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썸머 Aug 05. 2017

하와이와 무라카미 하루키

솔직히 하와이에 가고 싶은 생각은 하나도 없었다. 하와이는 여행지로서는 어딘지 너무 뻔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만약 내가 하와이에 가게 된다면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흔적(?)을 찾아다녀야지 생각했었다. 난 하루키씨의 책을 아주 좋아하는데 그가 하와이에 집을 살 정도로 하와이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루키씨는 하와이 대학에서 일하기도 했었고 카우아이의 해변에서 '해변의 카프카'를 완성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속에서 하와이의 존재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하다못해 하와이안 셔츠라도 등장시킨다. 이러니 호기심이 안 생길 수가 없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오직 그 때문에 하와이에 가야겠다고 마음 먹은것은 아니다. 마음먹고 보니 아 하루키씨가 하와이 좋아했지 하는 정도랄까.


하와이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은건 훨씬 재미없는 이유였다. 비행기표가 쌌다. 진에어에서 여름특가 세일을 한다고 해서 들어가봤더니 마침 하와이행 비행기표가 매우 저렴하게 나와있었다. 결국 숙소비나 식비로 다른 여행지보다 훨씬 비싸긴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하와이를 가기로 결정했다. 신혼여행이 아니면 갈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어쩌다 보니 하와이를 가게 되버렸다. 게다가 여행이 끝난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나 재밌는 섬이었다! 전혀 뻔한 여행지가 아니었는데 왜 그런 편견을 가졌던 걸까.


하와이에 도착하고 보니 난 이 곳에 대해 전혀 아는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는 좋지만 오래된, 평범함 휴양지 정도를 상상했다. 하지만 여긴 누가뭐래도 최고의 휴양지였다. 날씨가 좋아도 너무 좋았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최고의 날씨다.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섬인데 하나도 습하지 않다. 바람도 선선하고 바다도 따뜻하다. 이런곳에서 태평해 지지 않는다면 그것도 좀 이상할 정도다. 그리고 의외로 음식 맛있었다. 특히 음료수가! 로컬음식은 정말 내 입맞에 조금도 맞지 않았지만 하와이 레스토랑씬은 생각보다 꽤 활발했다. 이런 면에선 오히려 저평가 되어있다. 하루키씨가 왜 이런곳에 집을 사고 주기적으로 와서 사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는 셀레브리티니까 아무도 자신을 못 알아보는 여유로운 곳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싶었을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침마다 달리기를 하면서.


오아후의 서쪽 해변. 날씨가 완벽하다.
바다에 코박으면 보이는 물고기들.
낙조는 바다로 떨어지는게 제맛.


사실 오아후 섬에 도착하면 조깅하는 하루키씨를 단박에 만날 것만 같았는데 여긴 생각보다 넓은 곳이었다. 차없이는 밥먹으러 가기도 힘든 크기였는데 우연을 믿어도 너무 믿었다. 다이아몬드 헤드 분화구가 보이는 곳에 집이 있다고 하니 만나고 싶은 사람은 좀 뒤져보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결국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까지 그를 만날 기회는 없었지만 그의 소설이나 에세이에 언급된 곳을 돌아다녀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할레쿨라니 였다. 할레쿨라니는 하와이의 유명한 해변 와이키키에 위치한 호텔이다. 무려 1962년도에 지어진 5성급 호텔인데 하루키의 작품을 보면 이 호텔을 아주 좋아했던것 같다.


해가 기울자, 우리는 방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스파게티와 샐러드를 먹은 다음, 스필버그의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관을 나와 잠시 거리를 산책하고, 할레쿨라니 호텔의 우아한 풀사이드 바로 갔다. 그리고 나는 또 피나 콜라다를 마시고, 그녀는 후루츠 주스를 주문했다. -댄스댄스댄스



