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 집의 날씨는 매일 '흐림'이었습니다.
텅 빈 냉장고가 내뿜는 정적보다 더 차가웠던 건, 알 수 없는 말들을 허공에 쏟아내던 엄마의 뒷모습이었습니다.
엄마는 보통 엄마들의 역할을 하지 않았고,
일곱 살 아이에게 가족이란 기댈 곳이 아닌 움직일수록 상처를 입히는 가시덤불 같은 곳이었습니다.
성인이 되어 간호사가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타인의 고통을 전문적으로 돌보고 소독하면서도, 정작 제 안에서 비명을 지르는 어린아이의 상처에는 약 한 번 바를 여유가 없었습니다.
의학적 지식으로 엄마의 병명을 이해하는 것과,
그 병이 할퀴고 간 삶의 파편들을 수습하는 것은 전혀 다른 층위의 비극이었습니다.
흰 가운을 입고 타인을 치유하는 순간에도, 여전히 차가운 화단 앞에서 서성이는 작은 아이였습니다.
아이를 처음 품에 안았던 날,
환희보다 먼저 덮친 건 지독한 공포였습니다.
'나도 엄마처럼 되면 어떡하지?'라는 근원적인 두려움이 대물림의 망령처럼 저를 덮쳤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맑은 눈망울을 마주하며 결심했습니다.
내 아이에게는 가시덤불이 아닌 따스한 햇살을 물려주겠노라고, 내 대에서 이 비극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내겠노라고 말입니다.
조현병 어머니의 학대와 방임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인 저는, 이제 한 아이의 온전한 세상을 지키는 '엄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를 키운 건 팔 할이 상처였지만, 이제는 그 상처가 결코 제 삶을 정의하게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기록은 단순히 아픈 과거를 들추는 고발장이 아닙니다. '어제와 다른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저의 매일이,
비슷한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우리도 다르게 살 수 있다'는 실재하는 증거가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이제, 오랫동안 닫아두었던 그 새장의 문을 열고 저의 진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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