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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Mar 27. 2017

이탈리아를 좋아해 주세요

남부로 떠나자

가끔 사람들과 유럽의 어느 나라를 가장 좋아하느냐를 놓고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그럴때면 난 주저없이 이탈리아를 말한다. 그러면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는 이탈리아 가봤지만 별로 였다고 대부분 스페인을 언급하며(왜 이탈리아는 항상 스페인과 비교될까. 라틴계라 그런가) 스페인이 더 좋았다고 말한다. 그럴때면 왠지 억울한 기분이 들어 이탈리아 입장에 서서 항변하게 된다. 개인마다 취향이 다르고 여행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지만 열에 아홉은 이탈리아가 별로라고 하니 어쩌다 이탈리아가 이런 취급을 받게 되었나 싶다.


관광객들로 가득한 트레비 분수


나: 스페인도 좋지. 근데 이탈리아 진짜 별로였어?
친구: 이탈리아? 로마 갔었는데 너무 덥고 사람많고 별로였어


로마를 방문하고나서 이탈리아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졌다니 어느정도 이해가 되긴 한다. 한 여름의 로마는 정말 덥고 관광객들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억울함이 풀리진 않는다. 왜냐면 이탈리아는 지방색이 정말 강한 나라기 때문이다. 각 지방마다의 특색이 다 다른데 한군데 다녀왔다고 이탈리아 전체를 별로라고 하다니.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서 남북으로 긴 나라가 동서로 긴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통합이 어렵다는 얘기를 한다. 남북으로 길면 서로 기후가 다르기 때문에 먹고 사는 모습이 서로 이질적이라 사람들끼리 합쳐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입장에서 보면 딱 맞는 말이다. 실제로 이탈리아는 나폴레옹 이전까진 시칠리아국, 베네치아국 등 분할된 왕국이었다가 19세기가 되어서야 겨우 통일되었다. 그나마 시칠리아는 아직도 통일을 염원하고 있다. 자기 지방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기 때문에 각 지방마다 개성이 뚜렷하다. 우리나라 같이 작은 나라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다 다른데 남한 면적의 3배가 되는 기다란 나라는 얼마나 다르겠는가.


이탈리아 남부와 북부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한다. 북부사람들은 남부를 게으르고 치안이 좋지 않다고 욕하고 남부사람들은 북부가 차가운 사람들이 살고 환경오염이 심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북부에 도시가 더 많고 잘 살긴 한다. 이탈리아의 대표산업이라 할 수 있는 패션산업이나 자동차 산업 모두 북부가 중심이다. 남부나 북부나 다 멋있지만 개인적으로 이탈리아 남부 여행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도시와 자연은 말할것도 없고 음식도 정말 맛있다. 아말피 해안을 거닐어 본다면 이탈리아가 별로라는 말은 절대로 할 수가 없다.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레몬 샤베트를 먹으며 바닷가 앞의 선배드에 누워서 지중해의 코발트빛 바다를 바라보는 기분은 여행의 가장 완벽한 순간 중 하나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살다 온것도 아니고 고작 도시 몇개를 돌아다녔을 뿐이지만 로마나 밀라노 같은 대도시에 실망했던 사람이라면 남부여행을 강력히 추천한다.

포지타노 도착직전의 페리안. 바깥에는 요트를 타고 태양을 즐기는 사람이 많았다.


북부의 고르곤졸라, 남부의 모짜렐라

이탈리아 남부와 북부는 먹는 치즈 종류도 다르다. 영화 <웰컴투 사우스>에 보면 북부 출신 주인공이 고르곤졸라 치즈의 꼬릿한 향을 맡으며 남부사람들이 먹는 모짜렐라 치즈를 밍밍하기만 한 맛없는 치즈라고 불평한다. 반대로 고르곤졸라를 선물받은 남부지방 아주머니는 해괴한 냄새에 얼굴을 찌뿌린다. 모짜렐라 치즈가 남부지역의 치즈라는건 영화를 보고서야 알았지만 그 맛은 나폴리를 여행할때 느껴봤다. 하얀 두부같은 치즈를 브런치 카페에서 팔길래 먹었었는데 정말 부드럽고 신선한 맛이었다.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할 일이 있으면 신선한 모짜렐라를 꼭 먹어봐야 한다. 폭신폭신하고 새하얀 치즈의 첫인상도 매우 좋았지만 치즈가 이렇게 신선한 맛 일수 있다는걸 그때 처음 알았다.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62302 

새하얀 모짜렐라. 루꼴라, 버섯, 토마토등을 곁들여 먹는다.


