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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Jan 30. 2018

내가 다녀온 도시 D

인도, Delhi

Delhi


세상엔 다양한 장소가 있고 여행자들은 제 각각의 이유로 여행지를 선택한다. 그 선택이 늘 좋기만 하면 참 좋겠지만 분명히도 실패하는 여행이란게 존재한다. 즐겁지 않은 여행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던 때도 있었다. 좋지도 않으면서 재밌는척 자신을 속이기도 했다. 여행에서 조차 나 자신이지 못하고 남을 의식하다니 서글픈 일이다. 인도의 델리에서의 가장 좋았던 것은 내가 여행에 실패했다는걸 인정한 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델리는 출장지였다. 총 세번을 방문했는데 처음 일주일, 그 다음은 세달, 마지막은 3주간 있다 왔다. 솔직히 처음 몇시간은 즐거웠다. 새로운 환경은 즐거운 법이다. 게다가 다행히도 인도음식은 내 입맛에 잘 맞았다.

델리에서 가장 싫었던 점부터 꼽자면 단연 환경오염이다. 처음 갔던 두번다 10월에서 1월의 초겨울이었는데 이때가 특히 공기오염이 심각해 지는 시기라고 들었다. 그런데 이게 심각해도 너무 심각하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녀도 저녁때 집에 와서 코를 풀면 새까만 콧물이 나왔다. 누가보면 탄광에서 일하다 온 줄 알것 같았다. 중국의 북경보다 공기오염이 심하다고 하면 상상이 가려나. 그나마 이건 겨울 시즌 한정이다. 수질오염은 1년내내 24시간 존재한다. 물은 무조건 병에 든걸 사서 마셔야 한다. 식당에서 주는 물이나 심지어 얼음마저 무심코 마셨다가는 병원신세를 질 수도 있다. 호텔식당도 예외는 아니다. 어쨌든 같은 상수도관을 쓰니까. 세달을 델리에서 체류하는 동안 감기와 물갈이로 엄청나게 고생했다. 그놈의 물갈이는 한번 했으면 끝나야 하는데 인도의 물에는 적응이 안된다. 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 델리 여행을 하고와서 좋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뭐가 좋았던 걸까. 10년전 인도는 지금보다 깨끗했으려나. 지금은 환경오염이 너무너무 심각해서 생존이 위협받는 실정이다.

Max hospital. 세달동안 3명이서 7번 방문;; 델리에서 가장 많이 방문한 장소가 되었다.
녹조 호수
늘 뿌연 공기. 릭샤가 이렇게 많은데 당연한듯

델리에 와서 너무 의외였던 것은 물가가 비싸다는 점이다! 이 말을 하면 다들 깜짝 놀라던데 델리 물가는 진짜로 비싸다. 물론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은 싸게 먹을 수 있겠지만 그랬다간 또 화장실 변기만 붙잡고 일주일을 버려야 할 테니 쉽게 도전해 볼 수 없었다. 깨끗한 음식과 물을 사서 마시려면 그 가치보다 훨씬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그 밖에도 미친 크랙션 소리, 비위생적 도로, 수도없이 많은 거지들,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무지막지하게 무례한 태도, 거짓말, 사기 등등 너무너무 싫었던 일을 끝없이 열거할 수 있다. 델리는 비싸고 사람많고 시끄럽고 더러운 곳이다. 델리를 여행하는 최고의 방법은 최대한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인도는 델리만 벗어나면 훨씬 좋은 여행지 후보들이 많이 있다.

아무리 소'님' 이라지만 너무 많아. 그리고 너네 그만 빵빵거려....

처음에는 내가 지구상에서 적응하지 못한 곳이 있다는 사실이 싫었다. 누군가 너의 여행이 어땠냐고 물었을때 이번 여행은 실패였다고 말하기가 자존심이 상했다고 해야 할까. 난 내 자신을 여행에 최적화된 사람쯤으로 여기고 거기에 자부심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싫은 건 있는 법이다. 내가 델리를 싫어한다는걸 인정하고 나니 의외로 마음이 편해졌다. 싫은걸 억지로 참으면서 이 도시를 탐험할 필요도 없어졌고, 좀 더 깨끗한 지역으로 옮겨서 지내면 될 일이었다. 어떤때는 싫은걸 버티고 참는 것보다 싫은걸 인정해 내는 것이 훨씬 행복하고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게 나의 취향을 찾는 과정일 것이다. 싫은걸 발견하면 좋은게 훨씬 더 빛나 보인다.


참고로 델리는 지구상에서 최악의 장소라고 생각하지만 델리 이외의 인도는 굉장히 매력적인 곳이다. 인도가 어떻다 말하기 어려운게 너무너무 넓어서 도시마다 특징이 다 다르다. 가장 좋았던 곳은 뱅갈루루였다. 왜 수도를 뱅갈루루도 옮기지 않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 2018년 현재에도 카스트의 잔재가 남아 수직적인 문화가 강한 델리에 비해 뱅갈루루는 훨씬 자유분방하다. 날씨도 캘리포니아 날씨. 델리를 포함하는 북인도인들은 남인도인을 깔보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보기엔 뱅갈루루 같은 도시가 인도 혁신의 주역이 될 것 같다. 델리따위!


인도의 화려한 색감. 건물들이 다들 알록달록 예쁘다.
뱅갈루루에는 이렇게 예쁜 카페가 많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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