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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라인 Feb 24. 2022

짐을 잘 싸는 것도 능력

외항사 승무원으로 일하면 짐 싸기 스킬이 느는 이유

외항사 승무원으로 한국 비행을 가게 된다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바로 택배 주문이다. 로스터가 나오자마자 뭘 살지 리스트업 하는 건 물론이고 언제쯤 결제를 할지도 다 생각해놓는다. 바뀐 호텔은 호텔 직원분들이 정말 너무나도 친절하고 감사하게도 택배를 다 맡겨주셔서 분실 건이 하나도 없고 한참 전에 배달을 시켜놔도 내가 도착한 날에 알아서 딱 준비해주시는데 이런 호텔은 사실 드물다. 코로나를 이유로 택배를 안 받아주는 호텔도 너무 많고 받아준다 하더래도 분실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택배 맡기는 일은 승무원들도 호텔 측도 사실 되게 조심스럽고 번거로운 일 중 하나이다.




한국 비행에서 가져와야 하는 것들은 너무 많다. 음식은 물론이고, 화장품과 각종 마스크팩, 옷이나 신발, 스타킹과 수영복, 자잘하게는 화장솜이나 생리대까지 한국에서 직접 공수해온다. 나 역시 거의 모든 제품을 한국에서 가져오는 편이라 한국에서 돌아올 때면 슈트케이스가 너무 무거워서 애를 먹곤 한다. 다음엔 조금만 싸와야지 해도 막상 한국에 도착하면 나도 모르게 한 짐을 싸와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곤 한다.




예전 호텔에서 버스기사 아저씨가 도대체 중동 항공사 (카타르항공과 같은 호텔) 승무원들은 한국에서 뭘 가져가길래 이렇게 무겁냐고 얘길 하신 적이 있었다. 버스기사 아저씨들이 버스 짐 칸에 짐을 실어 날라 주시기 때문에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다. (이거 때문에 그만두는 분들도 있다고) 그 말을 들은 뒤에는 감사하단 말도 거듭하고 가끔 간식도 챙겨드리곤 한다.



이 캐리어가 내가 가지고 다니는 지금 회사 신버전 수트케이스. 생각보다 크지 않다


회사의 슈트케이스는 두 종류가 있다.


다른 중동 항공사처럼 옆에 달린 손잡이로 끌고 다니는 구버전과 샘소나이트 캐리어 제일 저렴하고 작은 사이즈의 신버전. 난 신버전의 승무원 캐리어가 있는데 이게 생각보다 사이즈가 정말 작아서 짐을 많이 가지고 가야 하는 날에는 구버전을 가지고 있는 동료한테  빌려서 가져가거나 혹은 그만두는 승무원에게 부탁해서 바꾸곤 한다. 난 플랫 메이트가 구버전의 캐리어를 가지고 있어서 빌려준다고 했는데 호기롭게 괜찮다고 했다가 이번에 진짜 애를 먹었다.



 자타공인 짐을 야무지게  채워오는데 일가견이 있는데 이번에 엄마가 호텔로 봄여름 버전 운현궁 이불 베개 세트를 호텔로 보내주셔 가지고  이불세트를 넣었더니 캐리어가  찼다...


모달이라 촉감이 엄청 좋음


딱 이 이불을 보내주셨는데 겨울이다 보니 입고 다닐 겨울  패딩, 플리스, 긴팔 티, 청바지, 양말, 운동화도 넣어야 했고 햇반, 컵라면, 김치, 삼겹살, 참기름, 간장, 떡 등의 음식류와 이번에 새로 챙겨 오는 샤워기와 샤워필터, 샴푸바, 모공 패드와 수분크림 등 화장품을 넣어야 했다. 다행히 테트리스 하듯 어떻게 요리조리 다 잘 넣어서 이번에도 캐리어를 무사히 가지고 왔다. “이걸 어떻게 다 넣어?” 가족들이랑 친구들이 늘 물어봤는데 외항사 승무원 생활 8년째... 캐리어 문만 닫히면 들고 가는 건 문제가 없다.





캐리어를 잘 싸는 팁은 부피가 큰 물건부터 넣고, 모서리를 잘 활용하는 것이다. 옷은 무조건 돌돌 말고, 양말이나 속옷 등 작은 의류는 파우치에 최대한 작게 접어서 넣는다. 그리고 기내용 캐리어를 적극 활용하는 게 좋다. 난 기내용 캐리어에 과일이나 음식류를 넣어 오는 편인데 이번엔 한국에서 비싼 가방이랑 신발도 들고 와서 박스채로 기내용 캐리어에 넣어서 들고 왔다. 그리고 봄 옷 세 벌과 파우치 세 개까지 넣어서 원래 있던 승무원용 잠옷 + 필수로 가지고 다녀야 하는 여분 유니폼 + 화장품 파우치까지 기내용 캐리어에 다 넣어서 가지고 왔다. 지금 적어보니 어떻게 다 들고 왔는지 모르겠다..



승무원으로 일하면 자잘한 능력치들이 오른다. 오늘 얘기한 짐 싸기 스킬이라던가, 화장을 10분 만에 끝낼 수 있다던가, 쪽머리나 소라머리를 5분 만에 할 수 있다던가,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 5개국 이상의 외국어로 말할 수 있다던가, 이 외국인이 이집션인지 튀니지안인지 구분이 가능하다던가… 아직 코로나의 여파로 레이오버에서도 호텔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요즘, 이렇게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 관찰 중이다. 내가 진짜 잘하는 것 중 하나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맞추는 건데 이건 다음번에 또 포스팅해봐야겠다. 그럼 난 내일 또 다른 능력치를 키우러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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