이탈리아의 대표 음식은 파스타와 피자다. 파스타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아랍에서 시칠리아로 흘러들어 갔다는 설이 있다. 지금이야 이탈리아 전역에서 먹긴 하지만 피자가 처음 만들어진곳은 나폴리이다. 가난한 남부지역에서 외국(특히 미국) 이민을 많이가 정착하면서 그들의 음식인 피자와 파스타가 유명해졌고 나아가 세계적인 음식이 된 것이라고. (이민은 자국에서 기회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기회를 찾으러 갔었으니까.) 파스타는 사실 이탈리아 전역에서 먹긴 하지만 각 지방마다 특유의 파스타면이 따로 있다. 아말피 해안이 있는 캄파니아(Campania) 지방에서는 빠께리(Paccheri)라는 파스타를 먹는다. 아주 넓고 흐물흐물한 리가토니처럼 생겼다. 라자냐면의 끝을 이어놓은 느낌. 남부지방의 토마토가 정말 맛있는데 단순한 토마토소스의 빠께리면을 먹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면을 포크로 잘라서 으깬 토마토 한가득과 먹으면 꿀맛이다. 여기에 생선요리 하나쯤 겻들여도 좋고. 풀리아(Puglia)지방에 갈 일이 있다면 오레끼에뗴(오레끼에떼 (Orecchiette)라는 귀모양 파스타를 자주 보게 된다. 작은 만두피 같은 느낌의 숏파스타인데 먹는 재미가 있다. 각 지방의 파스타 면을 먹어보는것도 재밌는 여행법이 될 것 같다.


대구살과 함께 조리한 토마토 파스타. 토마토나 생선 어느것하나 신선하지 않은게 없던.


예쁘지 않은 것은 이탈리아에 있을 수 없다

남부지방의 음식들도 정말 맛있지만 남부여행의 백미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이다. 위로는 알프스를 나눠 가지고 있고 삼면은 바다로 둘러 쌓여 있으니 말 다했다. 남부지역의 해안가, 섬에 도착할때마다 숨이 탁 막혔다. 너무 아름다워서. 이 곳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행지가 될 것이라는 느낌. 이 확신은 아주 순식간에 찾아왔고 여전히 변하지 않고있다. 사실 나는 도시여행자다. 내가 좋아하는 자연은 잘 가꾸어진 자연이다. 나의 기준에서 아말피 해안과 카프리섬은 완벽하게 아름다웠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하루종일 자기 주변을 어떻게 하면 예쁘게 만들지 고민하는 사람들 같다. 예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쓰레기통마저 예쁘다니까!

이탈리아는 노력하는 천재같다. 이미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데 그 자연을 더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엄청나게 애를 쓴다. 이건 뭐 반칙같은걸. 자연그대로의 날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숲속에 길을 내고 정상에 테라스를 만들고 잘 어울리는 화분과 의자를 갖다놓고 그 위에 꽃을 꽂아두는 것. 그게 나에겐 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최선의 균형점이다.

정원의 난간에도 이렇게 정성을 들여놓는다.
카프리 섬 정상의 전망대가 있는곳.
해안 절벽 위에 세워진 도시.


실 이탈리아에서 자연환경뿐 아니라 문화유산을 빼먹을 수 없다. 콜로세움이나 포로로마노 같은 로마시대 유적도 놀랍지만 시칠리아로 내려가면 그리스 시대의 유산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사실 현재의 그리스보다 그리스 유적이 더 많은 곳이 시칠리아라고 한다. 유네스코의 심볼인 그리스 신전이 시칠리아 아그리젠토 지방에 위치한 유적지를 본따 만들어졌다. 로마는 땅만 파면 유적이 발굴되는 통에 제대로 개발하기도 힘든 도시라는건 익히 알려진 사실.




