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를 정하니 봄학기가 되었다. 서론, 이론적 배경 및 연구방법을 포함한 학위논문계획서를 작성하고 발표하였다. 피드백에 맞추어 글을 수정하고 다시 제출하였다. 이 단계는 전체 여정에서 그리 어려운 기간은 아니었다. '하란 대로 하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며 부담감을 털어냈다.
드디어 가을학기가 시작하였다. 논문계획서가 통과되었다는 연락을 받았고 바로 커미티 단계로 넘어왔다. 계획서가 통과되었다고 잠시 기뻐함과 동시에 혹독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붉어진 잎이 다 떨어질 때까지도 가을을 인식하지 못했던 그때의 계절은 너무나 치열했다.
졸업을 하기 위해선 N차례 커미티를 통과해야만 한다
만약 다음 커미티로 넘어가지 못하면 졸업을 제 때 할 수 없다. 나는 졸업을빨리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가득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아이를 위해서. 엄마의 부재가 길어지자막 3돌지난 아이는 분리불안으로 손톱을 사정없이 물어뜯었다.얼른졸업해서아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었다.
본격적으로 서바이벌 커미티게임 시작! 이 분야의 전문가 다섯 분께서 나의 글을 이 잡듯 세심히도 보신다.얕은 생각으로 촉박하게 써 내려간 글을 중점적으로 논의할 땐 너무나 부끄러워 고개를 내내 떨구고 있기도 했다.
매 커미티 준비할 때마다 갖은 고비를 겪었다. 나의 연구대상이 한정적이라 표집이 너무 어려웠다. 관련 기관에 전화를 수십 통 돌리고 나면 글 한 줄 못 쓰고 어린이집 하원시간이 되었다. 자존심 다 버리고 오래 연락 안 한 사람들한테 설문해 달라고 카톡을 돌렸다. 설문율 높이려고 살짝 비싼 기프티콘을 사례했더니 표집에만 사백만 원이 깨졌다.
힘들게 모은 샘플을 대상으로 통계를 돌렸는데 내가 생각한 만큼의 결과도 안 나왔다. 논리적으로 합당하다고 세운 가설 중에 꽤나 여러 개가기각되었다. 이게 골치 아픈 이유는 왜 이렇게 되었는지 설명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나의 설명이 작위적이라는 피드백을 듣고는 그럴듯한 근거를 떠올리기 위해 몇 날을 허우적거렸다. 모든 가설이 다 통과된 동료는 빨리 마무리하는 걸 보니 어찌나 부럽던지.
커미티 10분 전 테이블 세팅완료. 이때가 제일 떨리지유
나의 논문과 관련된 일 말고도 커미티는 여하튼 복잡했다. 바쁜 위원님들께 연락드려 시간을 맞추는 일, 위원님들간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해 나가는 일 등 다양한 일들이 산재되어 있었다.
어느새 계절이 바뀐 12월, 커미티의 마지막인 종심이 끝났다. 위원님들께서 축하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드디어 졸업을 할 수 있다는 기쁨보다는 이런 커미티를 다신 안 해도 된다는 사실에 훨씬 기뻤다. 그만큼 고되었다.
반면 이런 생각도 든다. 이 분야 대가를 5분이나 모시고 내 글을 검토받을 수 있는 날은 다신 오지 않겠지. 귀한 경험인 건 확실하다. 하긴 그렇다. 이것도 다 끝나니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