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아의 정답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고,
또 스스로에게 위로처럼 건네봤을 말이다.
하지만 다섯 살 아이를 키우며 내가 내린 결론은 조금 다르다.
육아는 정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아이에게 맞는 정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서점 매대를 가득 채운 수많은 육아서와 TV 속 육아 전문가들의 솔루션은 훌륭한 참고서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들을 수학 공식처럼 우리 아이에게 100% 똑같이 대입할 수는 없다. 세상에 똑같은 기질을 가진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으며, 각자가 지닌 고유한 우주가 다르기 때문이다.
양질의 육아를 위해 부모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비싼 교구를 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의 '기질'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인 '나 자신'의 기질을 객관적으로 아는 것이다.
아이와 부모는 서로 완전히 다른 기질을 타고날 수 있다. 예민하고 신중한 부모에게 호기심 많고 충동적인 기질의 아이가 태어나기도 하고, 활동적인 부모에게 조용하고 관찰하기 좋아하는 아이가 태어나기도 한다.
이 다름을 이해하지 못한 채 부모의 기질대로 아이를 통제하려 들거나, 반대로 아이의 기질에만 무조건 끌려다니다 보면 결국 서로가 지치고 상처받게 된다.
나와 아이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의 교집합과 차이점은 무엇인지 기질을 이해하고 조율해 나가는 것. 그것이 육아라는 거대한 여정의 진짜 첫걸음이다.
육아의 정답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아이가 두 돌 무렵이 되었을 때 후배 영은이의 추천으로 성신여대 아동발달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연구에 참여했다. 주 양육자가 작성하는 질문지를 통해 아이의 기질과 부모의 역할을 점검해 보는 기회였다.
자세한 검사 결과는 차치하고서라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아이가 예민한 기질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돌이켜보면 신생아 시절부터 아이는 이른바 '순한 기질'이었다. 기저귀가 축축해도 크게 불편해하지 않았고, 배가 고프거나 졸릴 때 딱 두 가지 경우에만 울음을 터뜨렸다. 처음 해보는 목욕도 무서워하지 않고 물결을 즐길 줄 아는 무던한 아기였다. 주변에서도 육아 난이도가 '하(下)'라며 다행이라고들 했다.
하지만 세상에 거저 크는 아이는 없다.
아이가 무던하다고 해서 매일의 육아가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짙은 우울증으로 약물 치료를 받으며 하루하루 나 자신과 사투를 벌이던 중이었다. 게다가 아이가 자라면서 모든 것을 '내가! 내가 할 거야!'라고 외치는 시기가 찾아왔는데, 유독 우리 아이는 그 자율성의 주장이 매우 강렬했다.
이때 내 기질대로 아이를 통제하고 억누르는 대신, 약물 치료로 마음을 다스리며 아이의 강한 자율성을 온전히 인정해 주기로 했다. 아이가 스스로 해볼 수 있도록 묵묵히 기다려주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과하게 떼를 쓸 때만 조절하는 법을 단호하게 가르쳤다.
가만히 관찰해 보니, 평소에는 감정 조절을 제법 잘하던 아이도 유독 피곤하거나 배가 고플 때면 떼쓰는 강도가 심해졌다. 윽박지르는 대신 아이의 상태를 언어화해서 읽어주었다.
"지금 밥 먹을 시간이 지나서 배가 많이 고프지? 그래서 감정 조절하는 게 힘든 거야. 엄마가 얼른 맛있는 밥 차려줄게."
"우리 아기, 지금 졸려서 짜증이 나는구나."
자신이 지금 왜 화가 나고 감정 조절이 안 되는지 그 '원인'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그것이 내가 아이의 고유한 기질을 이해하고 돕는 방식이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우리는 수많은 것을 '준비'한다. 국민 기저귀함부터 시작해 유모차, 젖병, 아기 침대까지 맘카페를 뒤져가며 꼼꼼하게 물질적인 출산 준비를 마친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본질은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아이를 낳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과연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이고 내면적인 준비 말이다.얼마 전 보았던 드라마 <파친코>에는 내 가슴을 쿵 하고 때린 잊지 못할 내레이션이 나온다.
선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를 그리워하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던 아버지의 독백이었다.
