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올만에 에미라티 친구 (두버지 딸)를 만나고 왔다. 그동안 나의 살인적인 스케줄로 인해서 두바이 갈 시간이 없었는데 다행히 친구랑 시간이 맞아서 아부다비에서 볼 수 있었다. 이 친구로 말할 거 같으면 아부다비 뉴욕대를 졸업하고 옥스퍼드에서도 공부를 마친, 말 그대로 미모의 재원이다. 두바이 출신이지만 아부다비 출신의 남편과 결혼해서 현재는 아부다비에서 시댁과 함께 살고 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근황 얘기를 하다가 기억에 남는 것들이 여러 개 있어서 블로그에 한 번 적어보려고 한다. 에미라티 사회는 조선시대.. 까진 아니어도 아직도 많은 부분이 매우 보수적인 집단이다. 극단적인 무슬림 사회라 그런 것도 있고 그들만의 혈통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런 것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신혼인 친구의 요즘 고민은 바로 “출산”이다. 한국 여성들과 별 다를 게 없다고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에미라티의 문화를 이해하고 들으면 놀랄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무슬림들에게는 아직도 여성의 존재 이유가 바로 출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네다섯 명의 자식을 낳는 게 기본이었는데 (한국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많은 숫자) 2023년 현재 아랍에미레이트 여성들의 가족당 평균 출산 신생아 수는 1.4명밖에 되질 않는다. 생각보다 적은 숫자에 굉장히 놀랐는데 친구는 더 놀라운 이야기들을 이어갔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두바이 정부에서 로컬 에미라티를 위한 복지들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걸 들을 수 있었다(혜택을 많이 감소시키는 중이라고 한다) 에미라티 여성이 임신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육아 휴직은 기본이 45일, 조금 늘어나서 최대 3개월까지 쓸 수 있다고 들었다. (참고로 친구는 정부기관에서 일한다) 대한항공은 2년, 루프트한자는 3년을 제공해 주는 데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짧은 기간에 놀랐다. 남성들이 육아 휴직을 신청하면 받는 기간은 더 코미디다. 에미라티 남성이 받을 수 있는 육아 휴직 기간은 바로 3일, 그나마 늘어나서 요즘은 5일이라고 한다.
아기를 낳게 되면 더 쉽지 않다. 의무 교육 제공이 폐지되었기 때문에 한국보다 비용이 훨씬 비싸다. 유치원은 국가가 제공해 주는 국립과 개인이 비용을 지불하는 사립, 두 종류가 있는데 여기도 사립 유치원은 아메리칸이니 브리티쉬니 종류가 굉장히 다양한 편이다. 교육의 질도 사립 유치원이 훨씬 좋은 편이라 다들 사립 유치원을 보내려고 하는 데 등록 비용이 자그마치 1년에 6만 디람 (약 2200만 원)이라고 한다.
며칠 전 서울의 초등학생들에겐 아이패드를 무료로 지원해 준다는 기사를 봤던지라 더 충격적으로 들렸다. 한국에서는 중학교까지는 의무 교육인 데다가 초등학교까지는 급식이니 준비물도 다 무료로 제공해 주는데 금수저들이라고 생각했던 아랍에미레이트의 복지 현실이 이렇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의료 복지 범위도 점점 축소되는 중이고 (예를 들면 예전엔 UAE 전역의 모든 병원에서 보험이 적용되었다면 지금은 거주 도시의 병원만 갈 수 있음) 결혼한 가정 위주로 두바이 정부가 땅을 주는데 아직도 못 받은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여러 가지 생각해 보면 아기를 낳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잘 모르겠다고 한 친구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이야 딩크족도 요샌 많은 편이지만 자식을 많이 낳는 문화를 가진 에미라티들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자국민 보호가 잘되어있기로 유명한 나라인데 친구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자기들보다 영국인이나 인도인들이 요샌 혜택을 더 많이 받는 것 같다고 자기도 이런 고민을 하게 될지 예상도 못했다고 씁쓸해하는 친구의 표정이 기억에 남았다. 여러 가지를 비교해 봤을 때 그래도 한국은 아직 살기 좋은 나라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달도 오프 때 한국에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