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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Feb 01. 2018

내가 다녀온 도시 E

프랑스, Étretat

Étretat



엄마와 여행을 떠나게 됐다. 엄마랑 단둘이는 아니고 이모와 이모부도 함께. 내가 거기에 꼽사리 끼게 됐다. <꽃보다 할배>라는 TV 프로그램이 방영된 직후였다. 난 누가봐도 이서진 역할이었다. 다만 비행기표를 내주며 당장 떠나라거나 여행경비를 대주는 나피디는 없었다. 어떤때는 이서진이 보통 힘든게 아니었구나 공감될 정도로 힘들었다가 어떤 면에선 되게 재밌었다. 좋았던건 여행을 같이 가니 엄마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새로운 걸 보며 재밌어 하는 모습이나 때론 나한테 의지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같이 유럽여행을 다녀와서 그 다음해에는 처음으로 여동생과 엄마와 셋이 홍콩에도 다녀왔는데 이게 다 나와 함께한 유럽여행이 재밌어서 였다고 믿고 있다.

프랑스 식당에서 엄마랑 프렌치를 먹다니.

알파벳 D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발리 덴파사르와 가장 싫어하는 인도 델리가 들어있어 뭘 쓸지 고민했는데 E는 딱 한 도시 밖에 없었다. 그곳이 바로 에트르타다. 파리에서 차를 타고 다녀왔는데 여긴 몽생미셸 가는 길에 잠깐 들르는 곳이었다. 몽생미셸이든 에트르타든 내가 혼자 왔다면 전혀 후보에도 없었을 장소였다. 파리는 몇날 몇일을 골목만 누비기에도 부족하니까. 하지만 엄마와 이모의 강력한 주장으로 하루 다녀오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무나 잘한 선택이었다!

에트르타는 노르망디 해안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그 전엔 별 관심 없던 내가 솔깃 했던건 노르망디 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그 노르망디? 영화에선 예쁜 이름과 달리 처참했던 곳있데 실재로는 어떨지 궁금했다. 우리가 방문했던 시기는 역시 날씨가 좋지 않았다. 10월 파리 날씨는 정말 별로다. 잿빛 하늘이 파리의 대표 색이다. 우중충한 회색빛 날씨와 어떤 것에든 무심한듯한 파리의 멋쟁이들이 그런대로 잘 어울리긴 하지만 여행자로서는 좀 난감한 일이다. 여름의 유럽날씨가 너무나 쨍해서 그런 기대를 가지고 가을, 겨울에 방문했다가는 다들 실망할게 분명하다. 좋은 점은 잿빛 하늘에 빛이 잠시라도 들때면 그게 그렇게 반갑고 감사할 수 없다. 늘 날씨가 좋다가 잠깐 흐리면 실망하게 되지만 늘 흐리다 잠깐 해가 들면 행복해진다. 행복이란 의외로 단순할 수도.

우중충한 하늘에 잠깐 해가 났다.

차를 타고 언덕을 올라가다 어느순간 갑자기 바다가 나타난다. 긴 잔디들이 바람에 다 누워있는 언덕이었다. 그 언덕에서 바다와 절벽이 동시에 눈에 들어오는게 꽤 멋지다. 우와!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되는 풍경. 바람이 너무많이 불어서 가만히 서있기 힘들었지만 열심히 감상했다. 코끼리 모양 절벽이 있는 단순한 풍경인데 계속 보게되는 힘이 있다. 무엇보다 바다색이 정말 오묘했다. 탁한 애매랄드색. 우유에 민트색을 섞어놓은 것 같았다. 거기에 흰 코끼리 모양 절벽이 있는 풍경이라니 게임 그래픽 같았다. 자연에서 흰색을 만나면 되게 낯설게 느껴진다. 눈이 오면 늘 보던 동네도 낯설어진다. 잘 없는 색이라 그런걸까. 흰색 절벽과 초록색 잔디, 민트색 바다가 한데 어우러지다니, 완전 예술이다. 아닌게 아니라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던 휴양지라고 한다. 모네가 그린 작품도 있고. 인상파 화가들이 좋아하던 곳이라면 날씨 변화가 다양해서 였을까. 왠지 인상파 화가들을 생각하면 같은 곳을 끊임없이 다르게 그려내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러면 그 장소를 좀 더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려나. 엄청 낭만적이잖아!

언덕위에서 바라보던 에트르타 절벽 색이 너무나 오묘하다
절벽쪽으로 향하는 산책로
바람이 너무 많이분다. 뒤에 보이는 바다색은 예술
에트르타는 몽생미셸 가는 길에 들린 곳이었다.
모네의 에트르타. 딱 저 곳의 모습이다. 이 날은 파도가 좀 덜 했나. 왠지 고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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