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Cesky Krumlov
Cesky Krumlov
체스키 크룸로프 라고 읽는 체코의 소도시다. 2009년에 다녀왔으니 까마득히 옛날이다. 그 당시 뒤적이던 여행책자에 한장정도 체스키 크룸로프를 소개하는 섹션이 있었다. 작고 예쁜 소도시라는 설명과 함께 성을 지키는 곰에 대해 써있었다. 이게 왠 동화같은 설정이람. 동유럽의 작은 성을 지키는 곰 세마리라니. 그게 너무 재밌어서 이 도시를 꼭 들러야 겠다고 생각했다.
체코에서 체스키로 떠나는 버스를 탔다. 사촌동생과 내 동생, 나 이렇게 떠난 여행이었다. 버스나 기차에 탈때면 누가 혼자 앉을지 늘 가위바위보로 정했다. 이날은 마침 내가 혼자였다. 내 옆이 빈 채로 버스가 출발했는데 중간 중간에 정차해서 손님을 더 태우는 버스였다. 그런데 동화같은 도시로 가는 버스답게, 요정처럼 생긴 체코 소녀가 내 옆에 앉았다. 나이는 딱 스무살처럼 보였다. 나와 동생들은 우리끼리 야단법썩이었다. 그러다 용기를 내서 말을 걸어봤다.
너 진짜 예쁘다
지금 생각하면 무례할 수 있는 말인데 그 여자애는 세상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해줬다. 눈처럼 하얀 피부와 푸른 눈과 예쁜 핑크 블러셔같은 볼을 가진 애였다. 조잘대는 동양 여자애들 셋이 신기했는지 같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체스키에 있는 부모님 집에 방문한다고 했다. 우리 넷 다 영어를 잘 못해서 별 시덥지 않은 대화를 할 뿐이었지만 넷이서 버스의 앞뒤로 앉아 떠들던 순간이 아직도 생각난다.
체스키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훨씬 더 예쁜 곳이었다. 도착한 시간이 밤이라 성쪽으로 조명을 켜놨는데 정말 귀여웠다.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요정소녀는 마중나온 아빠에게 달려가 우리에게 크게 손을 흔들어 주며 떠났다. 체스키에 머물던 이틀내내 혹시 마주치치 않을까 두리번 거렸지만 아쉽게 다시 보진 못했다. 보기엔 되게 작은 마을 같았는데. 그래두 덕분에 여행하는 내내 진짜 동화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날씨가 안좋은 한겨울에 방문했는데, 머무는 동안 내내 눈이 내렸다. 춥긴 정말 추웠지만 체스키의 눈오는 풍경은 아주 아름다웠다. 너무 예뻐서 꼭 세트장 같은. 성 꼭대기에 올라갔을때 종이 울렸는데 종이 울려퍼지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나쁜 생각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삶이 동화는 아니지만 이런 곳에서는 동화라고 착각하고 싶어진다. 이런 추억들은 삶이 피곤해 질때 떠올리면 작은 위안이 되곤 한다. 꼭 해외 여행을 가야만 만들어지는 건 아니지만 겨울의 동유럽은 나에게 정말로 소중한 추억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