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핍의 자리에 지어진 '새로운 집'과 '복구'의 시작 -
경제적으로는 독립하여 겉으론 완벽한 성인이 되었지만, 내면은 여전히 결핍으로 가득했던 시기였다.
주는 것에 익숙한 20대 초반의 사랑은 서툴렀다.
연애를 하면서 느꼈던 '채워지지 않는 구멍'은, 사실 연인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가족이라는 상처 때문이었다.
그 시절 휴대폰은 사랑의 도구라기보다 폭탄에 가까웠다. 진동이 울리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머릿속 시계는 이별을 향해 빠르게 돌아갔다.
답장이 없는 빈 공간을 '나를 떠날 조짐'으로 해석하기 시작했고, 상대가 나를 싫어하게 될 이유를 수십 가지씩 찾아내며 '도망칠 타이밍'을 쟀다.
'지금이야. 지금 말하면 최소한 비참해지지는 않아.'
상대의 진심을 확인하기도 전에 먼저 선을 그어버렸던 날들.
고등학교 시절, 세상의 중심이었던 절친과의 갑작스러운 절교는 내 안에 단단한 성벽 하나를 세웠다. 다시는 그 지옥 같은 상실감을 겪지 않기 위해 쌓아 올린, 비겁하고도 절박한 방어선이었다.
상대가 조금만 소홀해 보이거나 갈등의 기조가 보이면 관계에서 도망치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다.
헤어짐은 순간에 감정을 이기지 못해 내뱉는 아우성이었고, 회피형 방어기제로서의 이별이었다.
남편을 만나기 전, 어떤 연애도 내가 쌓아 올린 마음의 방어벽을 넘지 못한 채 항상 그 안에서 끝이 났다.
전 남자친구의 누나 내외를 만나고 돌아오던 차 안이었다.
누군가에게는 평온했을 그 고요함이 숨이 막히는 절벽처럼 다가왔다.
차창 밖으로 흐르는 야경 소음보다 더 크게 들려오는 우리 사이의 정적. 그 무거운 침묵 속에서 선고처럼 내려온 깨달음을 마주했다.
'아, 더 이상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구나.'
사랑이 식었다는 확신이 들자, 1분 1초라도 그 정적 속에 머무는 것이 고문처럼 느껴졌다.
"여기서 내려줘." 달리는 차를 멈춰 세웠다.
당황하는 그를 뒤로하고 차문 밖으로 몸을 던지듯 나왔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며 생각했다.
상처받기 싫어 먼저 방어막을 쳤던 수많은 날들 끝에, 이제는 내 안의 사랑마저 메말라버린 것은 아닐까.
낡은 지하철 플랫폼에 서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평생 보호자 없이 홀로 서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서늘한 예감이었다.
그렇게 무너진 천장 아래서 비바람을 맞고 있을 무렵, 거짓말처럼 그 사람이 나타났다.
친구 다경이를 따라간 동호회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는 앳되고 선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보다 3살 어리고 개구지게 장난치면서도 예의 바르고 개그코드가 잘 맞는 편한 남동생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 하는 동호회 활동은 즐거웠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존재가 조금씩 스며들었다.
어느 날, 행사가 끝난 후 그는 나에게 고백을 했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만남이 부담스럽다며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나의 거절에, 그가 던진 말은 당돌하지만 묵직했다.
"만나 보지도 않고 왜 미리 걱정해. 만나다가 나중에 나랑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잘 살지 누가 알겠어?"
그 말은 단순히 자신감이 아니라, 불안 속에 떨고 있던 내 삶을 긍정의 땅으로 끌어올리는 강력한 예언이었다. 겉모습은 소년 같았지만, 그 속엔 폭력과 방관으로 얼룩진 내 가족들보다 훨씬 거대한 '어른'이 살고 있었다.
그렇게 4년간 연애를 했고 우리는 매일같이 만났다.
집에서 늘 타인의 감정을 살피는 '착한 아이'여야 했지만, 남편 곁에서 조금 더 이기적이어도 괜찮았다.
나와는 정반대로 항상 밝고 긍정적인 그와 있으면,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개그 코드가 통한다는 것은 단순히 웃긴 것이 아니라, 함께 있을 때 긴장을 내려놓고 비로소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라고 말하며 늘 나의 행복을 앞세우는 그를 보며, 처음으로 나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혹여나 나의 이기심이 그를 아프게 할까 봐 서운한 건 없냐고 거듭 물었지만, 그는 언제나 환한 미소로 대답했다.
"너만 괜찮다면 나는 정말 괜찮아."
그 무조건적인 수용은 나를 가두고 있던 자존감의 결핍을 채워주는 단비였다.
