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덤불에서 탈출하다

- 나를 구원한 건 글자였다 -

by 날아올라


방학은 집이라는 감옥에 갇히는 시간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아빠가 출근하자마자 폭력을 피해 도서관으로 도망쳤다.


아침에 준 용돈 천 원으로 600원짜리 다이제 초콜릿 한 통을 샀다. 그것이 유일한 끼니였다. 도서관 구석에 앉아 조금씩 나눠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그곳의 온기와 책 속의 글자들은 갈 곳 없는 아이에게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아빠의 퇴근시간에 맞춰 집으로 향할 때면,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난 듯 속이 텅 비어버리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의 강점과 재능 알아봐 주는 것은 큰 축복이다. 아빠는 먹고사는 문제에 함몰되어 있었고, 엄마는 환상 속에 갇혀 있었다. 학원 근처에도 가본 적 없던 나는 초등학교 내내 성적이 바닥을 기었다. 수학은 늘 나머지 공부 대상이었고,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말해주는 가족은 없었다. 유일하게 잘하는 것은 TV속 만화를 보며 그린 종이인형을 갖고 노는 것뿐이다.


어릴 적 드라마에선 가난한 집의 자녀들은 늘 공부를 잘했다. 어리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왜 가난하면 공부를 잘할까?'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그들에게 공부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며, 그것만이 가난이라는 창살 없는 감옥에서 탈출할 유일한 동아줄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중학교,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키가 커지자 엄마의 신체적 폭력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울 수 있었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부터 엇나가기 시작한 오빠가 엄마와 나를 향해 주먹과 발을 휘두르면서 새로운 가해자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빠의 폭력이 시작되면서 엄마의 폭력은 멈췄지만, 집은 여전히 치유받지 못한 상처들이 서로 할퀴는 아수라장이었다.


엄마는 오빠에게 맞은 사실을 외가 식구들에게 알렸고, 외할머니와 삼촌, 이모는 전화로 오빠를 호되게 혼내거나 집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그 꾸짖음은 잠시 폭력을 멈출 수 있었지만, 이미 망가져 버린 오빠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아빠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의 눈빛엔 늘 후회와 체념만이 가득했다.

그곳에 희망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변화는 중학교 1학년, 우연히 찾아왔다.

시험기간에도 오락실에서 펌프구경이나 하던 내가 집에 왔을 때, 가정 선생님의 조언이 생각났다. "노트 필기 3번, 교과서 3번만 정독해 봐. 그럼 100점 맞을 수 있어." 속는 셈 치고 그 말을 따랐다. 다음날, 늘 20-30점을 받던 내가 처음으로 90점 이상을 받았다. ‘하면 되는구나’라는 전율이 온몸을 감쌌고, 그 성취감은 다이제 초콜릿보다 달콤했다.


그때부터 미친 듯이 공부에 매달렸다. 중학교 3학년 때 반 3등을 거쳐 인문계에 진학했고,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전교 10등 안에 이름을 올렸다. 공부는 이 지옥에서 꺼내 줄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하지만 집안은 내가 노력하는 만큼 나아지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갑자기 형사들이 집으로 들이닥쳤다. 엄마가 절도를 저질렀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처음 마주한 형사들의 위압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태어나 처음으로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울며 매달렸다.


그녀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동안 쌓아온 울분과 분노를 한꺼번에 터뜨렸다. "엄마 때문에 우리 집은 망할 거야!"라고 소리 지르며 부엌에서 칼을 들고 왔다. "차라리 같이 죽자"며 울부짖던 그 순간,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막다른 길에 다다랐음을 깨달았다. 엄마의 병은 이제 경제적 파멸과 범죄라는 꼬리표까지 집안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 절망 끝에서 더욱 필사적으로 탈출을 꿈꿨지만,

사교육으로 무장한 친구들을 따라잡기엔 기초가 턱없이 부족했다. 내신은 좋았지만 모의고사 성적은 처참했고, 수능 날 생각지도 못한 점수를 마주했다.


대학 학비 걱정과 동시에 무기력함이 밀려왔지만 어떻게든 이 집을 벗어나야만 살 것 같았다. 결국 기숙사 생활이 가능한 지방 대학의 간호과를 선택했고 성적우수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녔다.


막연하게 하얀 가운을 입은 그들이 멋있어 보여서 선택한 전공은,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게 했다. 교과서 속 '정신분열증(현 조현병)'의 증상들은 그대로 엄마의 모습이었다.


환청, 환각, 망상, 지리멸렬...


강의시간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엄마는 나를 미워해서 때린 게 아니라, 치료받지 못한 환자였기에 그랬던 것이다. 엄마가 오빠에게 맞은 사실을 외가 식구들에게 알리며 고립되던 모습, 형사들이 찾아왔던 그 모든 비극이 병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학문적으로 이해하게 되자 내 안의 분노는 조금씩 연민으로 바뀌었다.


아프지 않았더라면
누구보다 나를 사랑해 줬을 엄마를 위해,
나 자신을 다독이기 시작했다.



공부를 통해 스무 살에 스스로 가시덤불에서 나왔지만, 그곳을 완전히 떠날 수는 없었다. 오랜 시간 갇혀 있던 탓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한동안 그 주변을 뱅글뱅글 맴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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