"옛날에는 내 팔자가 왜 이리 모진가 할 때가 있었다. 오만천지 다 행복해도 내랑은 평생 먼 얘기지 싶었데이. 그런데 느그 엄마가 내한테 오고 니도 생겼지. 그라고 보이께네, 팔자랑 상관이 없는기라. 내가 니 부모 될 자격을 얻어야 되는거더라. 선자야, 아부지가 강해지갖고 시상 드릅은 것들 싹 다 쫓아삐맀으니께 안 있나, 니도 금세 강해질끼다이. 나중에는 니 얼라들도 생기겠제. 그 때 되모, 니도 그럴 자격을 얻어야 된다. 선자 니는 할 수 있다이. 나는 니를 믿는다."
"팔자랑 상관이 없는기라.
내가 니 부모 될 자격을 얻어야 되는거더라."
이 한 줄의 대사가 내 마음을 오래도록 묶어두었다. 자신의 불행을 평생 '팔자 탓'으로 돌리며 방치했던 나의 원가족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생명이 찾아온 순간, 그것을 팔자타령으로 넘기지 않고 스스로 '부모 될 자격'을 쟁취하기 위해 기꺼이 강해지기를 선택했다.
부모라는 이름표는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나는 노력과 성찰로 '얻어내야 하는 자격'이었던 것이다.
부모 될 자격을 갖춘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이를 내 소유물이나 분신으로 여기는 낡은 환상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내 아이는 내 뜻대로 조종할 수 있는 아바타가 아니라, 내 인생에 잠시 머물다 떠날 가장 귀하고 다정한 손님이다.
따라서 부모가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최종 목적지는 사회적 성공이나 트로피가 될 수 없다. 진짜 목적은 '성숙'과 '독립'이다. 훗날 아이가 나의 품을 떠나 세상이라는 거친 바다로 나아갔을 때, 스스로 돛을 올리고 항해할 수 있도록 든든한 마음의 닻을 만들어주는 것.
나와 전혀 다른 기질의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독립된 인격체로 대우하며 키워내는 일. 그런 부모의 단단한 등 뒤에서 자란 아이는, 훗날 세상으로 나가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도 기꺼이 서로를 존중하며 연결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오늘도 내 아이의 고유한 기질을 살피며, 그에 맞는 우리만의 정답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매일 밤 다짐한다. 내게 찾아온 이 귀한 손님을 위해, 어제보다 오늘 더 '부모 될 자격'을 얻어내겠다고.
오늘의 증상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아이에게 화가 나고 통제하고 싶어질 때.
맘카페나 육아 방송의 '정답'들과 내 아이를 비교하며 "내가 잘못 키우고 있나?" 자책감이 들 때.
마음 통찰
부모의 자격은 '완벽함'에서 오지 않습니다. 남의 정답을 좇지 않고, 내 아이의 기질을 존중하며 기꺼이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주려는 매일의 노력 속에서 얻어집니다.
손님의 입맛이 나와 다르다고 화를 내지 않듯, 기질의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진짜 육아의 정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음 처방전
1. 떼쓰는 아이의 감정에 '이름표' 붙여주기
아이가 통제 불능으로 떼를 쓸 때, 같이 화를 내는 대신 아이의 신체적, 감정적 상태를 객관적인 언어로 읽어주세요.
"지금 졸려서 짜증이 나는구나."
"배가 고파서 감정 조절이 힘든 거지?"
아이 스스로 원인을 인식하게 돕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며 부모 역시 한결 차분하게 상황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2. 나와 아이의 '기질 관찰 일지' 쓰기
아이를 바꾸려 하기 전에, 가치 판단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기질을 한 줄씩 적어보세요.
서로의 다름을 언어화해 적어보는 것만으로도, 부딪히는 지점을 미리 피하고 조율할 수 있는 지혜가 생깁니다.
나쁜 예: "우리 아이는 너무 예민하고, 나는 욱하는 성격이라 안 맞아."
좋은 예: "우리 아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신중한 기질이야. 나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불안도가 높아지는 기질이지."
3. 육아 전문가의 조언 '뷔페식'으로 소비하기
수많은 육아서와 TV 솔루션은 진리가 아니라 '뷔페'라고 생각하세요.
아무리 비싸고 맛있는 음식도 체질에 맞지 않으면 독이 됩니다. 남들이 다 맞다고 하는 훈육법이라도 내 아이의 기질과 맞지 않으면 과감히 버리세요.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 아이에게 맞는 것만 취사선택하는 것, 그것이 바로 당신이 매일 획득하고 있는 '부모의 자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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