연애 시절, 지하철 안에서 갑작스러운 구토를 했던 날이 있었다. 황급히 내려 승강장 쓰레기통에 대고 구토를 쏟아냈다.
사람들의 시선이 등 뒤로 화살처럼 꽂히는 게 느껴졌다. 20대 여자는 수치심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겨우 화장실로 도망치듯 들어갔지만, 거울 속 내 모습은 처참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눈물만 쏟아지던 그때, 머릿속엔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방금 헤어진 그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처럼 울며 말했다.
"나, 토했어..."
이미 집으로 향하는 반대 방향 열차를 타고 있었지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는 가던 길을 되돌아 내게로 달려왔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온 내 앞에 나타난 그의 손에는 편의점에서 급히 사 온 생수와 물티슈가 들려 있었다. 화려한 위로의 말 대신 묵묵히 내 옷에 묻은 얼룩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15년 차 간호사로 일하며 숱한 오물을 보아왔던 나였지만, 누군가 내 치부를 이토록 정성껏 닦아준 적은 없었다.
"괜찮아, 괜찮아"
나를 달래며 건네준 생수 한 모금에, 차가웠던 속뿐만 아니라 꽁꽁 얼어붙어 있던 내 마음까지 녹아내렸다.
물티슈로 닦이고 집까지 데려다주던 그의 손길에서 깨달았다. 이 사람은 가장 못난 모습, 가장 치부 같은 순간마저 기꺼이 끌어안아 줄 사람이라는 것을.
자취방에서 홀로 복통에 신음하던 새벽,
택시를 타고 날아온 그는 나를 응급실로 데려갔다.
가족이 아닌 남자친구는 보호자가 될 수 없다는 병원의 말에 억울해하기보다 다짐하듯 말했다.
"빨리 내가 보호자가 되어야겠다."
그 말은 단순히 결혼하자는 프러포즈보다 훨씬 묵직하게 다가왔다. 평생 보호자 없는 광야에 홀로 서 있던 내게, 죽을 때까지 곁을 지키겠다는 공식적인 선언과도 같았다.
상처받기 전 먼저 도망치려 했던 내가, 처음으로 이 사람 곁에 영원히 머물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남편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우리는 마침내 결혼했고, 사랑스러운 아들을 낳았다.
가족에게서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나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남편을 통해 배웠다.
그는 내 무너진 천장을 받쳐준 사람을 넘어, 아예 새로운 집을 지어준 사람이다.
결혼생활을 하던 어느 날,
불현듯 남편의 긍정적인 성격에 대비해 난 늘 비관적이었고 그 부분이 자기혐오처럼 다가왔다.
나의 부정적인 성향이 밝은 남편을 힘들게 할까 봐 늘 미안했다. '왜 좋은 점보다 문제가 먼저 보일까? 난 왜 이렇게 부정적일까?'라는 자책은 늘 비관적인 사람이라는 틀에 가두었다.
그러다 운명처럼 만난 책,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혁명>은 내 삶의 프레임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테스트 결과, 나의 가장 큰 강점은 뜻밖에도 '복구(Restorative)'였다.
복구(Restorative)
복구테마의 소유자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고장이 나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또 이런 일이 생겼다고 힘 빠져하는 사람들이 있는 데 반해,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활력을 얻는다.
증상을 분석하고, 원인을 알아내고, 해결안을 찾는 일에 큰 기쁨을 느낀다.
실용적인 문제나 추상적인 문제, 혹은 개인과 관련된 문제를 선호할 수도 있다.
정확하게 어떤 문제를 선호하는지는 개인의 강점 조합과 경험에 따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당신이 문제를 고쳐서 당면한 상황을 해결하는 것을 즐긴다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부정적 사고'라고 치부했던 것들의 실체는 사실 '문제를 즉각적으로 감지하고 이를 정상으로 되돌리려는 본능'이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상황이든 내 눈에 결핍과 문제가 먼저 보였던 이유는 그것을 외면해서가 아니라, 누구보다 간절히 '고쳐놓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15년 차 간호사로서 환자의 위급한 증상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려 처치했던 것도, 내면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모두 '복구' 강점이 발휘되고 있는 순간들이었다.
여기에 매사에 신중한 '심사숙고'와 맡은 바를 끝까지 해내는 '책임' 강점이 더해져, 단순히 문제를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상처를 끝까지 책임지고 봉합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부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회복'의 가치를 믿는 사람이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남편에게 미안해하던 마음도 비로소 갈 길을 찾았다.
남편이 무너진 나의 천장을 받쳐주어
안전한 집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면,
나는 그 집 안에서 깨지고 금이 간 곳들을
정성껏 보수하고 다듬어 더 단단한 안식처로 만드는 사람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색의 긍정으로 한 팀이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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