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가 멈춘 날, 비로소 시작된 진짜 삶 -
교회란 무엇일까. 신앙이란 무엇일까.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보호받지 못했던 내게 그곳은 유일한 피난처였다. 따뜻한 음식과 온기,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는 말 한마디가 갈 곳 없는 어린아이를 숨 쉬게 했다.
어느 날, '사랑과 용서'를 말하는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오자마자 '죄'를 지었다. 그리고 곧바로 가혹한 '심판'을 마주했다.
집에서 채워지지 않는 배고픔과 결핍은 물건에 대한 소유욕으로 이어졌고, 예배를 마치고 홀로 문방구에 들어가 충동적으로 갖고 싶은 물건 하나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 순간, 돌아온 것은 주인아주머니의 매서운 손바닥이었다. 세상은 늘 내게 따뜻한 훈계 대신 차가운 폭력을 먼저 휘둘렀다.
귀싸대기를 맞아 벌겋게 부어오른 뺨을 잡고 교회로 돌아가 흐느끼며 앉아있었다. 그런 나를 데리고 다시 문방구로 향한 건 교회 선생님이었다.
"죄송합니다. 아이가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대신 고개를 숙이고, 어린아이를 이토록 모질게 때린 것에 대해 단호하게 말씀하시던 선생님의 뒷모습.
그날 이후 교회는 내 부모이자 집이 되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에 매달렸다. 금요철야와 새벽기도는 물론 학생회장까지 맡으며 신의 기준에 맞추려 발버둥 쳤다.
하지만 현실 속 신앙인들의 인간적인 모습은 감당하기 힘든 모순이었다.
누구보다 뜨겁게 기도하면서도 예배당 문을 나서면 거침없이 욕설 내뱉는 사람, 신의 이름으로 타인을 정죄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삶은 방치하는 사람들.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믿는 신은 제각각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예수님을 닮고 싶어 발버둥 치던 순수함은 그 불협화음 속에서 서서히 마모되어 갔다.
사춘기가 되자 감정 기복은 부모님을 향한 화살이 되었다. 아빠를 향한 연민은 증오로 바뀌어 우리 사이엔 깊은 강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교회를 갔고, 골방에 들어가 새벽 기도를 올렸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 모습이 무능하고 답답할 뿐이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찾아오는 외가 식구들은 그 증오에 기름을 부었다.
“너희는 아빠가 용돈 주니까 좋은 사람인 줄 알지?” 이모는 비꼬듯 말하면서도, 왜 아빠가 좋은 사람이 아닌지는 끝내 말해주지 않았다.
할머니는 상고 졸업 후 검사 밑에서 일할 정도로 유능했던 엄마의 과거 사진을 보여주며 눈물을 훔치셨지만, 엄마가 왜 망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들이 우리 집에서 하는 일이라곤, 방 전체를 울리는 알 수 없는 방언 기도가 전부였다.
그 소음 같은 기도 소리 속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면서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
신은 왜 우리 엄마를 고쳐주지 않는가.
가족 한 명 변화시키지 못하고 그들을 증오하는 나는 왜 이토록 나약한가.
그 높은 기준에 충족하지 못하는 자신을 혐오했으나, 신앙마저 없다면 무너질지 모른다는 약함에 눈이 멀어 스스로 만든 창살 속에 갇히는 쪽을 택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교회 장학금은 가난한 집의 생명줄이었다.
기숙사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흘린 눈물은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유일한 안식처인 교회를 떠나야 하는 슬픔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친구를 통해 전해 들은 목사님의 말은 목에 걸린 가시가 되었다.
"장학금을 받으면서 왜 교회에 나오지 않니."
그 말은 나를 지키던 방패를 가시관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동안의 내 신앙이 돈 때문이었다고 들리네... 목사님께 전해줄래. 더 이상 그 돈 받지 않겠다고."
처음으로 내뱉은 날 선 거절이었다.
이후 친구들과 학교 근처 작은 개척교회로 발길을 돌렸다.
목사님 부부와 대여섯 명의 청년이 전부인 작은 예배당.
흔한 점심대접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지만,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작은 간식이라도 챙겨주시는 모습은 내가 꿈꾸던 선한 온기 었다.
하지만 재정난으로 인해 그 마지막 안식처마저 사라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목사님 부부는 결국 짐을 싸서 떠나셔야 했다.
대학 졸업식 날은 눈이 시리도록 화창했다.
그 맑은 하늘 아래, 뜻밖의 손님이 나를 찾아왔다.
예전에 다니던 교회의 선생님이셨다.
먼 거리까지 오직 나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달려오신 그분을 본 순간 목이 메었다.
단순히 '교회의 학생'이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응원해 주셨다.
나를 숨 쉬게 했던 것은 신의 엄격한 율법이 아니라,
이토록 조건 없이 건네지는 사람의 진심이었다.
그 따뜻한 여운을 품고, 발걸음을 옮겨 폐허가 되어버린 마지막 교회로 향했다.
주인이 떠나 먼지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차가운 제단 위에,
친구들과 한 푼 두 푼 모아 온, 가난한 대학생들에게는 전부였던 종잣돈을 가만히 내려두었다.
교회를 나와 목사님께 짧은 연락을 드렸다.
"목사님,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교회 제단에 돈을 두고 나왔습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것은 신에 대한 헌금이 아니라, 벼랑 끝에서 나를 안아주었던 그 순수함에 보답하고 싶은 가장 뜨거운 작별 인사였다.
'이것으로 제 진심은 다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은 당신 뒤에 숨지 않겠습니다.'
폐허를 뒤로하고 걸어 나올 때, 화창한 햇살이 어깨 위로 쏟아졌다.
교회에 빠지면 벌을 받을까 봐, 기도가 부족해 불행한 걸까 봐 스스로를 자책하며 떨었던 수많은 밤들.
하지만 그 문을 닫고 나와서야 알게 되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세상은 여전히 무심하게 아름다웠고, 내 안의 공포는 그 폐허 속에 함께 묻혔다.
신의 이름 뒤에 숨어 스스로를 채찍질하던 맹목적인 순수함을 그곳에 버려두고서야, 불완전하고 나약한 '진짜 나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신의 옷자락을 놓자, 비로소 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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