유쾌하고 설렁설렁 일하는 사람들

좋은 여행지의 3요소는 맛있는 음식, 다양한 볼거리,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멋진 여행지라도 사람들이 별로라면 좋은 경험으로 남기 어렵다. 로컬들은 한달씩 장기 휴가를 떠나고 장사꾼들밖에 남아있지 않은 한여름의 로마가 별로인 이유는 그래서일거다. 유럽여행을 하면 그들의 젠틀함 혹은 개인주의에 적응이 안될 때가 많은데 이탈리아 사람들, 특히 남부지역 사람들은 한국인과 기질이 비슷하다. 유럽에서 여행하면서 운전을 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처음은 프랑스였다. 그렇게 예의바르게 운전할 수가 없다. 경적소리를 딱 한번들었는데 언덕길에서 시동을 꺼트리는 통에 차가 뒤로 밀려 뒤에 있던 BMW를 박을뻔 했을때다. 그 외에는 우리 차가 늦게 출발하든 끼어들기를 하든 절대로 뭐라고 하지 않는다. 한국이었으면 절대 안비켜줬을텐데. 하지만 이탈리아로 넘어오자마자 사정이 달라졌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뒤에서 이미 경적을 울리고 있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편안한 느낌일 수가 없다. 무슨 말이냐면 내가 실수하고 있는지 아닌지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선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게 아닌지 걱정하며 운전했는데 이탈리아에서는 그런 걱정이 별로 없었다. 내가 맘에 안드는 행동을 하면 그쪽에선 벌써 나한테 말해주고 있다. 내고향 서울과 비슷한 느낌이다.

게다가 사람들도 따뜻한 지방의 사람들 답게 대체로 설렁설렁 일한다. 식당에서 식사마다 와인을 한잔씩 마셨는데 아주 고급 레스토랑이 아니고서야 서버분들이 와인을 아주 콸콸 따라주신다. 조심스럽게 졸졸 아니고 콸콸 따르는 통에 항상 거품이 조금씩 생긴다. 되도 않는 영어로 유쾌하게 말을 걸면서 말이다. 그덕인지 와인을 마시는 기분이 일상처럼 느껴진다. 이거 물같은 거구나 하고.

물론 이런 점들이 호불호가 엄청 갈릴것 같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거 대충해주면 짜증나니까!

1일 1와인.


한번은 숙소의 리셉션에 포지타노 어떻게 가냐고 물어봤다. (우린 그옆 아말피에 묵었었다) 그러자 보트타고 갔다 오라고 선착장을 알려준다. 보트라니? 운전할줄도 모르는데. 그러자 하는말이

스쿠터 몰 줄 알지? 그럼 됐어. 쉬움!

그렇게 우리는 난생처음 보트를 몰아봤다. 진짜로 면허따위 없어도 빌려준다. 어떻게 타는건지 대충 가르쳐 주더니 잘 갔다 오란다. 재밌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설렁설렁 일하는 민족이 페라리나 구찌같은 정교한 명품을 만들어 내다니 상상도 안된다. 어느순간 갑자기 사람이 돌변해서 장인으로 바뀌는 걸까. 같은 나라에 이렇게나 다른 사람들이 있다니 재미있다.


저 밑으로 보이는 곳이 보트 주차장이다. 우리 배도 저기 정박해 있다.



이탈리아는 아직도 몇번이고 더 가고 싶어지는 나라다. 다음번에 가면 토스카나 지방에서 와인을 마시며 흥청대고 싶고 시칠리아 섬에 가서 유적지 투어를 해보고 싶고 동부 해변을 따라 달리며 소도시들을 방문해 보고 싶기도 하다. 이탈리아는 이미 유명한 관광지이긴 하지만 유명세에는 늘 반대파가 따른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좋아하면 괜히 싫어하고 보는 심리가 발동하는것 같다. 그 마음도 어쩐지 알것 같긴 하다. 이곳은 좋다고 하기엔 너무 관광용 도시인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살펴보면 여긴 여행할 때 훨씬 즐거운 곳이다. 나와 함께 이탈리아를 좋아해 줄 친구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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