알았겠만, 졸업이 아주 달갑지는 않았다. 육아와 학업을 동시에 이뤄 냈다는 주변의 찬사에 뿌듯함도 느꼈건만 잘 해내지 못했다는 자괴감도 함께 존재했다. 왜 일까.



아이의 분리불안


아이는 또래에 비해 말이 유독 느렸다. 남자아이라 더 그랬겠지만 30개월이 지나서도 단어 연결이 부자연스러웠고,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엄마가 그리운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나는 아무리 바빠도 아이는 직접 재울 거라 다짐했다. 대학원 기간 동안 아이가 잠든 뒤, 밤 10시쯤 다시 컴퓨터를 키고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졸업 마지막 학기에는 말 그대로 눈 뜰 새 없이 바빴다. 내가 집에 있으면 아이가 잠을 안 자기 때문에 아빠에게 아이를 맡기고 근처 스터디카페로 밤출근했다. 그마저 여유도 허락이 안  일주일 간은 시댁에 아이를 맡겼다.  11시가 되어서야 영상통화를 깜빡했음을 알았다.

아이는 엄마의 부재가 잦아지는 그 순간부터 손톱을 마구 물어뜯었다. 약 4개월간 아이의 손톱을 깎은 적이 없다. 깎을 것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어린이집에서 잘못된 행동을 배워왔을 거라 어림짐작하고 인터넷에서 본 여러 요법을 동원했지만 모조리 실패했다. 그런데 논문 종심 후 온종일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지 며칠 만에 아이는 그 행동을 멈추었다. 그때서야 나는 아이가 불안했다는 것을 알았다. 뭉툭한 손톱 끝에서 새로 자라나는 투명한 손톱을 오랜만에 보니 얼마나 미안하던지.


나의 구원자, 집에서 3분거리 스터디카페


부족한 연구실적


나는 대학원 다니는 내내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대부분 PM이었기에 팀원보다 로드가 많았다. 내가 일 배분을 못 하거나 방향성을 잃으면 팀 전체에 피해를 끼치기에 그 어떤 일보다 먼저 처리했다. 반면, 1저자로 발행한 논문은 최소기준에 부합할 뿐 다른 동료들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이는 핑계 댈 것도 없이 나의 역량부족이다. 나의 생활철칙 중 하나는 무조건 하루에 7시간은 자는 것이다. 타고난 체력이 약해 지켜온 신조이긴 한데, 이는 아이를 낳은 후 더 강해졌다. 잠이 부족하면 육아라는 육체노동을 감당하기 힘들다. 피곤하고 예민해서 아이한테 별거 아닌 일로 짜증을 내고 나면 자책감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내가 잠을 줄이면 애도 보고, 학위논문도 쓰고, 프로젝트도 하면서 개인 논문도 쓸 수 있었을 것이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잠을 줄여 얻은 짜증으로 아이를 대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까. 솔직히 아이가 없었어도 연구실적이 적었을 가능성도 크다. 내 자신이 연구가 즐거운 스타일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아이는 나에게 얼마나 좋은 핑곗거리가 돼주는지. 나의 한계를 알기에 이 모두를 잘 해내는 연구자맘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나는 이들을 바라보며 대리만족을 해야지. 


이전 11화 커미티, 마지막 관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