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이끈 두 명의 기업가

by 더프러너

기업가정신 교육에 주로 활용되는 사례에 스티브잡스, 빌게이츠 등 해외발 CEO들이 자주 거론되는데요. 한국에도 못지 않은 성공한 기업가들이 많죠. 특히, 한국인으로서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기여한 역사적인 기업가들을 먼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1960~70년대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 계획이 시작되면서 한국 경제의 성장을 리드한 기업가들이 활약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삼성의 창업자 이병철 회장과 LG의 창업자 구인회 회장입니다. 두 명의 기업가의 기업가정신이 돋보였던 순간을 간단하게 살펴볼게요.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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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회장은 해방 이후 삼성물산과 제일제당을 설립하며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순간은 바로, 1983년 2월의 ‘도쿄 선언’이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이병철 회장은 도쿄의 한 호텔에서 선언했습니다.


반도체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누가 뭐래도 밀고 나가겠다.

이 순간이 바로 삼성이 세계 반도체 시장의 1위로 도약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이병철 회장의 나이는 무려 74세였습니다. 이미 큰 성공을 거두었고, 건강도 예전 같지 않았을 나이였어요. 여러분이라면 어떨까요? 50대만 넘어가도 우리는 보수적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신체적 건강뿐만아니라 정신적 건강도 예전만 못하며, 언제 죽을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는데 과감히 새로운 시작에 투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절대 못 하지 싶거든요.


당시 서구 경제학자들에게도 삼성의 반도체 산업 진출은 매무 무모한 시도로 여겨졌습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클 스펜스는 자신의 저서 『넥스트 컨버전스(The Next Convergence)』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서구인들은 삼성의 반도체 진출 선언을 정신이상자의 발언으로 간주했다.”


즉, 이병철 회장의 결단은 그만큼 위험하고 불확실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를 밀어붙였고, 오늘날 삼성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병철 회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벌이를 하려면 반도체 말고도 많다. 그런데 왜 이렇게 고생하고 애써야 하는가?
국가적 사업이고, 미래 산업의 총아(寵兒)이기 때문이다.


이 회장는 반도체가 미래의 쌀이 될 것이라고 보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반도체 사업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았습니다. 폐암 투병으로 거동이 힘들었던 그가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도 바로 반도체 공장으로 알려졌죠.



LG 창업자 구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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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 회장은 1931년 포목점을 운영하며 사업을 시작했고, 해방 직후에는 럭키크림이라는 화장품을 생산하며 화학 산업에 진출했습니다. 그런데 제품의 가장 큰 문제는 뚜껑이 쉽게 깨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운반 중에 쉽게 깨지면 물건을 팔기가 어렵잖아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지 고민하던 그는 어느날 미군 부대에서 나온 가볍고 깨지지 않는 재질, 플라스틱(합성수지)을 발견하게 됩니다.


유레카!를 외친 구인회 회장은 플라스틱 사업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플라스틱을 생산할 기술이 아예 전무했어요. 그는 그 동안 사업활동을 번 3억 원을 모두 투자하기로 했어요. 지금도 3억이 큰 돈이지만 당시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습니다. 그걸 모두 올인해 미국에서 최신형 플라스틱 사출성형기 두 대를 들여왔습니다.


자, 이게 중요한데요. 이때가 언제였을까요? 바로 6.25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기업들은 사업을 확장하기는커녕, 일본으로 대피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 회장은 오히려 전쟁 중에도 새로운 사업을 개척했습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이라면 이 때 전재산을 투자할 수 있을까요? 경제가 어렵다는 말만 들어도 주식을 팔아말아 갈팡질팡하는게 사람 마음인데요.


결과적으로 플라스틱 사출성형기를 이용해 화장품 뚜껑을 만들었고 이어 빗과 비눗갑 같은 생활용품을 생산하며 국내 시장을 개척했습니다. 이후에도 국내 최초로 선풍기, TV 등 다양한 전자제품을 개발하며 대한민국 가전 산업의 기틀을 마련했고요.


당시 구인회 회장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민의 생활필수품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기업인이 생활용품을 차질 없이 만들어내는 것도 애국하는 길이며, 전쟁을 이기는데 도움이 되는 길이다. 그리고 기업하는 사람으로서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업을 착수해 성공시킨다는 것만큼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사업으로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죠.




두 창업자의 공통점


이병철 회장과 구인회 회장에서 볼 수 있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어요.


첫째, 기존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위험을 감수한 점입니다. 이병철 회장은 74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사업이라는 거대한 도전을 감행했습니다. 구인회 회장은 6.25 전쟁 중에도 플라스틱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둘째, 개인적인 이익이 아니라,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점입니다.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가 미래 산업의 핵심이 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구인회 회장은 플라스틱 제조를 통해 국민 생활을 개선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이러한 두 번째 가치를 사업보국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국내 재벌 창업주 1세대에서 즐겨쓰던 경영 이념 중 하나였는데요. 사업을 통해 나라를 이롭게 한다는 의미로, 기업경영을 통해 국가와 우리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시대상황상 '사업보국'이 기업가정신의 주요 요소였던 시대였는데, 아무래도 오늘날에는 희미해진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K-Culture의 선두에 있는 기업들이 여전히 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병철 회장과 구인회 회장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기업가정신이란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찾고 사회에 기여하는 도전의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번 돈을 흥청망청 써도 남을 만큼 충분한 부를 거둔 후에도 새로운 분야에 과감히 도전하였고요. 이 과정에서 단순한 개인적 부의 축적이 아니라, 국가 경제 발전과 국민 생활의 개선을 목표로 삼았다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기업가정신 강의를 할 때 한국의 예를 많이 들려고 한다고 글 초반에 언급했는데요. 솔직히 외국 창업자로 논의하는 것이 편하기는 해요. 왜냐면 학습자들의 편견이 없거든요. 저는 실제로 토의를 진행하다가 조금 당황했던 적이 있습니다. 한 학습자의 반기업 정서가 다소 한국의 기업가를 폄훼하는 것으로 느낀 적이 있었거든요. 당연히 그 맥락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사업보국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초기의 기업가들의 공은 공, 과는 과로 보다 심플하게 논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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