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일을 하고 싶어" 라고 이미지를 그려볼 때 보통은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을 무대로 생각합니다.
이런 일이 창업이라면, 한국 시장이 타겟시장이자 종착시장인 것인데요.
해외로 꿈을 넓히는 창업자들도 일단 한국 시장에서 자리 잡고 나서 해외로 나가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처음부터 ‘세계’를 무대 삼습니다. 국경은 장벽이 아니라 기회의 문이라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일 겁니다. 이들을 우리는 "Born Global Entrepreneur"라고 부릅니다.
이를 조금 더 학문적으로 표현하자면 '글로벌 기업가정신'이라고 합니다.
저는 ‘국제적 기업가정신(International Entrepreneurship)’을 한 마디로 이렇게 정의하고 싶네요.
시작부터 스케일이 큰 꿈을 가지는 것
글로벌 기업가정신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창업국가가 있으니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은 인구 약 950만 명, 국토 면적은 대한민국의 약 1/5 수준에 불과해요. 내수 시장만 보면 결코 창업에 유리한 조건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창업 생태계를 가진 나라 중 하나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스라엘 창업가들은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자국 시장을 거의 고려하지 않습니다. 자국이 너무 작아서 수익을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창업가들은 창업 기획부터 영어로 피치 덱을 만들고 미국, 유럽, 중국 등 글로벌 고객을 타깃으로 제품을 개발하며 해외 VC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 전략을 수립합니다.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사이버보안 기업 체크포인트(Check Point)나 스타트업 모빌아이(Mobileye) 등은 설립 초기부터 미국과 유럽의 대기업을 고객으로 설정하고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특히, 모빌아이는 인텔(Intel)에 17조원에 인수되며, 그야말로 ‘Born Global’ 전략의 교과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이스라엘 정부의 적극적인 창업지원정책도 한 몫합니다. 우리나라의 창업보육기관(BI)도 이스라엘의 예(TI)를 많이 참고했구요. 이스라엘 정부는 1990년대부터 요즈마 펀드(Yozma Fund)를 통해 벤처캐피털 시장을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이 펀드는 민간 투자자와 정부가 함께 출자하고, 일정 수익이 발생하면 민간이 정부 지분을 되사갈 수 있게 하는 구조입니다. 즉, 민간 자본을 유도하면서 리스크는 정부가 분담하는 방식이죠. 창업가의 리스크가 훨씬 적어지죠? 이런 구조 덕분에 해외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투자하고 국내 스타트업들도 쉽게 시드머니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게 바로 후츠파((chutzpah) 정신입니다. 후츠파 정신 히브리어로 담대함, 저돌성 등을 뜻합니다. 생존을 위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지혜와 전략을 기반으로 헤쳐온 유대인이 정신입니다. 이는 도전과 창조의 정신이기에 실패가 결코 창피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실패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용기가 없는 사람으로 비판받죠.
창업 실패 경험이 있는 사람은 "한 번 부딪쳐 본 사람"으로 더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실제로도 실패한 창업가가 다시 도전할 경우, 이스라엘 정부는 첫 창업 때보다 20%나 더 많은 지원을 해준다고 해요. 실패한 창업가는 그만큼 시행착오를 겪었고, 리스크 관리 역량이 더 높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늘 위기감이 도사리는 나라 같아요. 국토도 적은데 절반 밖에 못 쓰고요. 심각한 저출산으로 내수경제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보며, 땅이 작고 시장이 좁다고 해서 창업이 불리하다는 편견은 버리면 좋을 것 같아요.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타겟팅하는 것이 이스라엘을 창업 강국으로 만든 핵심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Born Global 전략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입니다.
지금은 BTS나 블랙핑크가 전 세계 팬을 보유하고 있는 게 너무나도 자연스럽지만, 그 시작은 보아였습니다.
가수 보아의 일본 시장 진출은 K-POP의 글로벌화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만든 사례에요. 보아는 SM엔터테인먼트하에서 시작부터 일본 시장을 목표로 전략적으로 키워졌어요. 한국어와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도록 트레이닝 받았습니다. 그 결과, 2002년 일본 정식 데뷔 앨범 'Listen to My Heart' (저 노래방에서 많이 불렀었는데요...) 오리콘 앨범 차트 1위를 달성하고 일본에서만 100만 장 이상 판매됐습니다. 보아 다큐멘터리에는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으로 소개되기도 했죠.
그 당시만 해도 K-POP은J-POP의 발끝에도 못 따라갈 정도였습니다. 한국 가수가 일본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일이였는데 아티스트와 회사의 합도 참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보아의 성공을 기반으로 한국 엔터테인먼트들이 일본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며 동방신기, 소녀시대, 방탄소년단(BTS) 등도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일본 뿐만 아니라 북미, 유럽에서도 K-POP이 핫하기에, 아이돌 기획 단계에서 부터 Born global 마인드를 장착하고 트레이닝 시킵니다.
최근에 미국 최대 규모의 음악축제인 코첼라에서 제니의 활약을 유투브로 접했는데요. 작고 여린 몸에서 뿜어나오는 힙함, 그리고 유창한 영어가 얼마나 멋있던지요. 한국의 아티스트 한명을 보러 10만명이 몰렸다니 어마어마하지 않나요.
처음에는 누구나 작게 시작합니다. 그래도 기획 단계에서 스케일이 큰 꿈을 품는 것도 이제는 충분히 가능한 시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