아주 오래된 호텔이다보니 사진으로 봤을땐 에이 이게 뭐야 했는데 막상 가보니 오래됐기 때문인지 고급 호텔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기품있는 호텔이라고 느껴졌다. 건물의 인상이라던가 접객하시는 직원들의 태도라던가 하는게 너무나 우아해서 깜짝놀랐다. 우리 예산보다 훨씬 비싸서 투숙하진 못했지만 여행기간 내내 두번 방문해 봤다. (위치도 좋아서 가기 쉽다) 처음 방문에서는 할레쿨라니의 재즈바를 가봤다. 이름이 Lewers Lounge 인데 최초로 할레쿨라니 부지에 건물을 지었던 분의 이름을 딴 것이다. 우리 부부는 여행중에도 꼭 드레스업할 준비는 해가는데 덕분에 이 날 바 분위기에 맞게 갈 수 있었다. 도착했을때 마침 재즈 공연이 한창이었다. 백발의 여성분이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시는데 분위기에 압도 당하는 느낌. 클래식한 분위기 답게 클래식 칵테일을 많이 팔았다. 나는 사제락Sazerac을 남편은 사이드카Sidecar를 주문했다. 사제락에 오렌지필을 넣어주니 올드패션드랑 굉장히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와이의 오래된 호텔의 고급바에서 클래식 칵테일을 마시며 재즈를 듣다니 꿈인가 싶을 정도로 좋았다. 남편과 어떤것이 클래식인지에 대해 한참 얘기해 봤는데 스탠다드를 만들 수 있어야 클래식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허세스럽다고 서로 깔깔대며 웃었지만 정말 맞는 말이다. 클래식은 스탠다드!



사제락과 사이드카




할레쿨라니를 두번째 방문 했을때 들렀던 곳은 House without a key라는 식당겸 바였다. 샐러드를 먹고 싶어서 갔는데 결론적으로 음식은 별로였다. 고작 메뉴 몇개 먹어보고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면 좀 실례려나. 하지만 그런 가격이라면 누구나 기준이 높아질 텐데 그런면에선 좀 아쉽다. 그래도 야외에서 공연을 보며 식사할 수 있는 곳이라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그리고 하와이는 신기하게도 칵테일들이 다 맛있다. 여기선 하와이안 블루를 마셨는데 아주 만족스러웠다. 다른곳에선 피나콜라다를 여러잔 마셔봤는데 하와이 특산 뭔가를 넣었나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아무래도 휴양지니까 코코넛 밀크를 제대로 넣어주어서 그런것 같기도. 코코넛 밀크 유통기한이 짧아서 보통 바에서는 잘 구비해 놓지 않는데 이런 곳에선 찾는 손님이 많아 듬뿍듬뿍 넣어주었던 것 같다. 워낙 파인애플이 맛있기도 하고.


'슈퍼 샐러드'라 할 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전에 호놀룰루의 할레쿨라니 호텔 수영장 근처의 레스토랑 'HWAK(House Without a Key)'에서 아주 훌륭한 샐러드를 만났다. 마노아 레터스와 쿠라 토마토와 마우이 어니언을 넣었을 뿐인 단순한 샐러드였지만 맛있어서 늘 점심으로 먹었다. 따뜻한 롤빵과 이 샐러드-그리고 차가운 맥주-가 있으면 더는 아무것도 필요없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할레쿨라니의 아름다운 수영장
블루하와이안
피나콜라다. 어디서 먹어도 꿀맛
마이타이


하루키씨의 추천(?)으로 마우이 어니언도 먹어봤다. 양파면 양파지 왠 마우이 양파? 하지만 먹어본다면 생각이 바뀔것이다. 양파는 양판데 단 맛이 거의 대부분인 양파다. 우도 땅콩처럼 마우이의 특산품인데 비행기를 탈 수 없으니 딱히 특산품 코너에서 보이지 않는다. 기념품으로 양파를 사가는게 좀 우습기도 하고. 대신 양파 과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양파가 서핑을 한다던가 하는 그림이 그려져있다. 마우이 섬에 가면 꼭 마우이 브루어리에 가봐야 하는데 (맥주가 기가막힌다) 그곳에서 마우이 어니언 딥 이라는 메뉴를 발견했다. 감자칩을 잔뜩 주는데 그걸 양파디핑 소스에 찍어먹는 음식이다. 별거 아닌 음식에 남편과 나는 온 마음을 빼앗겨 바닥까지 싹싹 긁어 먹었다. 디핑 소스를 이렇게 맛있게 만들어도 되는걸까. 그래서인지 메뉴 이름이 감자칩이 아니라 양파 디핑소스다. 대단한 양파야.


앞에 있는 메뉴. 마우이 어니언 딥. @마우이브루어리



하와이를 다녀오고 나니 다른 휴양지의 많은 부분이 사실 하와이에서 완성되서 파생된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만큼 아이코닉한 도시다. 하루키씨가 사랑하는 도시이기도 하고. 그의 작품들에서 또 만나게 된다면 예전과 좀 다른 느낌일것 같다. 아주 반가울것 같은 기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워킹스페이스 하와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