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다시, 나로 흐르다

흩날리듯 살아가도, 단단히 서 있는

by 목화


한가로운 오후, 나는 차를 몰고 강의하러 가는 길이다.
햇살은 부드럽고,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산들산들하다.
차 창문을 내리고 깊게 숨을 쉬며 여유를 느끼고 있지만, 마음 한켠은 여전히 바쁘다.
이 순간을 사진 한 장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도 여느 날처럼 부산했다.
아이 둘을 재촉해 학교에 보내고, 로봇청소기를 돌리고,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넣었다.
그제야 겨우 숨을 돌리며 샤워를 하고, 음악을 들으며 화장을 마쳤다.
그리고 천천히 차에 올랐다.


이런 여유, 20~30대의 나에게는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R&D 센터에서 설계 엔지니어로 일을 시작했을 때,
내 자리가 아닌 듯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다.

요즘처럼 ‘취업 특강’이나 ‘커리어 코칭’도 없던 시절,
일이든 인간관계든 부딪히며 배워야 했다.
‘이게 맞는 걸까?’
그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지만, 하루는 언제나 바쁘게 흘러갔다.




그러다 어느 날, 내 일상이 멈춰 섰다.
아이를 낳고 정신없이 바빴던 워킹맘 생활을 그만둬야 했을 때였다.

출근 대신 아이들을 서둘러 어린이집에 보내고,
보고서 대신 아이들 밥과 간식을 만들며
나는 다른 세상으로 옮겨온 사람 같았다.


“이제 내 사회생활은 끝이구나.”
그때의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하루 종일 아이 울음소리만 들리던 집 안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 속에서 나는 점점 작아졌다.
누구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기분—
그게 얼마나 견디기 힘든지, 그때 처음 알았다.


하지만 삶은 묘하게도, 조금씩 나를 다시금 불러냈다.
어느 날 문득, 나는 강의실 앞에 서 있었다.
누군가 나와 눈을 맞추며 내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잊고 있던 나의 일부와 잠들어 있던 세포가
다시 깨어나는 희열이 느껴졌다.





가끔은 생각한다.
인생은 설계도가 아니라 강물 같다고.
멈춘 줄 알았던 나도
조금씩, 어디선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강 위의 나뭇잎처럼
부드럽게 부유하며, 조금씩 길을 내고 있다는 것을.



Images courtesy of Unsplash and pixabay.



다음 이야기로 흐르다

토요일 10시

2회. 결혼, 모두가 축하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by Mokhwa


#브런치에세이 #감성글 #공감에세이 #여자의이야기 #성장에세이